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다음 세대 기록인
댄스필름 감독 ‘송주원’
'도시의 기억을 전달하는 도시공간무용프로젝트 풍정 각'


반갑습니다,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리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안무가이자 작가 그리고 댄스 필름을 만드는 영상 작업을 하는 송주원입니다.
댄스 필름은 개인적으로는 생소한 영역입니다. 본래 영상 쪽을 전공하셨나요?
아니요, 저는 원래 현대무용을 하는 사람이에요. 무용수로 안무가로 블랙박스 공연을 만드는 작업들을 오랜 시간 계속 해왔죠. 그런데 어느 순간 무대 바깥에서 펼쳐지는 공연을 기획하고 싶어졌어요. 현대무용도 실제 우리 삶을 이야기하지만 공연이 펼쳐지는 무대와 현실과 거리감이 답답하다고 느껴졌거든요. 차려진 그 무대는 당시 제가 고민하던 삶의 질문들과도 결이 맞지 않았고요. 그래서 무대의 공간을 도시의 장소에서 공연을 해보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2013년 겨울, 집으로 가는 길에 윤동주 문학관을 지나는데 그곳의 지하 물탱크를 개조한 전시공간에서 공연을 해보자 생각했어요. 마치 일제 강점기의 아픔을 겪었던 그분의 시와 삶이 그대로 표현된 공간 같았죠. 전시공간의 담당자는 야외무대를 제안했는데 무대가 아닌 도시의 장소에서 공연을 의도했기 때문에 윤동주 문학관에서는 결국 공연을 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한옥의 구조에 따른 이동형 공연으로 북촌문화센터에서 첫 도시공간무용프로젝트 ‘풍정.각(風精.刻)’을 올리게 되었어요. 그게 지금의 도시 곳곳에서 제가 공연을 하게 된 계기라고 볼 수 있어요.

댄스필름 감독 ‘송주원’


그럼 기존의 무대와는 다른 곳에서의 이 색다른 연출이 영상을 만나는 과정이 어땠을지도 궁금합니다.
흔히 무용에서는 관객을 만나지 않으면 그것은 작품이 아니라고 이야기해요. 저는 삶이 이루어지는 실제적인 공간에서 춤이 이루어지는 작업을 하고 싶었지만 그런 공간은 객석이 마련되기가 쉽지 않잖아요. 작품을 어떻게 관객에게 보여줄 수 있을지 많은 고민하다 우리가 만들어 놓은 이 장면들을 관객들이 잘 볼 수 있도록 영상을 찍자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어요. 처음에는 웹사이트에 올리는 방식으로 시작했어요. 그런데 막상 그 영상을 보고 있자니 너무 재미없는 거예요. 실제 라이브 공연이 주는 커뮤니케이션과의 괴리도 있었고 현장이 주는 공간감과 에너지가 느껴지지 않는 단순히 평면적인 영상일 뿐이었어요. 그래서 평면적으로만 느껴지는 영상에 안무적으로 리듬감을 씌우고 공간감을 보여줄 수 있는 영화적인 구성을 도입해 시도하게 되었어요.




‘풍정.각(風精.刻)’시리즈를 굉장히 오랫동안 진행해오고 계시는데요,
말과 텍스트의 설명 없이도 도시의 기억이 전달된다는 부분이 굉장히 인상적이었습니다.

‘풍정.각(風情.刻)’의 풍(風)은 우리도 모르게 바람처럼 흘러가는, 혹은 바람이 이끄는 삶의 다양한 좌표들을 의미해요. 정(情)은 삶의 감정, 각(刻)은 우리에게 계속 새겨져 있는 삶의 흔적을 나타내죠.
먼저 저는 사람의 감정에 주목했어요. 뿌리 깊은 유교 사회를 지나온 저희 세대는 기뻐도 슬퍼도 이 감정을 겉으로 잘 드러내지 않는 것을 미덕으로 삼는 어떤 암묵적인 함의들이 있었어요. 기술과 사회적인 시스템이 발전하면서 감정을 배제한 사회적인 분위가 용인되는 것이 저에게는 슬픈 일이었어요. 무용이란 본래 인간의 생각과 감정을 몸으로 표현하는 것인데 이러한 사회적인 풍토와는 상충되는 면이 있었죠. 그래서 우리가 살면서 느끼는 자연스러운 감정들을 몸으로 표현하고 기록하는 일을 해본 거예요. 그리고 이 감정을 어떤 특정한 장소를 기반으로 실행시켜보는 것이죠. 기록하는 과정을 통해서 그 장소와 시간은 여러 방면으로 중첩돼요. 장소의 시간 그다음에 무용수가 그곳에 서는 시간, 이후 관객들과 마주하는 시간까지. 중첩과 중첩의 시간들을 우리는 같은 장소에서 동시에 바라보며 이 자리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상상해보기도 하고 스스로 그 자리에 서보기도 하는 것이죠. 그 수많은 다양한 이들의 기억들은 우리의 몸을 통해 어떻게 재생되고 있는지를 영상으로 기록하는 과정으로 하고 있어요. 무대에서의 공연은 일시성과 한시성일 수 있는데 이 영상매체를 통해 많은 것들이 확장될 수 있었어요. 시간을 저장하기도 하고 그때 그 시간으로 우리가 다시 소환되기도 하죠.




유튜브에 올린 짧은 댄스 필름을 보면 정말 만만찮은 작업이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원테이크 작업은 팀의 합도 잘 맞아야 하고요. 영상 작업의 어려움은 없으셨나요?

정말 어렵고 설레는 일이었어요. 제가 전문적으로 알고 있는 분야가 아니니까요. 여러 방향으로 고민을 하고 준비를 해서 영상을 찍었는데도 춤이 보이지 않는 거예요. 장소의 축적된 풍경이 너무 아름답기도 하고 실제 장소의 이미지가 너무 세니까 오히려 춤이 묻히는 느낌도 있었죠. 그 한정된 예산과 프레임 안에서 의상, 조명, 촬영 등등 어떤 걸 선택하게 하느냐는 매번 어렵고 중요한 요소였어요. 작업은 현장에서 크고 작은 여러 문제들을 하나하나 배워나가면서 마주하는 과정이었어요. 그 무모함이 어떨 때는 힘이 되기도 했죠. 그러다가 최근에 조명을 활용하는 촬영을 해보기도 하며 작업에서 영상 후반 색보정, 사운드 믹싱까지 시스템화 된 현장에서 작업을 해볼 수 있는 경험을 했어요. 예산은 한정적이었고 그 안에서 어떻게든 작업을 해야 했었으니까요. 정말 많은 분들이 적은 예산을 감수하고 함께 해 주신 덕분에 지금이 있는 거죠. 갚아야 할 소중한 마음들이고요.
이 수많은 기록 작업들이 작가님 삶에는 개인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으신지도 궁금합니다.
이 기록이 처음에는 제 삶의 상처나 결핍에 대한 질문들이 작업으로 환원된 것들이 있었어요. 개인은 결국 개인의 삶의 이야기를 통해서 장면을 보게 되니까요. 무용수들의 춤을 통해서 나를 보게 되고, 우리가 기록하기로 한 그 마을 주민들의 모습에 저를 투영하기도 하고요. 무용을 하면서 마흔 살까지 삶의 방향을 정하지 않고 맹목적으로 앞만 보고 달렸었나 봐요. 그래서 모든 것들을 지쳐서 놔버리고 싶은 순간이 왔을 때, 제가 계속 삶의 출발점에만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몇 백 개의 출연과 수십 개의 안무작이 포트폴리오가 되었어도 그런 글자들만 남기도 하고 여전히 예술가로서 기초 생활을 걱정하는 나는 계속 남아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관성적으로 무용을 하는 내가 아닌 온전히 나로 살아갈 수 있는 작업을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이 작업들이 저에게는 굉장히 큰 위로가 되었고 나를 살게 하는 촉매가 되기도 했어요. 그리고 제 과거의 시간들과 화해를 하게 되는 계기도 되었고요.
마지막으로 다음세대를 위한 기록은 어떤 기록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지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저는 낱낱이 기록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길거리에 버려진 거울 하나에도 어떤 의미가 있다면 그것은 기록으로서의 가치가 충분하니까요. 운 좋게 90년대에 대학을 다니며 아날로그 문화를 경험한 사람으로서 온라인 시대를 사는 세대에게 우리가 살아온 삶의 경험을 어떻게 나눌 수 있을까 고민이 되어요. 저희 때만 해도 컴퓨터는 있었지만 이를 매개로 누군가와 자유롭게 소통하는 문화는 없었고 SNS로 연결되는 지금의 소통 방식과는 아주 다르거든요. 지금의 세대들에게 삶의 시간을 어떤 방식으로 전달해야 하는가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다음세대 기록인’이라는 타이틀을 봤을 때 굉장히 좋은 기획이라고 생각했죠. 우리의 삶은 결국 지금 시대의 증언과도 같은 역할을 하니까요. 무엇을 기억하고 어떻게 기록하는가는 꼭 필요한 작업이에요. 무엇을 기록 할 것인가 명확히 하고 어떤 방법론으로 전개할 것인가가 중요하죠. 기록을 통해서 무언가를 창작하는 사람으로서 또 그들의 기억을 재생하는 입장으로서 호흡을 길게 하고 그들의 삶과 장소로 들어가 기다리는 일들을 오래 했으면 좋겠어요.

EDITOR AE류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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