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는 123년 동안 백제의 왕도였다. 아득한 세월이 깃든 고도이니 역사의 보물 창고라 불러도 어색하지 않다. 마천루를 자랑하는 현대의 메가시티에 비하면 부여는 소읍에 불과할 테다. 하지만 700년 왕조를 지켜온 백제의 위대함은 결코 그에 미할 바 아니다. 고도 곳곳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백제의 아름다움을 바람을 타고 하늘에서 내려다본다.
신록에 물든 궁남지
바람아~ 바람아~ 두둥실 떠나볼까? 평소 같으면 차량으로 가득할 주차장 바닥에 집채만 한 풍선이 펼쳐져 있다. 다름 아닌 열기구이다. 부여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사계절 열기구 비행이 가능하다. 부여의 열기구는 일반적으로 백마강 둔치에서 이착륙하지만, 특별히 이날은 궁남지 공영 주차장에서 이륙한 뒤 백마강 둔치에 착륙할 계획이다.
부여에 자리한 백제역사유적지를 열기구를 타고 답사하기 위해서이다. 열기구는 방향과 속도를 자유자재로 조종할 수 없다. 바람이 이끄는 대로 부유하듯 날아가는 게 묘미다. 그나마 고도 조정은 가능한데 버너로 열기구 안의 공기를 데워서 한다. 열기구 안의 공기 온도가 100℃보다 높으면 기구가 올라가고 낮으면 내려간다. 평균 고도는 200~300m이다.
01. 백마강을 비행하고 있는 열기구 02. 열기구가 부소산성을 지나 백마강으로 향할 때 마주한 풍경
열기구 안에 뜨거운 공기를 채우자 팽창하기 시작한다. 드디어 열기구가 둥실둥실 하늘로 떠오른다. 주차장에 주차된 차들이 성냥갑처럼 앙증맞고, 사적 부여 궁남지는 신록이 가득하다. 『삼국사기』에는 궁남지에 관한 내용이 언급되어 있다. ‘궁궐 남쪽에 연못을 파고 물은 20여 리 밖에서 끌어다 채웠으며, 연못 가운데 방장선산을 상징하는 섬을 만들고 뱃놀이를 했다’는 내용이다. 궁남지를 ‘서동공원’이라고도 부르는데 이는 634년 궁남지를 조성한 백제 무왕의어릴 적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열기구가 시시각각 변하는 풍향과 풍속에 따라 궁남지 상공을 물에 뜬 배처럼 유영한다. 어느 정도 고도에 오르자 궁남지 가운데 자리한 포룡정이 아득히 멀어져 간다.
03. 낮은 고도에서 바라본 정림사지 04. 빽빽한 숲속에 자리한 삼총사
백제 고도 부여, 하늘에서 만나다 날씨 운이 좋은 걸까? 바람이 정확하게 다음 코스, 사적 부여 정림사지로 이끌어 간다. 조종사도 숙련된 기술을 뽐내며 고도를 조종한다. 고도의 높낮이에 따라 부여 읍내를 한눈에 담기도 하고, 골목길을 걷듯 현지인들의 일상을 구경하기도 한다.
정림사지는 백제가 공주에서 부여로 천도한 직후 지은 절이다. 지금은 넓은 절터에 외로이 남은 국보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이 융성했던 백제 불교 문화를 웅변해 주고 있다. 경내의 잔디 위로 아침 햇살이 비쳐 융단을 펼쳐놓은 듯 연둣빛이 돋보인다. 석탑의 지붕돌은 금테를 두른 듯 반짝이고, 옥개석은 버선코처럼 단아하다. 곧이어 탑의 전신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세월의 더께가 켜켜이 쌓였다. 천년이 넘는 세월을 견뎌온 탑이 대견스럽고 고맙다.
정림사지 뒤편 12시 방향 너른 터는 사적 부여 관북리 유적이다. 백제의 왕궁터로 알려진 곳이다. 열기구에서 내려다보니 대형 건물터와 흔적이 지상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또렷하다. 왕궁터는 부소산(106m)으로 다름질하듯 이어진다. 백마강과 맞닿은 사적 부여 부소산성은 『삼국사기』 「백제본기」에 사비성 또는 소부리성으로 기록되어 있다. 빽빽한 숲속에서 삐쭉 얼굴을 내민 충청남도 문화유산자료 삼충사 충청남도 문화유산자료 영일루 충청남도 문화유산자료군창지가 바람처럼 흘러간다.
05. 백마강 둔치에서 바라본 부소산의 낙화암 절벽
열기구가 한껏 고도를 높이자 바람이 열기구를 부소산 북사면 너머로 밀어간다. 이어진 풍경은 탁 트인 백마강이다. 백마강은 ‘큰 나라의 강’을 뜻한다. 백제는 백마강에 기대어 큰 나라로 번성했다. 뒤를 돌아보니 부소산이 백마강으로 곤두박질하는 모양새이다. 깎아지른 절벽 틈에 충청남도 자연유산자료 낙화암이 선명하다. 승자가 원하는 달콤한 사관에 따라 한때 ‘삼천 궁녀’라는 터무니없는 이야기가 전설로 남아 있는 곳이다. 비록 전설이라 하지만 백제의 멸망을묵도했을 낙화암과 백마강은 왕조의 흥망성쇠를 아는지 모르는지 여전히 소리 없이 흘러간다. 유구한 백마강 감상을 끝으로 40분가량 이어진 열기구 백제역사유적지 답사를 마무리한다. 이제 하늘에서 본 유적지를 두 발로 밟으며 다시금 곱씹어볼 일이다.
06. 부여 왕릉에는 7기의 무덤이 있다. 07. 부여 가림성은 웅진성과 사비성 방어용으로 쌓은 석성이다
백제문화의 정점 ‘역대급’ 국보를 마주하다 국립부여박물관은 백제문화의 정수로 손꼽히는 국보 백제 금동대향로를 볼 수 있는 곳이다. 1993년 사적 부여 왕릉원(당시 능산리 고분군) 주차장을 조성하기 위해 사전 발굴조사를 진행했는데 그때 진흙 속에서 세상을 발칵 뒤집어놓은 금동대향로가 발견됐다.
박물관에서 금동대향로를 마주하는 순간 놀라움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무엇에 홀린 듯한 느낌이랄까. 금빛 영롱한 고귀한 자태는 경이로움, 그 자체이다. 연꽃을 떠받친 용의 힘찬 기상 위에 연꽃 모양의 향로 몸체가 사뿐히 올라앉고 그 위에 첩첩산중이 펼쳐진다. 거기에 용맹한 호랑이와 산속을 뜀박질하는 사슴, 귀여운 원숭이, 덩치 큰 코끼리,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까지 무려 39마리의 동물과 16명의 사람이 정교하게 세공되어 있다. 자연스럽게 최상부에있는 봉황으로 시선이 향한다. 날카로운 눈매와 부리를 가진 봉황은 비상할 채비를 마친 듯하다. 이 모든 게 전체 높이 62.5cm에 고스란히 담겼다.
백제 금동대향로의 감동이 사그라지지 않은 채 부여 왕릉원으로 향한다. 모두 7기의 무덤이 있지만 도굴되어 몇 안 되는 유물만 발굴되어 아쉬움이 많은 곳이다. 그나마 사적 부여 능산리 사지에서 백제 금동대향로와 국보 부여 능산리사지 석조사리감이 출토되면서 이곳이 왕실 무덤 지역으로 확증됐다.
백제는 한성, 공주에 이어 부여를 거치며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여로 천도한 뒤 의자왕에 이르러 700년 왕조를 마감했다. 머나먼 당나라에서 생을 마친 의자왕의 가묘가 부여 왕릉원 한편에 자리하고 있어 애잔한 마음을 더한다.
08. 부여 가림성과 가림성 느티나무
사랑나무로 유명한 부여의 인생사진 포토존 부여에는 높은 산이 드물다. 대부분 구릉 같은 낮은 산 일색이다. 게다가 험하지도 않아 충청도 사투리처럼 부드럽고 순하여 정겹다. 부여 남쪽에 있는 성흥산(286m)도 예외가 아니다. 금강을 사이에 두고 강경이 지척이며 강을 따라 흘러가면 서천에 닿는다. 이 아담한 산에 사적 부여 가림성이 있다. 산성은 백제의 수도였던 웅진성과 부소산성을 방어하기 위해 금강 하류 인근에 쌓은 석성으로 백제 동성왕 23년(501)에 쌓았다고 전한다. 성의 형태는산 정상을 중심으로 빙 둘러싸인 테뫼식이다. 부여 가림성은 나당연합군에 맞서 싸운 역사의 현장인 동시에 백제 멸망 이후에는 백제 부흥 운동의 현장이기도 하다.
산성에 오르는 길은 의외로 수월하다. 주차장에서 한달음에 올라갈 거리다. 인적 드문 외딴 산성이지만 도로, 주차장, 화장실까지 편의시설이 잘 조성돼 있다. 이곳이 영화와 드라마 촬영지로 알려지면서 일명 ‘인생사진’ 명소로도 알려졌기 때문이다.
09.궁남지에 비친 포룡정을 촬영해 보자. 데칼코마니 된 재밌는 사진을 담을 수 있다.
10.가림성 느티나무를 배경으로 촬영한 뒤 좌우를 합성하면 하트 모양의 사진이 된다.
여행객이 인생사진 배경으로 즐겨 찾는 주인공은 천연기념물 부여 가림성 느티나무이다. 이 나무는 성안으로 들어가면 아찔한 성벽 끄트머리에 존재감을 확실한 뽐내며 위풍당당하게 있다. 수령 약 400년, 수고 22m, 흉고둘레 5.4m에 이르는 거대한 규모이다. 워낙 덩치가 크다 보니 땅을 헤집고 올라온 뿌리가 여기저기 울퉁불퉁 솟아 힘찬 기운을 느낄 수 있다. 특히 나뭇가지가 하트 모양의 반쪽처럼 보이는데 이것을 사진으로 촬영한 뒤 좌우를 겹쳐 합성하면절묘하게 하트 모양이 완성된다. 이 나무를 사랑나무라 부르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