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다음 세대 기록인
청계천을지로보존연대 활동가 ‘안근철’
'제가 하는 기록의 작업들이 현재에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는 기록이었으면 좋겠어요. '


반갑습니다,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리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도시현장에 영향을 주는 기록작업을 하고 싶은 안근철입니다.
많은 기록프로젝트에 참여하셨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떤 계기로 지역을 기록하는 일을 시작하셨나요?
저는 졸업하고 농촌 지역에서 마을 만들기 사업을 하는 회사에 다닌 적이 있었어요. 그때 관심을 가지고 참여했던 분야가 자원 조사였어요. 그 마을이 가지고 있는 자원을 조사해서 지역의 정체성을 살릴 수 있는 여러 활용 계획을 세우기 위한 목적이죠. 그런데 촉박한 시간 속에서 진행되다 보니 일의 완성도가 떨어지는 느낌이 들어서 문화재 쪽으로 옮겨서 일을 한번 해봤어요. 그런데 이 분야는 활용을 염두에 두기보다는 문화재에 한정되는 조사만을 하다 보니 개인적으로 만족감이 크지 않았어요. 제가 관심 있던 분야는 당시에 그곳에 살았던 사람들이 이 공간과 맺어 왔던 관계, 즉 장소성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던 일이었거든요. 그렇게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을 시점에, ‘안녕, 둔촌주공아파트’의 이인규 작가님과 연이 닿았어요. 찾아가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마침 사무실에 자리도 하나 있으니 같이 작업하자고 하시더라고요. 제가 초기에 동네 자원을 조사하면서 느꼈던 아쉬움을 채울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었어요. 책 작업은 이미 작가님이 진행하고 계셨고, 투입 이후 저는 아파트와 관련된 실물을 수집하는 일들을 진행했죠.
청계천을지로보존연대 활동가 ‘안근철’

‘안녕, 둔촌주공아파트’ 기록에 참여하시면서 기록물을 수집했다고 하셨는데요, 구체적으로 어떤 자료들이었는지 궁금합니다.
우선 관리사무소만 보더라도 사실 굉장히 많은 기록물이 있었어요. 둔촌주공아파트가 1979년에 세워진 아파트인데, 1980년 후반 때부터 최근까지의 기록이 남아 있는 상태였거든요. 어떻게 보면 아파트 생활사를 알 수 있는 기록인데 그냥 방치되어 있다는 것이 놀라운 지점이었죠. 그중에 재미있을 것이라고 판단되는 지점은 주민들의 민원이 기록되어 있는 부분이었는데요. 아파트 시설 수리를 해달라는 민원부터 굉장히 소소한 민원까지 이 기록물에 다 남아 있었거든요. 그 시대를 그려볼 수 있는 정말 재미있는 기록이죠. 입주자대표회의의 경우는 회의록이 테이프에 다 녹음이 되어있기도 했어요. 이를 다시 들어보기 위해 디지털화 작업도 진행해서 일부는 데이터화하기도 했고요.
그렇다면 현재 진행하고 있는 기록프로젝트에 대한 이야기도 들어보고 싶습니다. 저희가 오늘 인터뷰를 진행하는 ‘세운상가’와 장소성에서 많은 관련이 있는 곳이죠?
네, 맞아요. 현재 저는 ‘청계천을지로보존연대’에서 활동하고 있어요. 저희 작업실이 위치한 세운상가를 둘러싸고 있기에 저 역시 당사자성을 가지고 있는 곳이기도 해요. ‘재개발이 들어가는 구역이라 빠르게 스러져가니 기록해야 한다’는 당위적 측면도 있지만 아주 촘촘하게 엮인 산업 생태계로서의 그 보존가치를 알리는 것도 중요한 지점이라 생각해요.




기록이 현재 그 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에 힘을 보태는 작업, 즉 ‘연대’로서 작용되는 측면이 있어보이는데요.
그렇죠. ‘청계천을지로보존연대’는 시민단체예요. 저희는 이곳을 지키기 위해 집회에 참여하거나 기자회견 등과 같은 활동에 연대하기도 해요. 사실 정비구역이 지정되기 전에 기록 사업이 진행되는 것이 맞지만 우리 사회의 흐름에서는 개발을 얼마 안 남긴 시점에서 기록 사업이 투입되는 경우가 많아요. 이는 아주 다분히 행정적인 차원이에요. 재개발이 진행되어 시민사회의 비판이 들어올 때, 촉박하게 진행한 기록 사업을 방패막이로 활용하려는 목적이죠. 그럴 때 지역을 기록하는 입장에서 개발과 기록 사이의 괴리감을 느낄 때가 있어요. 기록은 결국 개발 사업의 명분으로만 소비되는 것은 아닐까. 그런 부분들을 극복하는 여러 움직임이 있었고, 지금 ‘청계천을지로보존연대’에서 하는 작업도 그 과정일 수 있을 거예요.




‘연대로서의 기록’에서 고민해야 하는 지점 중의 하나가 ‘객관성’이라는 것은 기록하는 분들 사이에서는 난제라고 알고 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한 선생님의 의견은 어떠신가요?
청계천, 을지로 사장님들과 같이 연대하면서 행정에 요구하는 일들도 많은데, 이때 의견이 다 일치하지는 않거든요. 그럴 때 이것을 객관화시키기는 쉽지 않아요. 또 다른 시각에서 기록을 논의할 때 ‘완벽히 객관적인 기록은 없다’라는 전제가 있어요. 객관성의 확보는 기록하는 많은 분이 되게 조심스러워하고 어려워하는 문제이지만, 본인의 관점에 자신감을 가지는 것도 기록가로서의 자세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어차피 완벽히 객관적인 것이 없다면 충실히 우리 시대의 목소리를 우리의 관점으로 기록하는 것도 멋지지 않을까요?
마지막으로 선생님이 생각하시는 다음세대를 위한 기록은 무엇인가요?
저는 지금 제가 하는 기록의 작업들이 현재에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는 기록이었으면 좋겠어요. 공간이 이렇게 힘없이 철거되고 사라지는 단순한 현상만을 기록하고 끝내기보다는 그것이 왜, 어떻게 사라졌는지의 모든 것들을 기록한다고 생각하거든요. 행정 기록에서는 단순히 이런 과정으로 언제 철거되었다는 명제만 남겠죠. 이 장소를 지키기 위해 연대한 시민단체의 움직임이나 이곳에 살았던 사람들의 보존을 위한 활동들은 남기지 않을 거예요. 그들이 왜 지켜내려고 했는지, 그 목소리도요. 관에서 가지고 있는 평가의 기준 만이 아닌 여러 이해 관계자들의 의견까지 담아내어 어떤 대치 상황이 만들어졌고 서로 간 어떤 소통 의견들이 나누어졌는지까지 면밀하게 기록되어야 해요. 그리고 이렇게 치열한 현장의 기록들이 현재의 ‘청계천을지로보존연대’에도 힘을 보탤 수 있는 주체적인 권력을 줄 수 있겠죠. 그래야 다음세대에도 이런 재개발의 논의에서 지역주민들을 소외하지 않고 가는 방향으로 이끄는 근거가 된다고 생각해요.

EDITOR AE류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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