문화

삶의 풍경이 머무는 곳
[수필] 박달나무꽃
'글. 이정연'

아침, 내가 팔로우하는 사진가 이** 선생의 페이스북에 봄꽃 사진 여러 장이 올라왔다.
분홍빛 산 복숭아, 하얀색이 순수한 말발도리, 목월의 예쁜 시 윤사월이 생각나는 송화, 보랏빛 깜찍한 각시붓꽃, 첫사랑 소녀의 이마에 내리는 싸락눈같이 생긴 조팝나무 꽃이 종합선물 세트로 배달되었다. 삼필봉 등산로에서 담으셨다고 했다. 참 아름답구나 하고 보고 있는데 한 팬이 “두 번째 꽃 사진 이름을 모르겠어요.” 하고 답글을 다셨다. 꽃 사진 보다가 이름을 모르면 나는 그때부터 궁금해서 꽃 감상은 뒤로하고 그만 그 이름이 무엇일까 골똘해진다.
내 갑갑한 마음처럼 그분도 그런 느낌일 것 같아 가르쳐 주고 싶다. 그래도 인터넷에 대한 답은 정확해야 하니까 두 번째 사진을 내려 받아 다음 꽃 검색에 카메라에 넣어 보았다. 내 생각대로 이 꽃은 말발도리일 확률이 53%입니다 하고 알려 주었다. 흠흠 그럼 그렇지 나도 이젠 야생화 이름 좀 아는데 하면서 기분 괜찮았다. 그래도 나는 전문가도 아니고 다음에서도 확률이 53%라고 하므로 자신이 없어 “말발도리 같은데 한 번 검색해 보십시오.” 하고 여지를 둔 답글을 남겨 두었다.





나는 야생화를 참 좋아한다. 길 가다가 예쁜 꽃이 있으면 항상 사진을 찍고 돌아와서 이름을 찾아본다. 그리고 예쁜 꽃의 이름이 어째서 그리 불리게 되었을까 생각하는데 하나같이 어쩜 그럴까 싶게 어울리는 이름이었다. 잊지 않으려고 내 컴퓨터에 이름과 함께 사진을 저장해 두고 본다.
함께 길을 가다가 친구들은 꽃 이름을 모르면 일단 내게 물어본다. 나도 모른다고 하면 “걸어 다니는 식물도감이 모른다면 누가 아느냐?”고 과찬하기도 한다. 그런 느낌도 싫지 않지만 나는 꽃을 사랑한다. 그냥 사랑하는 게 아니라 내가 할 수 있는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한다. 차 꽁무니가 화단으로 가지 않게 주차하는 사소한 것부터 시작해서 수목원에 사진 찍으러 가서도 좀 멀더라도 섣불리 화단에 들어가는 일은 삼간다. 또 귀한 꽃을 행여 찍었더라도 자생지를 정확하게 노출하는 일도 금기다. 한때는 야생화가 너무 좋아서 내게 화원에서 파는 장미가 아니라 야생화를 한 다발 꺾어다 주는 사람이 있으면 다른 건 아무것도 묻지 않고 시집가야지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런데 오후가 되어 메일함을 열어보니 ‘이**님이 페이스북에서 회원님을 언급했습니다.’ 하고 페이스북에서 자동 메일이 왔다. 얼른 열어보니 “가침박달입니다.^^” 하고 답글을 달아 놓으셨다. 엥? 이게 그 무시무시한 박달나무라고요? 화들짝 놀라서 가침박달과 말발도리 사진을 다 찾아놓고 비교해 보았다. 아주 비슷한데 조금 다른 것 같기도 하다.





초등학교 때 한 선생님은 우리가 숙제를 안 해 가면 “ 이놈들 박달나무 몽둥이가 부러지도록 맞아야 정신 차리나?” 하기 일쑤고 다 늦게 사진 가르쳐 준 선생님은 초점이 맞지 않으면 여지없이 “박달나무 몽둥이 스무 개 준비해 놓았으니 옥상으로 올라오세요. 마침 비도 옵니다.”며 겁을 주셨다. 그래서 나는 박달나무에 꽃이 핀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하지 못하고 우락부락 사람 두들겨 패기 좋은 나무인줄 알았다. 기껏 타작마당의 도리깨나 엄마가 국수 밀 때 쓰는 홍두깨가 그 나무이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상상 정도였다.
가침박달나무의 꽃은 예뻤다. 마치 요정이나 천사가 한 번 휘두르면 죄다 꽃이 되는 요술방망이가 그런가 싶게 가지 끝에 복슬복슬 달린 꽃이 탐스럽고 순수하다. 내친 김에 박달나무 꽃도 찾아보았다. 박달나무 꽃도 가침박달이나 비슷한 미모다. 아! 이렇게 예쁜 박달나무를 나는 지금까지 잘못 알고 있었구나! 그저 단단해서 사람 패기 좋은 나무로만 알고 있으니 박달나무가 기가 막힐 노릇이다.
우리는 자주 단편적인 지식만으로 선입견에 휩싸인다. 내가 아는 것이 모두인 듯 판단하고 믿는다. 박달나무야 미안하다. 단단한 목질을 뚫고 순을 내어 이런 예쁜 꽃을 피우는 줄 미리 알았다면 네게 대한 마음을 미리부터 닫지는 않았을 것을. 고운 박달나무 꽃가지로 맞는다면 나는 자주자주 숙제를 안 해가고 싶다. 사진 초점도 흔들리고 스무 개 몽둥이가 다 부러지도록 매를 벌고 싶다. 꽃 이름도 제대로 모르는 주제에 너는 꽃 몽둥이도 아깝다면서 화장실 청소나 시킨다면 그건 못 견디게 슬플 것이다.

EDITOR AE류정미
이정연 작가
이메일 : manjuyeon1@hanmail.net
2003년 4월 수필문학 등단.
2004년 중부매일신문 세정유감코너 짧은 수필 집필 (1월-4월까지)
2004년 여름호 수필 ‘망월사에서’ 에세이문학 등단
2004년 영남수필 회원 –2019년
2006년~2008년 에세이문학 올해의 수필 20선 추천
에세이문학 수필과 비평 에세이21 수필사랑 대구문협지 다수 기고
2011년 - 현재 대구 달서구 현대힐공인중개사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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