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세상은 을이라 부른다
을의 철학
'도서관에서 만난 철학자들의 따스한 위로'


힘내라는 위로보다, 좋은 사람이 되라는 자기계발서보다 나를 살게 했던 힘, 철학
2019년 3월 5일을 기준으로 대한민국의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선진국의 기준이라는 3만 달러를 넘어섰다. 이제 ‘나’는 선진국의 국민이다. 선진국의 정의를 찾아본다. “다른 나라보다 정치, 경제, 문화 따위의 발달이 앞선 나라.” 그러나 셋 중 무엇의 발달도 체감할 수 없다. 여전히 겨우 먹고 산다. 오직 없는 자들끼리 없음을 경쟁하는 사회. 자본주의란 원래 그런 것일까.
이 책에 등장하는 모든 사례는 저자의 실제 경험담이다. 20대의 저자는 식품회사의 판매 사원으로 길거리에서 시음을 권하고, 본사(갑)에서 파견한 영업 사원으로 점주(병)에게 밀어내기를 강권하며 지옥 같은 비정규직을 살았다. 그나마 회사 생활로 푼푼이 모은 돈마저 금융사기로 날려버리자 삶 자체가 위태로워졌다. 알바에서 시작해 비정규직을 전전하는 삶. 뾰족한 재주 없이 고만고만한 대학을 갓 졸업한 20대가 다 그렇듯, 시련은 손님처럼 찾아왔다.
무명 저자의 투고를 출간하겠다는 출판사가 열 곳이 넘었다. 150년이 더 지난 마르크스의 《자본론》이나 니체의 말이 ‘을乙의 언어’로 다시 태어난 순간, 철학은 시간과 학문이라는 장벽을 훌쩍 넘어 2019년의 대한민국을 사는 이들의 마음을 열어젖혔다. 저자가 성산대교 대신 도서관을 택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이 이야기를 만날 수 없었을지 모른다. 그만큼 책에는 절망적인 현실과 끝없는 자기 검열이 이어진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읽다 보면 자꾸만 희망이 생겨난다. 지금 ‘나는 왜 이토록 힘겨운 삶을 살아내는가’를 고민하고 있다면, 이 뜨거운 위안을 당신께도 권하고 싶다.

‘존재’를 이해하는 순간, 세상을 이해할 수 있다
타고난 복이 없는 자가 자본주의 사회를 산다는 것은 100미터쯤 뒤에 그어진 출발선에서 시작하는 직선 코스 달리기 같다. 그만큼 이상한 상황을 빈번히 감내해야 한다는 뜻이다. 방식만 다를 뿐 모순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착취를 합리적으로 정당화하려는 불합리, 사훈과 배치되는 회사 관리자들의 표리부동한 잣대를 직장을 옮길 때마다 마주친다. 진짜 적은 따로 있는데 정작 서로를 견제하고 다툼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우리를 세상은 ‘을’이라 부른다.
재고 돌려막기를 해야 하는 나와 재고 손실을 껴안아야 하는 대리점 점주들, 하위 구조에 속한 우리에게는 공통의 환상이 있었다. 바로 브랜드에 대한 신뢰였다. 본사에서 필요한 만큼의 수익과 나의 미래를 지켜줄 것이라는 믿음. 점주도 나도 같은 믿음이 있었다. (…) 철학자 루이 알튀세르는 말한다. 현대 사회의 이데올로기는 우리를 호명된 주체로 만든 채 무의식까지 지배한다고. 진짜가 뭔지 알려 하지 말고 니들끼리 싸우라 한다고.
호명된 주체로 살아가는 ‘을’에게 철학은 누릴 수 없는 사치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이 책에 등장하는 철학은 허영이 아니다. 그냥 삶이다. 눈뜨면 일하러 가기 바쁘고 돌아오면 씻고 자기 바쁜 ‘을’에게 철학은 뜻밖의 위안이자 삶 그 자체로 다가왔다. 저자는 밥을 먹고 물을 마셔야 살 수 있는 것처럼 도서관에 박혀 마르크스를, 니체를, 알튀세르를, 들뢰즈를 읽어나갔다고 말한다. 책은 그렇게 철학을 통해 느낀 해방감을 적어나간다.
니체가 말했다. 밖으로 발산되지 않는 모든 본능은 안으로 행해진다고. 그때의 나는 밖으로 전혀 분출하지 못했다. 그러면 결론은 두 가지다. 자기를 학대하거나 타자를 학대하고, 자기를 비하하는 우울증 혹은 타인에 대한 폭력과 분노로 이어진다. 그렇게 쌓인 생명의 피로는 결국 내 안으로 퍼져갔다. 이 사회는 최고를 강요하고, 다짜고짜 성공을 강요한다. 패자와 승자를 가르는 기준이 명확하다. 그 이데올로기에 갇히면 한동안 자기 검열이 운명인 줄 알고 살게 된다. ‘진짜’라는 명제가 붙으면 원래 삶은 아프기 마련이다. 그동안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이 실은 당연한 게 아니었음을 알게 되는 일, 내가 철저하게 길들여져 왔음을 깨닫는 일, 이런 자각들은 내 삶과 철저하게 연관된다.
철학은 결국 세상을 보는 나만의 관점을 형성한다. 스스로를 향한 검열과 증오를 멈추게 하는 것도, 나를 둘러싼 세상을 해석하고 나를 이해할 수 있게 하는 것도 결국 나의 철학이다. 그렇게 나의 ‘존재’를 깨닫는 순간, 비로소 주변의 타인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나를 미워하는 사람, 나를 사랑하는 사람, 내 곁을 스쳐 가는 모든 이들의 삶 역시 그들의 철학 안에 있었다.



알고 나면 어제로 돌아가지 못한다
이 책에 등장하는 좌절은 모두 사실이고 적용된 철학은 매우 구체적이다. 학교가 아닌 책으로 철학 공부를 시작한 저자에게는 학문적 계보를 이어야 할 의무도, 그럴만한 스승이나 선후배도 없었다. 덕분에 철학을 형이상학적 접근이나 학문적 독해가 아닌 ‘을의 언어’로 해석할 수 있었다. 철학이 밥이자 물이고 목숨이었던 다급함이 만들어낸 삶의 언어다. 우리가 만약 고정된 실체이고 변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정해진 운명대로 살아가야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변한다. 고정된 자아도 실체도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건 타자와의 관계이며, 관계 속에서 어떤 삶이 주어지든 자기 삶을 이끌 자유 의지는 누구에게나 있다.
이 책이 망라하는 철학자들의 역사에서 우리는 동질의 고뇌를 발견한다. 하지만 그들은 자기 삶을 이끄는 자유 의지를 따라 변화하기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계속되는 가난과 추방에도 글쓰기를 멈추지 않은 마르크스, 세상을 등지고 숲으로 들어간 소로, 칠순의 나이에 스스로 죽음을 택한 들뢰즈까지 모두 자신을 가둔 껍데기를 깨고 체제 바깥으로 나가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은 사람들이다. 그들의 삶과 그들이 남긴 메시지를 통해 내가 변해간다. 이처럼 알고 나면 어제로 다시 돌아가지 못한다. 그 모든 불행이 내 탓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면 어제의 나로 돌아갈 수 없다. 더 큰 불행이 닥쳐온다 해도 더는 어제의 내가 아니다.
철학은 나를 나에게 이끄는 화해의 손길이다. 날 때부터 주어진 가난, 내 앞에 등장한 악인, 쓰라린 이별의 상처…. 철학은 우리가 마주친 많은 불운이 그저 수많은 우연의 접점이라고 말한다. 그러니 자책을 멈추고 자신을 검열했던 어두운 터널을 빠져나와 온전히 스스로와 마주하라고 말한다. 당신 잘못이 아니다. 그 모습이 썩 아름답지 않더라도, 어제의 추함과는 다르다는 사실을 오늘의 나는 안다. 그것이 나를 삶 앞으로 이끄는 철학의 힘이다.

저자 - 송수진
30대 중반. 비정규직 노동자. 학부 시절 행정을 전공했지만 제대로 써먹은 적은 없다. 대학 졸업 후 알 만한 중소기업을 전전하며 비정규직으로 일하다 서른 즈음 무역회사에 들어갔지만 금융사기를 당해 모은 돈을 다 날렸다. 이후 틈틈이 알바를 하며 세무사 준비를 하다가 도서관에서 해야 할 공부는 안 하고 철학책을 붙잡기 시작해 사회복지 분야로 눈을 돌리게 되었다. 현재는 사회복지사, 특히 청소년 상담사로 활동 중이다. 뒤늦게 철학과 석사 과정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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