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삶의 풍경이 머무는 곳
몬스테라
'글.박종희'

후욱, 뜨거운 열기가 얼굴에 와닿는 순간, 서너 개의 손이 내 몸으로 달려든다. 다부지고 야무진 손으로 어깨를 주무르는 것처럼 온몸이 노곤하게 녹아내린다. 마치, 마사지사한테 몸을 맡긴 듯, 순식간에 피로가 풀리는 이 기분 때문에 나는 사우나 실을 찾는다.





한낮의 기온이 30도를 오르내리지만, 한증막 안에는 여전히 사람이 많다. 한 눈에도 회원권을 사서 매일 이곳을 찾는 사람들임을 알 수 있다. 얼음 커피 한 통을 가운데에 놓고 빙 둘러앉아 있는 그들 사이를 용케 비집고 들어가 앉았다. 이, 뜨거운 한증막에서 회의라도 하는 걸까. 쉬지 않고 말을 쏟아내는 그녀들은 나처럼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오는 낯선 사람들은 아예 신경도 쓰지 않는다.
들어설 때부터 후끈하던 한증막의 열기가 여자들의 목소리에 눌려 힘을 잃는다. 어찌나 목소리가 큰지, 뜨거운 열기보다 사우나실을 들었다 놓을 듯한 시끄러운 목소리가 더 신경 쓰인다. 나는 얼굴에 수건을 덮어쓰고 있으니 누가 이야기하는지 알지 못하지만, 가끔 너무 시끄러워 나가고 싶을 때가 있다.
사우나실 단골고객은 대부분 시간이 자유로운 중년여자들인데 몸매가 제법 통통하다. 아니, 살이 쪘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 같다. 그녀들이 한 번씩 소싯적 자기도 날씬했다는 이야기를 털어놓으면 한도 끝도 없다. 이곳에서는 남우새스러운 이야기도 거침없이 쏟아놓는 그녀들의 이야기에 다들 사우나실이 떠나갈 정도로 웃고 손뼉을 친다.
80도를 오르내리는 사우나실은 한 번 들어오면 5분이나 10분 정도 견딜 수 있다. 대략 10분이 지나면 냉탕에 들어가기 때문에 그때가 사람들이 바뀌는 순간이다. 조금 전까지 떠들던 여자들이 우르르 빠져나가니 다시 낯선 여자 서너 명이 들어온다. 육십 대 중반 정도의 여자가 앉자마자 작정한 듯 입을 연다. 친손자를 돌봐주는데 며느리한테 눈치 보여 아기한테 들어가는 비용 청구를 못하겠다는 하소연이다. 맞은편에 앉은 여자도 같은 일을 겪었다며 속상했던 일을 마구 쏟아놓는다.
그녀들의 이야기에 다들 맞장구를 치는데 한 여자가 정색하고 대화에 끼어든다. 아기 봐줄 때 돈 문제는 처음부터 정확하게 짚고 넘어가야 서운한 일이 생기지 않는다며 날카롭게 지적한다. 그녀의 뼈 있는 말에 부모자식 사이에도 돈 문제만큼은 정확하게 셈을 치러야 한다며 입을 모았다.
그들의 말에 일부분 공감을 하면서 이러니 이곳에서 여자들이 속을 터놓는구나 생각하는 순간, 다시 큰 소리가 났다.
“참으려고 했는데 정말 너무하잖아, 여기 전세 냈어요? 시끄러워 앉아 있을 수가 없잖아요?” 그녀도 나처럼 뒤에 앉아 땀을 내고 있던 여자였다. 일순간, 정적이 흐른다 싶더니 큰 소리로 떠들던 여자가 시끄러우면 나가면 되지 않느냐고 되받아치면서 낯 뜨거운 광경이 벌어졌다.
드디어 올 것이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이 많은 장소에서 정보 교환하고 경험을 나누는 것은 좋지만, 다른 사람도 배려해야 한다는 것을 한 번쯤 생각해 볼 일이다. 늘 참던 여자가 오죽하면 한마디 했을까.
사람들이 사우나실을 찾는 것은 피로와 스트레스를 풀려고 하는 것인데 알게 모르게 텃새가 느껴질 때가 있다. 나만 그럴까? 그녀들은 왜 하필, 사우나실에 모여서 친목을 쌓는 걸까.
사우나실에서 목격한 우스꽝스러운 사건으로 몬스테라가 생각났다. 몬스테라가 우리 집에 온 것은 1년 전이었다. 딸애의 생일 선물로 화분이 들어왔는데 그것이 바로 말로만 듣던 재테크 화초 몬스테라였다. 몬스테라는 우리나라에서도 8,90년 대에 개업화분으로 인기가 있었던 화초다. 왕성한 생명력 때문에 키우기 쉬운데 잎이 커지면서 관리가 쉽지 않아 잊힌 화분이다. 유행은 돌고 돈다더니 그 옛날에 유행하던 몬스테라가 몇 년 전부터 다시 재테크 화분으로 몸값을 높이고 있다.
딸애가 들고 왔을 때는 아주 작은 화분에 심겨 있어 몬스테라의 가치를 느끼지 못했다. 그저 잎이 다른 화초와 달리 갈라져 있다는 것이 신기할 뿐이었다. 잘 키워서 재테크하자는 딸애의 야무진 바람을 들은 날부터 물 주고 식물 영양제를 주면서 정성을 쏟았더니 하루하루 눈에 띄게 자랐다. 작은 화분이 비좁을 정도로 크는 속도가 빨라 분갈이도 두 번이나 해주었다.





줄기가 굵어지면서 새로운 잎이 나오는데 어찌나 신기하던지. 처음에는 또르르 말린 잎이 펴지면서 둥근데 잎이 벌어지면서 잎사귀 사이가 갈라졌다. 그 모습이 하도 신기해서 자꾸 들여다보니 딸애가 다른 잎새들이 햇빛과 바람을 못 받을까 봐 옆을 내주려고 잎을 가른다고 했다.
이, 얼마나 기특한 생각인가. 열대우림이 고향인 몬스테라가 비가 많이 내리는 기후에서도 살아남기 위해 잎에 구멍을 내는 것이라고도 하는데 아무려면 어떠랴. 찢어지는 아픔을 참으면서도 잎에 구멍을 내 아랫잎까지 모두 골고루 햇빛을 나누는 배려가 얼마나 따뜻한가.
마치, 동생을 돌보듯 아래에서 나오는 잎을 배려해 찢어진 잎으로 살아가는 몬스테라의 성정을 생각하니 가슴이 뭉클했다. 사람도 아닌 화초가 감히, 그런 생각을 하다니. 말 못 하는 식물도 이럴진대 어찌, 사람이 배려를 모를까. 몬스테라 잎을 닦아주면서 오늘 사우나실에서 목격한 그녀들의 얼굴이 번갈아 떠올랐다. 다중이용장소에서 큰소리로 이야기하는 것도 공해라는 것을 그녀들은 정말 모르는 걸까. 앞으로 사우나에 갈 때마다 그녀들이 몬스테라와 비교될 것을 생각하니 씁쓸했다.
한그루의 나무가 모여 아름다운 숲을 이루듯, 사람을 만나고 소통하면서 인간관계를 이어나가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하나, 그것이 다른 사람을 피로하게 만들고 눈살을 찌푸리게 해서는 안될 일이다.
언제부턴가 사람들이 많이 드나드는 대형카페나 식당에 몬스테라 화분을 놓는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다. 다양한 사람들이 이용하는 목욕탕 탈의실에 ‘기쁜 소식과 헌신’이라는 꽃말을 가진 몬스테라 나무를 두는 것도 좋을 듯싶다. 사방이 막힌 답답한 공간에 정화 작용도 하면서 나보다 먼저 상대를 생각하고 행동하는 몬스테라의 가치를 느낄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EDITOR 편집팀
박종희 작가
이메일 : essay0228@hanmail.net
2000년 『월간문학세계』수필 신인상 수상으로 등단
전국시흥문학상, 매월당 문학상, 김포문학상
2015년 동양일보 신인문학상 당선
제1회 119 문화상 소설 최우수상 수상 외 다수
2008년 ~ 2019년까지 중부매일, 충북일보, 충청매일에 수필 연재
저서: 수필집 『가리개』『출가』
한국작가회의, 한국산문작가협회, 충북작가회의 회원
청주시, 세종시 수필창작 강사. 충북작가회의 사무국장으로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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