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다음 세대 기록인
(필공) 붓쟁이 ‘유필무’
'붓의 이야기가 다시 사라지지 않도록 기록으로 남기는 유필무 필공'


반갑습니다,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리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붓쟁이 유필무라고 합니다.
선생님은 본인을 소개하실 때 ‘붓쟁이’라는 표현을 더 자주 쓰시는 것 같습니다, 이유가 있을까요?
예전 문화재청에서는 ‘모필장(毛筆匠)’이라는 말을 먼저 사용했었어요. 그런데 저는 동물의 털로 작업을 하기도 하지만 식물성 소재를 많이 다루기도 하니, 늘 이 표현이 맞지 않는다고 이야기했었죠. 그 영향이라고만은 볼 수 없겠지만 어느 날부터인가 ‘필장’이라는 표현을 더 많이 쓰는 것 같더라고요. 그러다가 또 예전에 고서에서 붓 만드는 모습을 그린 삽화의 설명글에서 그 사람을 ‘필공(筆工)’이라고 소개해놓은 것을 본 적이 있었어요. 예전 사람들은 붓 장인을 ‘필공’이라고 종종 불렀다는 거죠. 저는 오히려 이 표현이 더 와닿았어요. ‘장’과 ‘공’ 모두 장인을 뜻하고 있는데, 이 ‘필공’이라는 표현에 더 정감이 가서 많이 사용하는 편이에요. 그리고 그 한자어를 풀면 그냥 ‘붓쟁이’가 되는 것이죠. 저는 ‘쟁이’라는 말도 결국은 ‘장인’이라는 표현이 시간이 지나면서 ‘쟁이’가 된 것이 아닐까 생각하거든요. 고귀한 의미를 지닌 멋진 우리말이라는 생각에 더 입에 많이 붙네요. 그래서 저를 그렇게 표현하고 있어요.

(필공) 붓쟁이 ‘유필무’


현재 전시회를 열고 계시는 곳에서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는데, 붓의 형태가 상당히 다양합니다.
아까 언뜻 말씀하셨던 것처럼 붓을 만드는 재료도 그렇고요.

붓은 정말 정성이 많이 들어가는 작업이에요. 특히 동물의 털을 사용하는 모필의 경우에는 이 원재료를 고르는 데도 굉장한 정성이 들어가죠. 동물들은 겨울이 오기 전에 털갈이를 하는데 그때 나는 새로운 털을 채취하는 것이 중요지점이에요. 늦가을 이후에 채취된 털이라고 해서 추호(秋毫)라고 하는데 아주 섬세하고 건강한 털이죠. 붓을 매기에 가장 좋은 품질의 털이기도 하고요. 그리고 털이 나는 부위에 따라서도 품질이 나뉘는데 가장 상급의 털은 산양의 사타구니 쪽에 난 털이에요. 양이 적어서 붓 하나에 몇십 마리 산양의 털이 쓰이기도 해요. 또 산마의 꼬리털, 청설모의 꼬리털, 양의 발꿈치 털, 소 귓속의 털, 오소리나 너구리의 털 등 모필의 종류는 굉장히 다양해요. 그중에서 태모필이라는 것이 있는데, 엄마 뱃속에서부터 가지고 나오는 머리카락을 말해요. 그리고 그 머리카락으로 붓을 매면 따라갈 붓이 없다고도 하죠. 귀한 붓이에요. 이처럼 붓 한 점 한 점에 많은 이야기가 있어요. 이 전시회에 걸린 붓들에 얽힌 이야기들을 풀어놓으면 저는 한 달이 모자랄 정도예요. 다 이야기를 담고 있으니까요. 그것을 요즘 말로 하면 바로 스토리텔링이라고 볼 수 있겠죠.
그리고 제가 더 애착을 두고 하는 작업이 바로 식물성 소재로 만드는 초필이에요. 많은 분이 저를 초필로 더 많이 떠올리시기도 하고요. 붓스럽게 만들기 위해서는 시간과 공력이 어마어마하게 들어가요. 보통 사용하는 재료들로는 억새, 갈대, 볏짚 등이 있는데 가장 오래 물고 늘어진 것이 바로 칡이에요. 그리고 재료의 내구성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찌고 건조하기를 반복해야 하는데 여기에 시간이 많이 들어가요. 한번 쓰고 버리는 것이 아니라 오래 두고 써야 하니까요. 그리고 손길이 많이 가는 것은 이것을 망치로 두들겨서 최소 단위로 쪼개는 것이에요. 섬유질을 하나하나로 쪼개는 과정이죠.




초필에 특히나 더 마음을 쏟으시는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요.
과거 모필이 엄청 귀하고 비쌌던 시절, 서민들이 누가 그 붓을 썼겠어요. 그래서 모필 대용으로 식물성 소재가 사용되었을 것이라고 추측을 하는데 그것에 대한 기록을 사실 찾기가 매우 어려워요. 기껏해야 단어 하나 두 개 정도인데, 중국의 옛 문헌을 보면 전통 붓을 나열한 문장에서 ‘마필’이라는 것이 있었어요. 삼베로 만드는 붓이었던 것이죠. 그리고 대나무로 만드는 죽필, 볏짚으로 만드는 고필, 갈대로 만드는 노필 등이 있어요. 전통 붓의 형태로 단어는 남아 있지만 만드는 방법 등의 자세한 정보는 전혀 남아 있지 않았죠. 그러면 저는 그때 당시를 상상해보는 거예요. 그러면 이 붓을 어떻게 만들었을까,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썼을까를 끊임없이 상상해요. 그들도 집을 사고팔고, 땅을 사고팔고 했을 텐데 그러려면 아마도 계약서를 쓰기 위해 붓이 필요했을 거예요. 그런데 붓이 없으니 어떻게 했을까요. 주변의 흔한 소재들을 가져다가 돌로 짓이기거나 해서 부드럽게 만들었겠죠. 이렇게 스스로 묻고 답하면서 이야기를 발전시켜나가다 보면 나름의 결론이 나와요. 그리고 그것이 제 작업의 모티브가 되는 것이죠.
그렇다면 선생님이 생각하시는 기록의 도구로서, 이 붓이 가지는 매력과 가치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도 궁금한데요.
고대 유물들을 보면 천 년 전의 잘 구워진 도자기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물건이 아닌 경우가 많았어요. 서가나 집안의 잘 보이는데 두고 감상을 했었죠. 그림도 그렇고요. 그런데 붓은 그러지 않았던 물건이에요. 쓰임의 성격이 너무 강해서 사용했었을 때 비로소 빛을 발하고 완성되는 도구였던 것이죠. 그래서 유물로 치자면 성격이 완전히 다른 거예요. 발굴도 잘되지 않았어요. 필의 특성상 재료의 내구성이 강하지 않아 몇백 년을 견디지 못하고 삭거나 바스러져 버리니까요.
하지만 그 모든 유물에 앞서서 붓은 서양의 도구가 유입되기 전까지 유일한 서사의 도구였어요. 그리거나 쓸 수 있었던 도구로서 오랜 시간 대체할 수 없는 영역을 담당했으니까요. 그래서 붓의 형태와 모양, 그리고 거기에 담기는 이야기가 다양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그런 측면에서 저 스스로는 자부심이 하늘을 찌르죠. 연합 전시회를 한다고 하면, 다른 유명한 작품들 사이에서 저는 붓 한두 자루만 걸어놔도 기가 죽지 않거든요. 붓이 가지고 있는 역사적인 뒷배가 무엇보다 단단하기 때문이에요. 2008년에 한국 공예관에서 먼저 개인 전시를 한 적이 있었는데, 중앙 5대 일간지에서 모두 제 전시기사를 다뤄주어서 기획자조차 놀랐던 적이 있었어요. 그 신문을 보고 관람하러 온 관람객도 상당했었고요.





그 전시를 마치고 나서 제가 하는 작업의 앞날을 기획하는 좋은 계기가 되기도 했어요. 지금도 작품을 구매하는 분 중에는 실제 붓을 사용하기 위해 구매하는 분들도 계시지만 소장, 전시용으로 사 가시는 분들의 비중이 약간 더 높은 편이에요. 그래서 붓의 내구성을 높이기 위해 붓대에 옻칠을 하는 등 다양한 시도를 계속하고 있어요.
마지막으로 선생님께서 생각하시는 다음세대를 위한 기록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저는 상당히 오랜 시간을 이미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실체가 없어서 이야기로만 전해지는 것들을 쫓았어요. 그것들을 붙들어 앉혀서 물고 늘어지면서 붓의 이야기를 만들어나갔죠. 그리고 그것이 바로 지금 제가 만들고 있는 초필이고요. 그때도 이 일을 계속했던 이유는 그것이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저는 제 일이 참 가치 있는 일이고 이 가치 있는 일을 계속해서 사람들에게 온전히 전해주는 것을 귀하게 생각해요.
그래서 지금 이 전시를 하는 것도 여기에서 얼마나 큰 성과가 나겠냐고 하시는 분들도 있지만, 이렇게라도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이야기를 해주는 것이 기꺼이 제가 해야 하는 일인 거예요. 그리고 즐거운 마음으로 할 수 있는 일이기에 하는 것이고요. 그래서 저는 행사나 초대전이나 웬만하면 안 따지고 다 나가려고 노력해요. 그것을 기획한 사람들의 마음이 무엇인지 다 이해하고 공감하니까요. 그래서 앞으로도 제가 살려둔 이 붓의 이야기가 다시 사라지지 않도록 기록으로 세세하게 남기는 작업을 해야겠다고 생각해요. 빨리할 수는 없겠지만, 천천히 그 작업을 이어나가려 노력하고 있어요.

EDITOR AE류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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