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다음 세대 기록인
강원도 정선 마을활동가 ‘정은서’
'다음 세대는 할 수 없는 일을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이 다음세대를 위한 기록이라고 생각해요'


자기소개 부탁드리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정선에서 마을기록가로 활동하고 있는 정은서입니다.
'별글벼리'라는 마을기록단을 만들고, 대표로 활동하고 계신데요 처음 마을기록을 하시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처음은 편하게 하는 취미 생활 같은 거였어요. 정선은 예전엔 광산을 중심으로, 지금은 강원랜드라는 기업을 중심으로 경제 축이 옮겨간 작은 마을이에요. 그곳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정착해서 사는 저는 이곳에 소중한 옛 기억이 너무나도 많아요. 그래서 우리 마을의 오래된 사진을 모으는 것부터 가볍게 시작해봤는데 정작 마을 주민들이 꺼내주신 사진들이 너무 귀하고 소중한 자료들이더라고요. 그 순간 이건 진지한 마음으로 임해야 한다는 사명감 같은 것이 생겼어요. 이후 정선군 도시재생 지원센터 공모사업을 통해 본격적으로 마을기록이 가시화되었죠. 그렇게 사진으로 시작한 기록이 구술 기록을 통해 기억을 담는 활동으로까지 이어져 온 거예요.

강원도 정선 마을활동가 ‘정은서’


마을기록을 하면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지점이 있으실 것 같아요.
저희 기록의 특징은 사람에 집중하는 거였어요. 실제 인터뷰한 내용을 보면 마을 기록의 거창한 비전을 제시하거나 마을의 역사를 철저히 고증해 공신력 있는 자료로 남겨야겠다는 욕심은 없어요. 그 영역은 저희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저희는 다만 사람 개개인의 따뜻하고 소중한 기억, 때로는 눈물 담긴 목소리를 담아내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어요. 몇 년에 무엇이 세워지고 허물어지고 보다 중요한 것은 그래도 내가 광산 일을 해서 자식들을 다 공부시켰다고 말하는 어르신의 인생 그 자체니까요. 개개인의 삶에 집중하는 자세가 사회에서 민간 기록의 영역을 수행하는 저희 나름의 보람이라고 할 수 있어요.
구술 인터뷰를 하시면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도 있으셨을 것 같아요.
저 역시 이곳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몰랐던 이야기가 정말 많았어요. 특히 가장 놀라웠던 것은 삼척탄좌의 간부급 직원들이 거주하는 사택인 못골아파트 이야기였어요. 그 아파트에서 두 달에 한 번 회식을 하는데 아파트 마당에 300명이 모여서 삼겹살 파티를 했다고 해요. 예전에는 물론 동네잔치가 많이 열리기는 했지만 아파트 단위로 그렇게 크게 회식을 하는 문화는 새로웠어요. 쌀을 함께 씻고 앉히는 것부터 시작해서 집마다 과일이며 반찬들을 각자 준비해서 나누는 모습이 잘 상상이 되지는 않지만, 이야기를 들려주시는 어르신들을 보면 눈으로 보지 않아도 ‘정말 좋으셨었구나’ 생각해요. 여담이지만 제가 관광을 전공해서인지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이 아이디어를 어떻게 지역 관광자원 콘텐츠로 개발할 수 있을까 생각하게 되거든요.
구술 기록을 통해 발굴된 내용을 스토리텔링 하여 새로운 자원으로 탄생시키는 과정이 되겠군요. 지역 자원의 가치를 오히려 주민들은 익숙해서 새롭게 보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얼핏 들은 기억이 나는데요. 선생님은 다른 시각이신 것 같아요.
저는 제가 전공했던 분야의 덕을 보는 것 같아요. 관광과 마케팅을 공부했는데 익숙하지만 매력적인 지역 자원이 오히려 잘 눈에 띄는 것 같아요. 지금도 정선군 서포터즈를 2년째 하고 있거든요. 인스타그램에 콘텐츠를 올리고 있는데 조금 차별화된 포인트는 경험 중심으로 기록한다는 거예요. 단순히 맛집, 관광지 추천이 아니라 그 식당에서 어떤 메뉴를 어떻게 시켜서 무엇과 함께 먹으면 좋을지까지 세세하게 기록하고 소개해요. 만항재의 경우도 점심에 출발할 시 어느 카페에 들리고 어느 곳을 트레킹 하고 어떤 식당을 가서 노을을 보며 식사하면 좋을지 코스를 큐레이션 해주고 있어요. 이건 정말 지역민이기 때문에 제공할 수 있는 정보죠. 내가 사는 마을의 아름다움을 누군가에게 소개해주는 과정을 통해서 제가 점점 더 마을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기도 하고요.




별글벼리 팀원들의 만족도도 궁금해요. 자원봉사나 다름없는 일을 지금까지 함께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있을까요?
사실 저희는 첫 시작에만 방법론적인 어려움이 있었고, 그 이후부터는 수월하게 진행되는 부분들이 많았어요. 그 이유는 저희가 이미 지역을 너무 잘 알고 있어 기초 지식이 높았기 때문이죠. 정선에는 정암사라는 절에 국보인 ‘수마노탑’이라는 7층 석탑이 있는데 1972년에 이 탑을 보수를 하는 일이 있었다고 해요. 그때의 기억을 수집하려는데 저희는 그 당시 해체 작업에 참여했던 분을 이미 안다거나, 당시 그 절에 다녔던 보살님이 옆집에 사신다거나 하는 경우들이 많았어요. 기초 지식을 이미 충분히 밑에 깔고, 마을의 이야기를 들려주실 인력풀이 풍부하게 있다는 장점이 있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프로젝트가 이미 퀄리티적인 측면에서는 기준을 달성한 거예요. 물론 바쁜 시간을 쪼개서 사진을 찍고 인터뷰와 편집을 하는 것이 마냥 재미있기만 하지는 않았어요. 말 그대로 자원봉사나 다름없는 일이니까요. 그래서 생계로 인해 바쁘신 분들은 다음에 시간 되실 때 함께 해달라고 부탁드렸죠. 그런데 다들 시간이 되면 다 하고 싶어 하셨어요. 이 일이 한번 해보니까 정말 가치 있는 작업이라는 것을 개인적으로도 느끼신 것이죠.
마을기록으로 시작해 마을 활동으로 확대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될까요?
그럴 수 있겠네요. 마을활동가로서의 마음가짐도 자연스럽게 가지게 되는 것 같아요. 지역이 그렇게 크지 않아 마을의 어느 카페나 도서관, 기관을 가도 저희가 만든 책이 전시되어 있어요. 그리고 마을 분들이 이렇게 좋은 책을 만들어 줘서 고맙다는 말씀을 많이 해주세요. 실제로 마을 분들과 책이 나온 것을 축하하는 자리를 가지고 싶어서 출판기념회 겸 전시회를 하기도 했어요. 저희가 많은 일을 했다고는 하지만 결국 저희를 도와주신 마을 분들이 계셨기에 가능한 일이었으니까요. 저희가 아무리 좋은 기록집을 만들었다고 해도 누군가 읽어주지 않으면 그냥 종이와 다를 게 없잖아요. 이 수고로운 기록이 더 많은 분에게 널리 퍼져 나가는 것이 책을 만드는 의미가 아닐까 생각해요.
그림책에는 어떤 이야기가 담기게 되나요? 실제 다른 지역에서도 만나볼 수 있을까요?
저희가 그림책에 담고 싶은 콘텐츠는 우리 지역의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스토리예요. 정선은 지역 특화 콘텐츠가 많아요. 광산을 비롯한 도롱이 연못, 만항재, 만항 목장, 삼척 아트마인 그리고 저희가 어렸을 적 놀았던 토끼 꽃 엮기 놀이나 사루비아, 코스모스 꽃놀이는 지금 세대의 사람들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콘텐츠이기도 하고요. 물론 저희는 아직 초보자이기 때문에 그림이 세련되거나 스토리가 탄탄하기는 어렵겠지만, 구상하고 있는 것들을 실현하기 위한 도전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서툴지만 시행착오를 통해 그림책을 완성해 보면 어찌 되었든 다음 작품을 만드는 원동력이 될 테니까요. 더 나중에는 이 그림책을 테마로 한 마을을 만들면 우리가 지속 가능한 무언가를 생산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고 있어요.
마지막으로 다음세대를 위한 기록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다음 세대는 할 수 없는 일을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지금 당장 하지 않으면 없어지는 기억들이 있잖아요. 저희가 정선의 마을기록을 하기 위해 많은 어르신을 만나면서 알게 된 사실은 우리가 책에 담았던 수많은 구술 기록이 이전에는 그 어느 곳에도 담기지 않았다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그분들이 돌아가시면 아무도 그 기억을 찾을 수가 없어요. 그분들의 머릿속 어딘가에만 들어있기 때문에요. 저희는 그 기억을 잘 담아 현재에는 어떤 의미가 있고, 또 이것으로 어떤 지역 자산을 얻을 수 있는지 고민해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특히나 정선과 같이 인구소멸위험 지역은 이러한 가치가 다른 지역보다 더욱더 소중하게 느껴지거든요.

EDITOR AE류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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