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다음 세대 기록인
마을 기록가 ‘최호진’
'많은 사람들이 내가 사는 지역의 기록을 자산화하는 활동을 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자기소개 부탁드리겠습니다.
네, 안녕하세요. 저는 10년간 은평구 마을을 기록하고 있는 마을 기록가 최호진입니다.
은평구에서는 고유명사처럼 마을 기록가하면 선생님을 떠올리신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오래 활동을 했으니까요. 예전 직장 다닐 때는 사실 새벽에 나가서 밤에 들어오고, 토요일도 일했던 바쁜 생활이었으니 이웃을 만날 일이 없었어요. 그런데 마을 기록 활동을 하면서 내 주변의 이웃들을 정말 많이 만나게 되었거든요. 아마 지금 이 동네에서 제가 나이가 제일 많고, 제일 많이 돌아다니는 사람 중의 하나일 겁니다. 커피숍에서 봉사활동도 하고, 마을 축제가 있으면 미디어팀을 조직해서 지원 해주는 역할도 하고요. 길가다가도 저는 모르는 사람인데 ‘아저씨, 안녕하세요.’ 하면서 인사를 해오는 주민들도 더러 있어요. 마을 기록가로서 방송도 종종 나갔었으니까 그런 영향도 있겠지요.

마을 기록가 ‘최호진’


선생님께서 생각하시기에 마을공동체의 기록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가깝게 우리의 근현대사를 생각하더라도 모든 산업, 문화 분야에서 기록이 더욱 철저하게 시행되었다면 약소국으로서의 역사는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팔만대장경이라는 문화유산으로 꽃피웠던 문화강국의 힘은 여전히 남아있거든요. 제가 젊을 때는 엔지니어로 활동했었거든요. 그래서 우리나라 제1호 해외 기술연구생으로 선발되어 일본을 간 적이 있었어요. 그곳에서 가장 놀라웠던 것은 모든 산업 분야에서 아주 사소한 부분의 기술까지도 상세하게 기록으로 남겨두었다는 점이었어요. 현재 우리나라에서 쓰이는 생활 속의 작은 기술 중에서 저희가 연구생으로 발탁되어 일본에서 가져온 것들이 상당수 있어요. 저희는 그 기록물들을 보면서 기술의 발전이 기록의 토대 위에서 이렇게 융성할 수 있다는 것을 눈으로 보고 깨닫고 온 세대이죠. 국가 차원, 기업 차원에서의 이런 기록들이 분명히 지속과 발전에 도움이 되었으니, 마을 기록도 이런 측면에서는 큰 자산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전국의 마을 기록 활동가들을 보면서, 이런 부분은 조금 아쉽다고 생각되는 지점이 있으실까요?
보통 지자체 단위에서 실시하는 마을 기록 교육을 보면 한 강좌당 약 20명에서 40명 정도의 인원이 수강해요. 그런데 교육이 끝나고 보면 4명 정도 남으면 많이 남은 거예요. 제가 생각하기에는 너무 적은 숫자가 아닐까 생각해요. 또 그중에서도 실제 마을 기록 활동가로 활동하는 인원은 더 적고요. 이분들의 나이대를 보면 우선 중년층이 많고, 장노년층도 제법 포함되어 있어요. 이런 활동가들이 민간에서 해내는 역할이 마을공동체를 활성화하는데 아주 주요하다는 것은 다들 알고 계실 거예요. 그런데 자원봉사도 사실 하루 이틀이지, 이 부분에 대해서 지원이 다소 아쉽다는 생각은 늘 있었어요. 특히나 저처럼 팔순이 지나도 왕성하게 활동하는 장노년층은 활동가지원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점도 개인적으로는 아쉽고요. 우리나라 평균 수명은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고, 오팔 세대는 이미 경제 분야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죠. 그리고 그보다 더 위인 장노년층에서도 활발하게 활동하는 활동가들이 많이 있어요. 그런데 시니어 일자리 지원 정책에서 벗어나 있다는 점은 논의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또 다른 기록의 영역인데요, 네 번째 스무 살이라는 문구가 인상적이에요. 팔순을 맞아 전시회를 여셨다고요.
지금은 나이가 들면서 눈이 안 좋아지니 그림을 그리기가 쉽지 않아요. 그래도 두 번 전시회를 했고, 이번에 세 번째로 영상전시회까지 진행했습니다. 전시회를 하기 위해 그림을 시작하지는 않았는데, 마을 기록을 하면서 무엇이든지 기록으로 남기는 습관이 들게 되니까 자연스럽게 작품들도 잘 보관하게 되더라고요. 그것도 제 삶의 기록이니까요. 그렇게 작품이 6년 동안 쌓여서 주변 분들이 전시회를 하면 어떻겠냐고 제안을 해줬어요. 제가 그때 팔순을 앞두고 있었거든요. 일반적으로 팔순 잔치는 사람들 불러서 노래 부르고 밥 먹고 노는 거잖아요. 그런데 어쩌면 전시회가 나를 보여주는 행사니까 오히려 더 의미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주변에서도 팔순 잔치를 이런 형식으로 한 사람은 없다고 했어요. 개인적으로 정말 뿌듯했고, 좋은 기획이었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개인 블로그를 아주 열정적으로 하고 계시잖아요.
네, 하루를 일기식으로 계속 기록하고 있어요. 저의 일상기록을 남기는 것은 개인적으로 만족감이 상당히 높습니다. 제가 쓴 기사와 참여했던 행사, 여행 다녀온 이야기들을 올리죠. 자식들과 손주들도 블로그를 같이 보는데 소식을 공유한다는 기능적인 측면도 좋고요. 저의 일상기록이 세대를 뛰어넘어 공유된다는 것은 온라인상에서의 소통과 맞닿아있잖아요. 시니어층에서는 이렇게 의욕적으로 하시는 분들이 많지 않아서 아쉽죠. 제가 종종 강의를 나가면 이런 부분들을 많이 강조하고 있습니다.




정말 열정적으로 활동하셨는데, 주변에서 그만 쉬라는 권유도 있지 않으셨어요?
오히려 더 활동했으면 좋겠다는 응원들이 더 많아요. 친구들은 거의 집에서 무료하게 보내는데 제가 이곳저곳에서 얼굴을 비추면 그 나이에도 대단하다는 말들을 많이 해줍니다. 이게 어떨 때는 정말 큰 힘이 돼요. 그리고 스스로 인생을 알차고 재미있게 보내고 있다는 만족감도 얻고요. 기록 활동뿐만 아니라 은평 교육복지센터에서 저소득층 아이들을 위해서 요리하는 봉사도 3년 동안 했고, 서울시 학교급식 모니터링도 오래 했었거든요. 꼭 돈을 버는 일들만 사회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에요. 특히나 시니어들은 사회의 어른으로서 할 수 있는 일들이 곳곳에 정말 많이 있습니다. 본인의 의지만 있으면요. 집 밖으로 나와 활동하는 시니어가 더욱더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요즘은 체력이 떨어지고, 눈도 나빠져서 할 수 있는 일이 조금씩 줄어들어서 개인적으로 매우 아쉬워요. 하고 싶은 일들이 아직 많은데 말이죠. 하지만 오늘도 이런 인터뷰를 하면서 또 개인 블로그에 기록할 거리가 생겨서 기쁩니다. 저의 경험이 많은 시니어 마을 기록가, 활동가분들에게 응원으로 다가갔으면 좋겠어요.
마지막으로 선생님께서 생각하시는 다음 세대를 위한 기록은 무엇인가요?
저는 기록의 공공성도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해요. 기록으로서 사회공헌을 할 수 있다면 그게 저는 마을 기록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는 대학에서는 기록을 전문으로 배우는 학과가 있다고 들었어요. 그만큼 우리의 인생에서 기록이 차지하는 영역이 점점 넓어지고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기록의 힘을 삶의 현장에서 많이 발견한 사람으로서 더욱 많은 사람들이 내가 사는 지역의 기록을 자산화하는 활동을 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순간순간 지나는 일상의 장면들을 기록으로 남기면 그것들이 쌓여 힘을 발휘하게 되거든요. 그리고 그것이 내가 사는 지역에 언젠가 큰 도움이 되어있고요. 이런 활동들이 후대에 전해진다면 지금보다도 더 활발하게 마을 기록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마을을 위한 기록이 결국 모두를 위한 기록이 되는 것 같아요.

EDITOR AE류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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