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삶의 풍경이 머무는 곳
[수필] 고사리를 뜯으며
'글. 이정연'

언니와 노이리 뒷산으로 고사리를 뜯으러 갔다. 노이리는 내게 고향처럼 정다운 곳이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오래 전엔 폐교된 분교가 하나 있었고 나는 가끔 혼자 그 학교에 놀러 갔다. 문이 잠긴 교실엔 녹슨 조개탄 난로가 있었고 칠판엔 아이들이 쓴 낙서가 그대로 있었다. 아무 때고 그곳에 가면 내 잃어버린 유년과 추억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시골마을을 바람처럼 돌아다니던 때가 있었다. 그때 내 눈에 띈 작은 분교가 바로 노이분교였는데 고향에 대한 내 그리움을 감춰 두고 꺼내 보기엔 더없이 좋은 장소였다. 대구에서 멀지 않은 곳이어서 고향이 그리우면 달려가서 흐드러지게 핀 조팝나무도 보고 맑은 저수지도 보고 오면 통증 같은 향수병이 조금 달래지기도 하였다.
마을 옆길 몇 해 전 불이 난 산으로 올랐다. 분홍색 보자기를 허리에 묶어 앞으로 큰 주머니처럼 만들었다. 얼마 올라가지 않았는데 벌써 고사리가 가끔 눈에 띈다. 작년에 피었다 진 마른 잎 근처에 보면 예쁘게 꼬부라진 고사리가 틀림없이 있다. 산나물 뜯는 일이 생각처럼 쉽지는 않다. 고사리는커녕 불이 난 메마른 산비탈에 균형 잡고 서 있기도 힘에 부쳤다. 바로 앞에서 꿩이 푸드덕 깃을 치고 날아올라 깜짝 놀라고 각시붓꽃이 예뻐 주저앉아 감탄하고 딱지꽃도 지나칠 수 없어 들여다본다. 아마 어머니 제사상에 놓을 고사리는 못 꺾을 것 같다.





어머니는 봄이 되면 하루도 집에 안 계셨다. 내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집엔 아무도 없고 괴괴한 정적만이 온 집안을 감싸고 있었다. 방에 책보를 던져 놓고 부엌에도 가보고 뒤란 우물가에도 가 봐도 살아 있는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는 듯 고요했다. 우리 집만 그런 게 아니라 집집마다 사립문을 닫아놓고 어디로 가 버린 듯 온 동네가 텅 빈 것 같았다. 나는 공연히 심술이 나서 봄볕에 부스러질 듯 바싹 마른 마당의 거름더미를 걷어찼다. 파리 몇 마리가 날아올랐다가 이내 내려앉아 미동도 하지 않았다. 너무 한가로워 슬프도록 무료한 봄날 오후였다.
내 무료함에 대한 인내도 한계에 이르러 울음보가 터질 때쯤 툭 하고 문지방 앞에 어머니의 나물 보퉁이가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아니 나는 사실 어머니 발소리보다 바람결에 묻어오는 당신의 냄새를 먼저 맡았는지 모른다. 땀 냄새 같기도 하고 젖 냄새 같기도 하고 향긋한 풀냄새 같기도 한 그 냄새 때문에 기다림은 내게 더 슬픈 고문이었는지 모른다.
나는 나물이나 고사리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다. 어머니가 나물 보퉁이 속에 숨겨 온 송기나 찔레 보드라운 줄기를 꺾어 오셨는지 그것만이 궁금했다. 어머니는 한 번도 그냥 오신 적이 없었다. 송기나 찔레가 없으면 띠나 예쁜 꽃이나 무슨 열매나 하다못해 쐐기벌레 빈집이라도 가져와 날 기쁘게 해주셨다. 내가 가장 좋아한 건 물론 송기였다. 어린 소나무 맨 끝부분의 가지를 잘라 솔잎을 떼고 겉껍질을 벗기면 수액이 한껏 올라 이미 묽은 젤리 상태로 되어 있는 것을 쓱쓱 긁어먹으면 시원하고 달콤했다. 지금도 나는 은은한 솔 향이 나는 그 송기가 수박보다 더 맛있다는 생각에는 변함없다.





향기로운 숲의 정취에 이름 모를 야생화도 보면서 고사리를 뜯는 일이 신선놀음인 줄 알았는데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언니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고 덥고 배도 고팠다. 먼 파도소리같이 등성이를 넘어온 솔바람 소리는 무섭고 외로웠다. 바위에 배낭을 내려놓고 잠시 앉아 있는데 골짜기 건넛산에서 소쩍새가 울었다. 비로소 골짜기에 안긴 마을이 눈에 들어왔다. 갈아 놓은 밭의 흙이 어찌나 부드러워 보이는지 감물들인 무명처럼 곱다.
산나물을 뜯느라 매년 어머니의 봄날은 짧았다. 일어나면 제일 먼저 '날이 더워 산나물 다 쇠겠다.'는 걱정이셨고 보면 그날들이 좀 힘드셨을까. 어머니는 그렇게 뜯은 산나물을 팔아서 내 공책과 연필도 사주시고 아주 이따금은 사탕 사 먹으라고 용돈도 주신 것이다. 어디 그뿐일까. 연중 가장 힘든 춘궁기에 산나물을 쌀로 바꿔오는 일도 있었다. 그 쌀 한 톨이 어머니의 피와 땀과 한숨이었음을 어찌 그때는 그리도 알 수 없었을까.
허리에 묶었던 보자기를 풀어 보니 미역취와 취나물을 빼고도 넘어지고 손등을 긁히고 해서 뜯은 고사리가 어머니 제상에 놓을 만큼은 되는 것 같다. 상에 놓인 나물 그릇을 보고 어머니는 빙그레 웃으실 것 같다. 고사리 나물 맛을 보시면 지난 나의 불효를 조금은 용서해 주실까. 해는 뉘엿뉘엿 넘어가는데 상념은 끝이 없다.

EDITOR AE류정미
이정연 작가
이메일 : manjuyeon1@hanmail.net
2003년 4월 수필문학 등단.
2004년 중부매일신문 세정유감코너 짧은 수필 집필 (1월-4월까지)
2004년 여름호 수필 ‘망월사에서’ 에세이문학 등단
2004년 영남수필 회원 –2019년
2006년~2008년 에세이문학 올해의 수필 20선 추천
에세이문학 수필과 비평 에세이21 수필사랑 대구문협지 다수 기고
2011년 - 현재 대구 달서구 현대힐공인중개사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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