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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의 일자리를 꿈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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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 학교에서 배웠던 노래 중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동요가 있었다. 학교 음악시간에 선생님의 피아노 반주에 맞추어 열심히 가사를 외워 불렀던 기억이 있다. 음악시간 시험 주제일 때도 있었고 3.1절 행사 때 부르기도 한 노래이지만 요즈음 아이들은 생소한 동요이다. 1947년 작곡가인 안병원씨 작곡한 노래로 벌써 70년이 되었지만 현재 한국은 여전히 분단국가이다. 요즈음 뉴스를 통해 자주 접하는 뉴스는 북한의 탄도 미사일 도발 소식이다. 북한의 정권이 바뀌면서 더 자주 접하고 있는 뉴스이기도 하다. 이런 뉴스를 접할 때 마다 깊은 한숨을 쉬는 사람이 있다. 바로 오송바이오공인 오용섭 대표이다.
오용섭 대표는 통일을 꿈꾸는 사람이다. 이산가족이 있거나 전쟁을 아픔을 경험한 기성세대는 아니지만 누구보다도 통일을 염원한다. 그는 통일을 꿈꾸기만 앉아서 염원만 하지 않는다. 청년광개토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이 땅의 통일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청년 광개토 프로젝트는 청년들에게 일자리 영토를 확장시키자는 모토로 청년들의 미래를 위해 일자리 영토를 넓히는 통일한국을 만드는 것이다. 누가 들으면 허황된 꿈이라 말할 수 있지만 오용섭 대표는 정말 진지하고 의욕에 넘친다. 내가 처음 만난 그의 청년 광개토 프로젝트는 호기심 이었다.



오용섭 대표가 청년 광개토 프로젝트를 시작한 이유를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한다. “ 2010년 3월 26일 천안함 사건을 기억합니다. 백령도 근처 해상에서 대한민국 해군의 초계함인 PCC-772 천안이 피격되어 침몰하여 46명의 젊은 청년들이 사망 또는 실종되는 사태를 아침 TV뉴스로 지켜보면서 큰 충격에 빠졌습니다. 그 사건을 통해 남북의 관계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전쟁도 아닌 시국에 청년들의 목숨을 잃는 모습은 제가 안타까움 그 자체였습니다. 그래서 퇴직 후 북한대학원대학교에 진학해 석사과정을 밟고 있습니다. 그곳에서 탈북민들과 함께 공부하면서 북한에 대한 인식개선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 아들과 딸이 20대 청년, 학생입니다. 다가 올 노멀시대(저성장, 고령화, 저소비)에 부모로써 희망을 심어주고 싶었습니다. 구직 활동하는 청년에게 기성세대로서 ‘일자리’를 선물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청년 광개토 프로젝트를 계획하게 되었습니다.”


왜 청년광개토 인가?

청년이었던 광개토태왕이 만주 벌판을 호령했던 나이가 22살이었다. 22살 광개토태왕은 영토를 넓혔고 고구려를 강성하게 만들었으며 힘을 키웠던 나이였다. 오용섭 대표는 청년이었던 광개토태왕이 밟았던 길을 찾아 그가 전하는 메시지를 청년들에게 전달하고 싶었다. 광개토태왕비문 제1면 5째줄에는 ‘태왕의 은택은 하늘에 두루 미쳤으며, 위무(威武)는 온 세상에 떨쳤도다, (태왕이) 외래의 침략을 제거하여 백성들이 편안하게 생업에 종사케 하시니 나라가 부강하고 민호(民戶)가 불어나며 오곡이 풍성하게 익었다’ 라고 적혀있다. 직역하자면’ 광개토태왕이 나라의 힘을 키워, 외래의 침략을 막아주니 백성들이 편안하게 생업에 종사할 수 있게 되어 나라가 부유하게 되었으며, 일반백성들이 불어나며 오곡이 풍성하게 익어 농사 또한 잘 되었다.” 라고 풀이할 수 있다. 광개토태왕비문의 내용처럼 나라가 안전해지면 백성들의 평안과 나라의 안정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오용섭 대표는 광개토태왕비문의 내용에서 한국의 청년들의 미래를 찾았다. 바로 통일이다. 통일을 이룬다면 더 이상 천안함사건 같은 젊은 청년들의 희생이 사라질 터이고, 청년들의 일할 수 있는 영토 또한 넓어질 것이다. 전쟁의 공포가 사라지면 안정화되고 평화로운 대한민국이 되지 않을까? 오용섭 대표는 이런 생각을 젊은 청년들이 이루어내야 할 미래라 생각했다. 그래서 광개토태왕비문을 통해 청년 광개토태왕의 통합 리더십의 의미 청년들에게 알리고 싶었다.

청년 광개토 프로젝트를 위해 먼저 중국으로 떠났다. 고구려 유적지 중국 지안시를 찾아 광개토태왕문비를 직접 찾아보고, 광개토태왕의 길을 걷고 그의 역사를 되짚으면서 북한의 실상도 경험하고 돌아왔다. 오용섭 대표는 현장을 다녀와다 느낀 것을 단재신채호의 현장중시사고를 접목해서 말한다. 조선상고사에 이렇게 적고 있다. ‘현장에 가서 집안현을 한 번 본 것이 김부식의 고구려사를 만번 읽는 것보다 낫다. 남아있는 유적과 유물들이 왜곡된 역사서보다 훨씬 많은 역사적 진실을 이야기 할 수 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실상을 경험하고 느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보여주는 말이다. 오용섭 대표는 중국 지안시를 찾았던 여행기를 작은 책자로 집필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 클라우드 펀딩을 시작했다. 하지만 오용섭 대표를 이해하고 관심을 주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단 몇 명이라도 청년들이 저와 같은 생각으로 진지하게 통일을 생각해 주길 바랍니다. 통일 후 삶은 평화롭고 행복한 삶이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할지 스스로 찾아내어야 할 책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 같은 기성세대로만은 이런 일들을 이루어 낼 수 없습니다. 단 몇 명의 청년들이 생각을 모우고 저와 함께 북한은 멀고 낯선 나라가 아닌 함께해야 할 우리 동포라는 것을 알아가길 원합니다. 통일을 저절로 이루어 지는 것이 아니라 청년광개토태왕 같은 패기 있고 리더십 있는 젊은 청년들의 생각이 변하고 그 생각이 함께 할 때 이루어 질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저는 오늘도 한국의 청년광개토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저와 함께하고 싶은 청년들은 언제든 환영입니다.”
청년 광개토 프로젝트는 언제나 진행 중이다. 통일나눔재단의 통일나눔펀드 지원 사업에 제안서를 제출하고 그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다. 클라우드 펀딩을 새로 계획 진행 중이다. 네이버 카페 (청년 광개토 프로젝트 http://cafe.naver.com/youngrock1804/ )도 운영 중에 있다. 그는 늘 이 땅의 숨은 청년 광개토들과 함께 생각을 나누고 통일을 위해 노력할 날을 꿈꾼다. 인터뷰를 끝내며 오용섭 대표가 태왕이 갔던 길을 청년광개토들과 함께 빛나는 그길을 함께 걸어가는 날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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