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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나무는 고향이다

  • 오래된 나무에는 표정이 있다. 동구 밖까지 따라 나와 손 흔드시며 배웅하시던 할머니를 닮은 나무, 보는 사람의 마음을 순하게 만드는 나무, 장난꾸러기 도깨비들을 품고 그 품에서 놀게 하는 신령스런 나무, 어린 시절 놀이터가 돼주었던 나무는 추억 어린 해맑은 웃음을 웃게 하고, 700년 고목은 옛 사람의 감흥까지 품었다. 고향 같은 느티나무 고목 두 그루 미세먼지 매우 나쁨 일기예보가 빗나간 오전 하늘은 맑았다. 충북 증평군 증평읍 장동리 옛 읍사무소 자리에 있는 240년 정도 된 느티나무 두 그루를 보고 증평의 오래된 나무들을 찾아 본격적으로 길을 나섰다. 증평군 증평읍 남하리 1030에는 300년 가까이 사는 느티나무가 한 그루 있다. 이 마을은 예로부터 ‘장뜰두레농요’가 전해지는 곳이다. 느티나무 고목 주변에 농촌의 생활 풍속을 볼 수 있는 증평민속체험박물관이 있다. 박물관 일대는 농촌 생활 문화의 전통을 체험할 수 있는 들노래 민속마을로 조성됐다. 논과 밭 사이 작은 연못에 두꺼비 연못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연못에 비친 나무 그림자가 정겹다. 옛 증평읍사무소 자리에 있는 느티나무 고목 두 그루 둥그런 박이 열린 초가집 조형물이 있는 민속놀이마당을 지나 증평 남하리 석조보살입상 앞에 선다. 작은 석불 2기와 3.5m 정도 되는 석불 1기가 나란히 서있다. 인자하게 웃는 큰 석불 옆 작은 석불은 해맑게 웃는 장난꾸러기 아이들 얼굴을 닮았다. 하루 농사일 마치고 땀이 밴 들녘으로 저녁 바람 쐬러 나온 농사꾼 아버지와 자식들 모습이 비친다. 농촌 마을 고향 같은 들노래 민속마을을 돌아보고 가는 길, 고향집 동구 밖까지 나와 손 흔드시던 할머니를 닮은 느티나무 고목이 배웅하는 것 같아 자꾸만 돌아보며 손을 흔들고 싶어진다. 증평읍 남하리 330-1에 있는 300년 가까이 된 느티나무를 찾아가는 길, 너른 들녘 안 옹기종기 모인 지붕 낮은 집들 한쪽에 커다란 나무가 한 그루 보인다. 보기만 해도 마음이 순해진다. 죄마저 품어 줄 것 같다. 나무가 고향 같다. 김득신의 죽리 연가, 그 마을의 700년 느티나무 임진왜란 진주성 대첩의 주인공 김시민 장군의 손자이자 17세기 조선의 대표 시인 김득신, 그는 81년의 생을 통틀어 1천500편이 넘는 시를 썼다. 김득신은 증평군 증평읍 죽리 마을에 대한 시도 남겼다. 죽리 마을 주막에서 피어오르는 연기에 외로움이 일었던 김득신은 저물녘 난간에 기댄 늙은 사람을 시에 등장시킨다. 지는 해 누그러진 햇볕이 성긴 수풀에 비치는 풍경에 이르러서는 흥취도 아스라하다. 김득신의 죽리 연가가 아득한 실마리다. 죽리 마을 700년 느티나무 앞에 섰다. 증평군 증평읍 죽리 516-1에 700년 가까이 살고 있는 느티나무가 한 그루 있다. 김득신의 시에 등장하는 죽리 마을, 시에 나오는 ‘쓸쓸한 주막’도 ‘외로운 연기’도 ‘난간에 기댄 늙은이’도 다 사라진 그곳에 홀로 남아 있는 느티나무 고목 아래 선다. 나무 옆에 박샘이라는 이름의 샘이 있다. 샘에서 샘솟는 물이 도랑을 이루어 흐른다. 조선시대 세종 임금 때에도 이 샘이 있었다고 한다. 세종 임금이 초정약수터로 가던 길에 죽리 마을의 샘에서 물을 마셨는데, 그 맛이 좋았다 한다. 그 샘이 지금의 박샘이란 이야기가 전해진다. 박샘 옆 느티나무 고목 아래서 만난 마을 할아버지가 옛날 얘기를 들려줬다. 당신 어렸을 때에는 샘이 어른 가슴 높이 정도로 깊었다. 가물어도 샘물은 그대로였다. 샘물이 넘쳐흘러 도랑을 만들었고, 마을 아낙들은 그 도랑에서 나물도 씻고 빨래도 했다. 샘 옆은 논이고 미나리꽝이었다. 박샘 옆 정자에 올라 샘과 도랑, 느티나무 고목을 한 눈에 넣는다. 도랑물 소리, 빨래방망이 소리, 느티나무를 지나는 바람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은행나무 고목이 있는 두 마을 증평군 도안면 도당3리로 들어서는데 도깨비 조형물이 마중한다. 예로부터 이 마을에 내려오는 도깨비 전설을 이 마을 출신 작가가 이야기로 꾸몄다고 한다. 그 이야기에 등장하는 도깨비를 형상화한 것이다. 도깨비 조형물은 마을 안에도 수두룩했다. 그 풍경에 신령처럼 우뚝 솟은 한 그루 나무가 돋보인다. 500년이 다 돼가는 은행나무다. 이야기 속 도깨비들이 은행나무 고목의 품 안에서 신나게 뛰어노는 모습이다. 은행나무 고목 앞에서 마을 할아버지를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은행나무가 있어서 마을 이름도 ‘은행나무골’이었다. 옛날부터 매년 정월 음력 13일에 마을의 안녕과 사람들의 평안을 위해 ‘마을제’를 지낸다. 은행나무 고목 밑동에 새끼줄로 만든 금줄이 묶여있다. 은행나무 고목은 그렇게 마을 사람들의 위안이 되고 사람들은 오래된 나무를 보살핀다. 증평군 도안면 화성리 산 52-1에는 500년을 훌쩍 넘겨 살고 있는 은행나무가 있다. 은행나무가 있는 마을은 예로부터 ‘울어바위 마을’이라고 불렸다. 마을에서 만난 아저씨 말에 따르면 마을을 감싼 이성산 산줄기가 보강천으로 이어지는데, 일제강점기에 철도를 만들면서 그 지맥이 끊겼다. 당시 철도를 놓기 위해 산에 있는 바위를 깨는데, 부서진 바위 조각이 하룻밤 사이에 축축하게 젖어있는 걸 마을 사람들이 보았다. 마을 사람들은 그것이 바위가 흘린 눈물이라고 여겼고, 바위가 울었다고 해서 ‘울어바위’라는 이름이 생겼다고 한다. ‘울어바위’의 또 다른 유래는 조선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마을 앞 유래비 내용에 따르면 당시 마을을 지나던 스님이 마을 동남쪽 산 아래 커다란 바위에 명암(鳴巖)이란 글자를 새기며 나라에 큰 난이 생길 때 바위가 울 것이라고 말했다. 임진왜란 때에 바위가 울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500년 넘은 은행나무는 ‘울어바위 마을’ 가운데 있다. 조선시대 성종 임금 때인 1490년에 연사종의 증손 연정이라는 사람이 이곳에 낙향하면서 심었다고 한다. 옛 이야기를 들려주시던 마을 아저씨는 어린 시절 친구들과 은행나무 밑동에 파인 구멍으로 들어가 놀기도 했다며 추억 어린 웃음을 활짝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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