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다음 세대 기록인
문화재 디지털 복원가 ‘박진호’
'과거의 어느 순간을 현재로 불러와 시대를 관통하는 AI딥러닝 기술'


반갑습니다,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리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문화재 디지털 복원가 박진호입니다.
‘문화재 디지털 복원가’는 다소 생소한 직업이기도 한데요,
굉장히 다양한 학문이 속해있는 분야라 생각되는데 어떤가요?

우선 전 인류학을 전공했고,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에서 선임연구원으로 8년 정도 있으면서 다양한 문화재 디지털 복원 프로젝트를 진행했어요. 그리고 방금 이야기하신 것처럼 문화재 디지털 복원은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참여하는 융복합 작업이 맞아요. 기본적으로 인문학적 소양이 필요하고 컴퓨터 공학, 디자인, 프로그램, 디지털 콘텐츠, 디스플레이 등 다양한 분야의 전공자들과의 협업이 아주 중요하죠. 이처럼 다양한 학문을 넘나들다 보니 제 전공이 아니어도 각 분야의 기본적인 이해와 소통이 전제되어야 이 프로젝트를 끌고 갈 수 있어요. 그래서 저 역시 인류학 전공이지만, 현재는 굉장히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다루면서 문화재 디지털 복원 프로젝트를 하고 있죠. 따져보니 벌써 20년 넘게 이 일을 해오고 있네요. 현재는 고려대학교 세종캠퍼스에서 연구교수로 재직하고 있어요.

문화재 디지털 복원가 ‘박진호’

많은 자료를 기반으로 하겠지만 문화재를 복원하는 일도 어쩌면 상상력이 들어가야 하는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어떤 계기로 프로젝트를 구상하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중고등학교 시절, 역사책을 좋아하고 많이 읽는 학생이었어요. 그런데 어느 날 ‘책 안에 있는 위대한 역사 인물들이 다시 만날 순 없을까’하는 상상을 하게 되었죠. 자연스럽게 타임머신이 떠올랐지만, 그것이 실제 구현되는 건 제가 살아있는 동안은 아마 힘들 거예요. 그래서 과거로 돌아갈 순 없지만 디지털 기술을 통해 그 과거의 세계를 또 다른 공간에 옮겨두면 그것이 답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기 위해서는 세 가지 조건이 필요한데 처음은 그 과거를 재현할 수 있는 역사적 증거나 기록이 충분해야 한다는 것이에요. 두 번째는 미디어를 완벽하게 꾸며낼 테크놀로지가 있어야 하고, 마지막은 과거를 재현하는 이 콘텐츠가 현재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스토리로 연출될 수 있어야 하는데, 현재는 이 세 가지 다 완벽히 만족스럽진 못해요.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지금의 기술로 할 수 있는 데까지는 계속 도전해보는 중이에요.
최근에 XR(확장현실) 스튜디오에서 촬영하신 TV 프로그램 ‘차이나는 클라쓰’에서 교수님의 상상으로 시작된
다양한 문화재 디지털 복원 사례를 보았습니다. 국내를 넘어 국외까지 다양한 문화재 디지털 복원 프로젝트를 진행하셨잖아요.

고(故) 이어령 교수님과 함께 1,300년 전 경주 유적을 VR로 재현하는 ‘경주 서라벌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황룡사 9층 목탑을 VR로 복원하는 작업을 진행했었어요. 그리고 세계적으로 명성 있는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서 먼저 요청이 왔던 석굴암의 복원 작업도 기억에 남아요. 일제가 훼손하기 전인 1300년 전의 모습까지 복원하기 위해 정말 오랜 시간 공들인 프로젝트이기도 해요. 방송을 보는 시청자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XR 스튜디오에서 진행했는데, XR은 확장현실이라는 뜻으로 가상현실인 VR과 증강현실인 AR을 아우르는 기술이에요. 과거의 공간 안에 있는 문화유산을 더욱 실감 나게 보여줄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다고 생각해요.




특히나 후반부에 나왔던 안중근 의사의 디지털 휴먼이 꽤나 흥미로웠는데요.
다양하게 확장될 수 있을 것 같아 기대됩니다.

디지털 휴먼은 크게 4가지로 나눌 수 있어요. 가상인간형, 역사 인물형, 사람재현형, 캐릭터형이 있죠. 가상인간형은 가장 대표적으로 신한라이프의 모델인 ‘로지’를 생각하시면 좋아요. 상업적인 목적으로 만들어졌고 그들만의 새로운 서사가 있죠. 휴먼재현형은 돌아가셨거나 혹은 지금 살고 있는 사람을 디지털 복제하는 형태로 MBC 다큐멘터리 ‘너를 만나다’에 등장한 인물이 해당 되요. 이 중에서 제가 주목하는 것은 바로 역사 인물형인데 방송에서 보셨던 안중근 의사가 바로 이 유형이에요. 역사 인물형은 그 인물에 대한 정확한 배경 지식과 그에 따른 빅데이터가 있어야 재현이 가능하죠. 예를 들어 시간을 거슬러 올라 조선 시대 정약용 선생님을 디지털 휴먼화 한다고 하면 그분이 쓰신 저서를 포함해 역사 곳곳에 남아 있는 기록으로 데이터를 구축하는 것이 가능해요. 하지만 신라 시대의 김유신 장군을 디지털 휴먼화한다고 하면 굉장히 단편적인 정보만 있어서 역사적인 사실의 깊이가 좀 약하죠. 역사 인물들의 빈약한 데이터를 확장할 수 있는 어마어마한 AI가 나오기 전까지는 그래도 어느 정도 데이터가 충분한 인물이 재현이 가능할 거예요. 저희가 진행했던 역사 인물 디지털 휴먼의 사례를 하나 더 말씀드리면 왕오천축국전을 집필한 신라의 혜초스님이 있어요. 1300년 전에 신라에서 태어나 최초로 인도를 거쳐 여러 나라를 여행하고 돌아와 왕오천축국전이라는 기록을 남기신 분이죠. 이 기록을 바탕으로 혜초 스님의 빅데이터를 제작하였고, 3D 캐릭터에 이를 입혀 국내 최초의 역사 인물 인공지능 콘텐츠인 혜초스님이 나오게 되었어요. 인터렉티브 콘텐츠로서 관람객이 이 화면 앞에서 혜초스님에게 말을 걸면 혜초스님의 AI가 그에 맞는 대답을 들려주며 대화할 수 있어요. 여기에 조금 더 상상력을 얹는다면 빅데이터가 충분한 역사적 인물을 각각 다른 연령대로 설정해서 대화를 나누게 할 수도 있을 거예요. 또한, 시공간을 초월한 역사 인물들의 만남도 가능해요. 제가 하는 작업은 이처럼 과거의 어느 순간을 현재로 불러와 시대를 관통하는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일이에요. 그리고 그 처음은 언제나 상상력으로 시작하고요.




상상과 인문학 그리고 기술의 결합이라는 융복합적인 이 문화산업이 앞으로 더 확장성을 가지기 위해서 정말 다양한 분야에서의
지원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면 이 모든 데이터를 관리하는 시스템도 새롭게 구성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 개념을 ‘디지털 어스(Digital Earth)’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만약 우리가 서울이라는 지역을 터치하면 서울의 물리, 사회, 경제 등의 다양한 정보들이 시간 축별로 펼쳐질 거예요. 그러면 그 속에서 필요한 정보 카테고리를 선택하면 관련 레이어들로 이어지겠죠. 디지털어스는 공간과 시간을 동시에 다루며 역사적 데이터를 통해 현재를 진단하고 미래를 예측할 수 있도록 다양한 언어로 되어 있을 거예요. 여기저기 산발되어 있는 빅데이터를 보다 고차원적으로 디지털어스에 포함하면 앞서 말씀하신 새로운 시스템이 될 수 있겠죠. 이런 생각을 하는 학자들이 상당히 많고 지금도 진행되고 있는 일이어서 시일의 문제이지 언젠가는 꼭 실현되리라 생각해요.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교수님이 생각하시는 다음세대를 위한 기록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저는 AI라고 생각해요. 보통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내가 가지고 있는 부모님에 대한 기억이나 앨범으로 그분들을 추억할 거예요. 그분의 몸은 땅속이나 화장되어 자연으로 돌아가 사라져버릴 테니까요. 그런데 앞서 말씀드린 것과 같이 AI 디지털휴먼화를 통해 돌아가신 부모님을 가상의 어떤 공간에 두고 계속해서 만나볼 수 있다면 어떨까요? 물론 만져볼 수는 없을 거예요. 그렇지만 부모님이 살아생전의 목소리로 내게 해주시던 말씀을 그대로 나와 대화를 나눠주시고, 우리는 그런 부모님이 보고 싶은 순간마다 가상공간으로 접속해 만날 수 있죠. 이런 문화가 정립된다면 몇백 년 후의 우리는 나의 부모님의 부모님, 또 그 부모님을 알아가고 만날 수 있을 거예요. 단순히 생전의 모습을 남기는 것을 넘어서 AI를 통해 현재의 나와 소통할 수 있는 디지털휴먼의 형태로 남게 되니까 우리는 정말 사람을 ‘만난다.’라고 느낄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앞으로 우리의 시대는 어느 분야든, 누구든 AI를 피해갈 수 없어요. AI 딥러닝 기술은 점점 더 발달할 것이고 더 많이 활성화되어 지금 우리가 인터뷰하는 이 모습도 다른 모습으로 바뀔 수 있어요. 그리고 이 기술의 발전에는 언제나 놓치지 않아야 할 중요한 가치인 ‘휴머니즘’이 자리 잡고 있을 거예요.

EDITOR AE류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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