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

717개 계단 올라 하늘 걷고 바다 위 산책하고 포항에 이런 곳이?

2024-05-03

라이프가이드 여행


2023~2024 한국관광 100선
717개 계단 올라 하늘 걷고 바다 위 산책하고 포항에 이런 곳이?
'경북 포항시'

    한 발 한 발 내디딜 때마다 머리가 쭈뼛 선다. 바람이라도 불면 온몸이 휘청인다. “꺄아.” 사방에서 들려오는 환호 혹은 비명, 즐거움과 두려움이 반반 섞여 있다. 맨몸으로 롤러코스터를 오르는 기분, 난생 처음 느껴보는 짜릿함에 정신이 번쩍 든다. 
    국내 최대의 체험형 철제 조형물 ‘스페이스워크(Space Walk)’다. 동서·남북으로 각각 60·57m, 높이 25m에 이르는 엄청난 규모는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보는 이를 압도한다. 사람을 실어나르는 열차만 없을 뿐 하늘 위로 구불구불 휘어진 철제 곡선의 모습은 영락없는 놀이공원 속 롤러코스터 같다. 경북 포항시 북구 환호공원에 자리한 이 초대형 조형물은 2021년 포스코가 117억 원을 들여 만들어 포항시민에게 기부한 ‘작품’이다. 독일의 부부 작가 하이케 무터와 울리히 켄츠가 디자인했는데 독일 뒤스부르크 앵거공원의 롤러코스터를 벤치마킹했다.
    스페이스워크는 총 333m 길이의 717개 계단으로 만들어졌다. 계단은 철조망이 얽힌 형태로 바닥을 내려다보면 수십 미터 아래 땅이 고스란히 보인다. 트랙은 처음에는 평평하게 이어지다가 조금씩 경사를 높이며 마침내 360도 원형을 이룬다. 이 아찔한 조형물을 경험하는 단 한 가지 방법은 직접 걸어 올라가는 것뿐. 계단이 완전히 뒤집어진 형태로 이어지는 구간은 출입이 통제되지만 경사가 심하지 않은 곳도 오르기는 쉽지 않다. 높이 올라갈수록 세찬 바람과 사람들의 무게로 인한 흔들림이 심해지기 때문이다. 더욱이 조형물이 공원 언덕에 자리한 탓에 조금만 트랙을 올라도 등골이 서늘해진다. 반면 조금만 용기를 낸다면 한 계단씩 밟을 때마다 구름 위를 걷는 듯한 스릴을 느낄 수 있다. 스페이스워크는 한 번에 500명이 오를 수 있을 정도로 안전하게 설계됐지만, 안전 관리를 위해 1회 150명으로 출입 인원이 제한된다.
    비행기와 열기구, 각종 놀이기구 덕에 하늘을 나는 것이 별일 아닌 일이 돼버린 시대지만 온전히 자신의 힘으로만 지상으로부터 멀어져가는 기분은 어디에서도 경험하기 힘든 색다른 느낌이다. 작품을 완벽히 체험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약 1시간. ‘승천’을 포기하고 발걸음을 돌리는 이도 있지만 ‘네 발’로 걸어서라도 하늘 길을 정복하려는 이도 눈에 띈다. 아무렴 어떤가. 360도 원형 트랙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면 ‘사랑이 오래도록 지속된다’는 속설도 있다니 반드시 정복을 목표로 할 필요는 없다. 햇살에 반짝이는 은빛의 작품을 배경으로 남긴 사진 한 장 속 추억은 누군가에겐 순간의 짜릿함보다 오래 기억될 것이다. 

 
경북 포항시 북구 스페이스워크. 717개 계단을 오르면 구름 위를 걷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사진. 포항시)


 
LED 3만 개가 비춘 포항의 야경
    작품을 직접 체험하지 않더라도 이곳에 가야 할 이유는 또 있다. 스페이스워크 동쪽으로 영일대 바다의 너른 풍광을 한눈에 담을 수 있기 때문이다. 포항은 해안선을 따라 대부분 평지로 이뤄진 도시지만 환호공원 언덕에 오르면 발아래 동해를 한 품에 안을 수 있다.
    밤 풍경은 더욱 낭만적이다. 해가 사라진 뒤 스페이스워크는 스스로 조명을 내뿜는다. 어둠 속에 빛나는 그 모습은 마치 우주정거장을 연상케 한다. 영일대 바다 멀리에선 포스코 포항제철소가 위성처럼 함께 빛을 발한다. 2016년부터 제철소 경관조명사업을 추진해온 포스코는 굴뚝과 공장건물이 이어지는 약 6㎞ 구간에 3만 개의 발광다이오드(LED) 조명을 설치해 매시간 다양한 라이트쇼를 선보인다. 어둠을 수놓는 빛의 향연은 포항12경 중 하나로 손꼽힌다. ‘철의 도시’ 포항에서만 만날 수 있는 아름다움이다.
    스페이스워크는 주말이면 평균 6000명, 평일에도 2000여 명이 다녀갈 정도로 지역을 대표하는 랜드마크로 자리 잡았다. 사람이 몰릴 땐 기다림을 감수해야 한다. 또 바람이 세거나 비가 내릴 땐 출입이 불가능하니 방문 전 운영 여부도 꼼꼼히 확인해야 한다. ‘느림의 미학’을 느껴보는 것이 작품을 만든 취지라니 조바심은 내려두고 오길. 

 
左)경북 포항시 북구 스페이스워크. 717개 계단을 오르면 구름 위를 걷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사진. 포항시) 右)스페이스워크


 
바다 위 구불구불 산책길 ‘스카이워크’
    스펙터클한 우주여행 뒤에는 호젓한 바다 산책이 기다린다. 스페이스워크에서 약 2㎞, 영일만 바다에 다다르면 동해로 들어가는 문 ‘스카이워크(Sky Walk)’가 있다. 높이 7m, 길이 463m의 해상보도는 말 그대로 물속에 놓여 있다. 그 위를 걷다 보면 당장이라도 바닷속으로 뛰어들고 싶을 만큼 가슴이 탁 트인다. 보도는 평평하게 이어지다 원형으로 휘어지는 구간에선 높이가 살짝 더 올라가는데 바로 이 지점에 서면 수평선에 몸이 가닿을 듯 느껴진다. 동해의 물빛은 왜 이리 푸른지. 에메랄드빛으로 서로의 경계를 지워버리는 하늘과 바다 사이에 서 있자면 자연과 하나가 되는 기분이다.
    스카이워크를 다 걷는 데는 20~30분이면 족하다. 곳곳엔 앉아서 쉴 수 있는 벤치가 마련돼 있어 ‘바다멍’ 때리며 더욱 느긋하게 산책을 즐길 수도 있다. 여기에 멀리 보이는 가파른 해안절벽은 한 점의 병풍화로 펼쳐진다. 스카이워크를 완주하는 루트는 여러 갈래 길로 다양하지만 가장 외곽으로 난 해상로를 따라 걷기를 추천한다. 포항 바다를 가장 깊숙이 느낄 수 있어서다. 바다 산책을 즐기는 또 다른 재미는 발아래에 있다. 해상보도의 밑바닥은 반투명 유리로 만들어져 파도가 부서지는 모습, 바위와 해초 등을 감상할 수 있다.
    오랜 시간 걸어 허기진 배는 포항의 명물 물회로 채워보자. 영일대 바다에서 스카이워크로 이어지는 길에 물회거리가 있다. 동해에서 바로 잡아 올린 생선에 살얼음을 동동 띄운 물회 한 그릇엔 청량한 바다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바닷바람에 언 몸을 녹이고 싶은 이들을 위해 주변 카페도 문을 활짝 열어두고 있다. 최근 영일만 주변으로 카페거리가 형성되면서 이 일대는 젊은이들에게 각광받고 있다. 작은 바다마을이 품고 있는 매력이 사람들을 불러들인다. 

 
경북 포항시 남구 구룡포 일본인 가옥 거리는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의 촬영지로 알려지며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카페로 탈바꿈한 드라마 촬영지 모습


 
‘동백·용식’ 순정 간직한 일본인 가옥 거리 “동백 씨 어서오세요~”
    사장님의 우렁찬 환영 인사에 어리둥절한 것도 잠시, 발걸음을 옮긴 그곳에선 모두가 ‘동백’이 된다. 포항의 대표 관광지 중 하나인 구룡포 일본인 가옥 거리다. 이곳은 2019년 방영된 인기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의 촬영 장소로 알려지며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특히 극중 주인공 동백(공효진 분)이 운영하는 식당 ‘까멜리아’는 카페로 탈바꿈해 여행객의 발목을 붙든다. 카페는 근대 일본식 목조 가옥에 자리하고 있어 이국적인 모습이 ‘인생샷’ 건지기에 딱이다. 드라마의 등장인물들을 모티프로 한 각종 기념품, 포항 산딸기로 만든 ‘동백샌드’ 등 재치 넘치는 소품과 메뉴가 가득해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시간가는 줄 모른다. 카페와 곧장 이어지는 ‘동백서점’에서 흘러나오는 ‘용식(강하늘 분)’의 독백도 한참을 서 있게 만든다. 나지막한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자면 한 여인을 향한 그의 순정에 누구나 동백이 되지 않을 수 없다.
    동백과 용식이 앉아 이야기를 나누던 돌계단도 실재한다. 가파른 층계를 올라 구룡포 공원에 다다르면 여러 마리의 용이 서로 엉켜 하늘 위로 솟구치는 모습의 거대한 조형물이 위용을 드러낸다. ‘아홉 마리 용이 승천한 포구’라는 뜻의 구룡포의 전설을 표현한 것이다. 구룡 뒤로는 경북 최대의 항구, 구룡포 모습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갑진년 ‘푸른 용의 해’를 맞아 이곳을 찾는 것 또한 의미가 있을 것이다. KTX 포항역, 포항경주공항과도 거리가 멀지 않으니 포항 여행의 출발지로도, 종착지로도 좋다.
    포항시는 일제강점기인 1923년 구룡포항을 축항한 뒤 이곳에 정착한 일본인들의 생활상을 재현하기 위해 2011년부터 475m 길이의 일본인 가옥 거리를 조성했다. 때문에 100년 전으로 시계를 돌려놓은 듯한 장소들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일본인 하시모토 젠기치가 살던 2층 살림집을 개조해 만든 구룡포근대역사관이 대표적이다. 지금까지 내부 형태를 그대로 보존한 채 일본 찻집으로 운영 중인 가옥, 이제는 냉면집으로 간판을 바꿔 단 일제강점기 구룡포의 최대 숙박시설인 대등여관에도 그 시절의 잔해가 쌓여 있다. 포항시가 아픈 과거를 소환한 이유는 일본인의 풍요로운 생활 뒤 감춰졌던 우리 민족의 궁핍한 삶을 기억하고자 함이다. 구룡포의 바다내음을 맡으며 생각한다. 역사와 사람, 그 속의 추억과 상처를 되새기는 일은 여행객의 특권이자 의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