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차로여행

유럽여행 - 알프스 소녀 하이디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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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베니스의 상인’의 무대인 꿈처럼 아름다운 수상도시 베네치아를 거쳐 알프스산맥을 넘어갔다. 이동하는 차안에서 어린아이 음성으로 녹음 된 요돌송이 흘러나오자, 소녀하이디가 기억저편에서 달려 나온다. 하얀 눈 덮인 알프스가 병풍처럼 있고 그 아래로는 푸른 들판이 펼쳐진다. 나무집에선 연기가 피어오르고, 집으로 달려가는 소녀하이디의 모습이 절로 그려진다.

유럽의 지붕이라 불리는 융프라우요흐에 오르려면 인터라켄 역으로 가서 기차를 타야한다. 역까지 이동하는 버스차창 밖 풍경은 만년설이 쌓인 알프스 산을 배경으로 큰 호수를 끼고 있어 그 절경만으로도 감탄이 쏟아진다. 그림처럼 들어앉은 집들과 싱그러운 호수가 어우러져 인터라켄까지의 여정은 지루할 틈이 없다. 역에 도착하니 기차가 출발하기까지 여유가 있어 주변을 둘러본 후 요기를 하려고 한 식당으로 들어갔다. 스파게티가 나오는데 하도 꼬돌거려서 요돌송만큼이나 요돌요돌 하다 말했더니 옆 사람이 웃는다.


고대를 지나 중세르네상스시대를 주도한 로마 예술품들을 인간이 빚어낸 기적과 교묘함으로 예술최고의 극치를 표현하고 있다고 말한다면, 알프스산융프라우요흐는 신이 빚어낸 자연의 무한한 아름다움을 노래하며 표현한다.
산악열차를 타고 융프라우요흐로 올라갔다. 양쪽으로 끝없이 이어지는 장엄하고 아름다운 배경을 놓칠세라 셔터를 누르는 손길들이 바쁘다. 누군가 감탄을 지르면 이쪽으로 와서 누르고 또 다른 감탄이 저쪽에서 들리면 자리를 빨리 옮겨 셔터를 눌러대느라 엇갈려 부딪히는 찰칵 소리가 요란하다.


드디어 유럽의 정상까지 올라가니, 갑자기 기온이 영하로 떨어져 초여름 더위를 단번에 식힌다. 긴팔을 걸쳐 입고 밖으로 나가자 나도 모르게 탄성을 지르고 말았다. 몇 시간 전까지 초여름 무더위 속에서 여행하느라 고생한 이들에게 거대한 설원이 서프라이즈로 마련돼 있다. 우린 푹푹 빠지는 눈을 밟으며 뭉쳐서 상대방에게 던지기도 하고 뒹굴기도 하면서 기념촬영을 했다.


융프라우요흐가 보이는 산 중턱에 있는 숙소는 사진으로만 보았던 새들이 살 것 같은 호텔이다. 스위스 전통식인 ‘퐁뒤’로 저녁식사를 했다. 18세기 스위스 산악지대에 사는 사냥꾼들이, 마른 빵과 치즈만 들고 사냥 나갔다가 밤에 모닥불을 피워놓고 치즈를 녹여 빵을 적셔 부드럽게 해서 먹었다는데, 여기서 퐁뒤란 음식이 생겨났단다. 퐁뒤를 먹는 방법은 냄비에 치즈와 스위스화이트와인을 넣고 샐러드 오일을 넣어 끓인 육수에 양고기를 대나무꼬치에 꿰어 담갔다가 익으면 먹는다. 우리네 오뎅 꼬치가 생각났다. 남의 꼬치를 자신의 것인 줄 알고 먹기도 해서 내내 웃으면서 식사가 진행 됐다.




그들의 식사문화는 한없이 느리게 진행되는지라 어두워지기 전에 주변풍경을 보고 싶어 조바심 났다. 일행 속에서 살짝 빠져나왔다. 시간은 열시가 되어가건만 해가 넘어가지 않고 있다. 하이디 같이 맑은 사람들이 살 것 같은 집들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가족들이 밝게 웃으며 담소하는 풍경이 정답다. 거대한 설산이 마주보이는 동네언덕에 앉았다. 휘영청 맑은 달이 바위산에 걸렸다. 별빛이 모든 세상위에 두루두루 뿌리듯이 달 역시 같아서 여기가 대한민국인가 착각이 든다. 인적 없는 낯선 타국에 홀로 앉은, 애잔한 음악과도 같이 어스름한 달빛아래 약간정도 결핍의 정서가 그리움들을 부른다.
언뜻 나의 부재를 염려할 일행이 생각나 숙소로 내려오는 길, 젊은 외국인 남성이 인사를 건네며 마주쳐 지난다. 보헤미안적인 정취의 사람일 거야….낯모르는 이국청년에게 내안에 흠뻑 자리한 시적정서가 이름을 지어 준다.

내일새벽 다섯 시에 출발할 것이니 일찍 자라고 했지만 스위스 산장에서의 꿈같은 단 하룻밤을 잠들 수는 없었다. 낮에 보았던 스위스의 자연풍경, 거대한 바위산 그늘에 비쳐 가슴에 스며들던 달빛, 하도 고요하여 쓸쓸해 보이기까지 했던 동네를 사색하며 천천히 걷던 느낌…. 도시가 아무리 편하다 해도 자연처럼 인간을 평안하고 행복하게 할 순 없다는 깨달음을 그곳에서 얻었다. 어느새 내일 이어지는 프랑스여행길로 마음은 앞서 유랑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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