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물건들 사이로 엄마와 떠난 시간 여행
엄마와 물건
'엄마 이건 언제부터 썼어?'


엄마가 목격한 21가지 물건들의 탄생과 발전!
저자의 엄마는 1950년에 태어났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장장 72년 간 그녀가 사용했던 물건만 늘어놓아도 대한민국의 역사가 그려질 판이다. 그 중에서 21가지 물건을 골랐다. 엄마랑 가까이 붙어 있던 놈들로, 엄마의 재미있는 경험들이 담겨 있는 놈들로 말이다.
전쟁둥이 엄마의 이야기, 저자가 혼자 듣기 아까워 글로 쓰고 열심히 다듬은 엄마와 물건들의 이야기를 엮어보았다.
이태리타월, 우산, 고무장갑, 전기밥솥, 손톱깎이 등은 도대체 언제부터 사용했을까? 처음에도 지금과 같은 형태였을까? 없을 때는 어떻게 했을까?
엄마와 함께한 이 물건들은 엄마의 삶, 우리의 삶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을까?





1950년대부터 2022년까지! 72년 동안 쌓아 온 엄마의 생생한 물건 사용기!
이래서 인생의 무게는 무시할 수 없다고 하나보다. 내뱉는 족족 주옥같은 엄마의 생생한 ‘물건 사용 후기’를 듣고 있자니 웃음도 나고, 눈물도 나고, 기이하기도 하다. 아니, 그때는 정말 그랬다고?
도저히 엄마 말만 믿을 수가 없어 당시 신문 기사도 샅샅이 살폈다. 덕분에 과거 사람들의 반응, 생활양식의 변화, 사고의 전환 등을 간접적으로나마 느껴볼 수 있었다. 물건 하나 등장했을 뿐인데 우리의 삶과 생각이 이렇게 순식간에 바뀌다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엄마, 그래서 이건 언제부터 썼다고?
과연 이 물건은 정말 우리에게 편리함과 효율성만을 선물했을까? 물건이 등장하기 전의 삶보다 지금이 마냥 좋다고 할 수 있을까?
물건으로 보는 ‘한국 역사’! 머나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엄마(또는 할머니)가 겪었던 이야기라 더 재밌고 와닿는다. 허투루 버릴 수 없는 우럼마(울엄마)의 촌철살인 멘트와 과거 신문 기사를 따라 읽어보는 물건의 발자취! 쓸데없이 유익하면서 지나치게 사실적인 교양물건사, 지금부터 엄마와 물건사 여행을 떠나보자.
엄마는 10살이 되기 전부터 외할머니와 집안 살림을 함께 했다. 기름을 칠할 때, 솔이 없어 마른 짚을 묶어 사용했는데, 짚이 억세 간혹 김이 찢어지기도 하고 이래저래 불편했던 모양이다. 그런데 어느 날 외할머니가 처음 보는 것으로 김에 기름을 바르고 있었다.
“저게 뭘까, 하고 한참을 봤는데 잘 모르겠더라고. 나중에 자세히 보니 북어 꼬리인 거야. 북어 꼬리로 하니까 기름이 골고루 잘 발라지고 부드럽고 기가 막히게 좋았지. 어떻게 이걸로 기름 바를 생각을 했을까, 참 신기했어.”
- 본문 <김솔> 중
책 속으로
나는 산업화 기간에 새로 생긴 물건들을 엄마가 어떻게 수용하고 생활 속으로 받아들였는지 그 과정을 썼다. 엄마라는 한 사람으론 객관성을 담보할 수 없어 당시 신문 기사도 참고했다. 하지만 이 물건들로 인해 엄마의 삶이 마냥 편해지기만 했다고 읽히는 것을 경계한다. 내가 책에서 다룬 것은 이전에 없던 물건들이 집안에 들어오면서 생긴 변화이지만, 집 바깥도 마찬가지로 많은 것이 바뀌었다. 소나 자전거를 타고 다니던 길에 도로가 깔리고, 사람들은 이제 버스나 지하철, 자가용을 타고 다니며, 핸드폰으로 언제 어디서든 소식을 주고받을 수 있다. 이런 것들이 과연 우리를 더 자유롭게 하고 저마다의 삶에 행복과 평화를 가져다주었을까? 세탁기가 생겨 빨래가 편해진 건 분명하지만, 이 물건으로 생긴 여유와 활력을 스스로의 행복과 더 나은 삶을 위해 사용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 9쪽, 서문
돌로 때를 밀던 엄마도 아이들이 태어난 뒤엔 이태리타월을 썼다. “이태리타월로 미니까 때가 줄줄 나오고 힘이 하나도 안 드는 거야. 이게 웬일인가 싶었지.” 하지만 단점이 있었으니 아쉽게도 너무 빨리 해어지고 찢어진다는 것이다. “도저히 쓸 수 없을 때까지 썼어. 구멍 났다고 버리던 시절이 아니니까. 뭐든 아꼈어.”
부실하게 만든 이태리타월에 화가 났는지, 서울에 사는 김경례 씨가 동아일보 ‘독자가 만드는 독자란’에 이 문제를 지적하는 글을 투고했다. - 26쪽, 이태리타월
“그때만 해도 고무장갑이 소중해서 구멍 안 나게 쓰려고 늘 조심했거든. 사려면 다 돈이잖아. 많이 아끼고 살아서 그런지 살림에 대한 건 잘 안 잊히더라고.”
얘기가 나온 김에, 고무장갑 이야기를 좀 더 들어보기로 했다. 엄마가 처음 고무장갑을 썼을 때부터.
“글쎄… 언제 나왔는지는 잘 모르겠어. 동네 사람들이 쓸 때도 나는 안 썼으니까. 결혼 후인 건 분명해.”
엄마는 1973년, 24살에 결혼했다.
“그즈음에 한겨울에만 한 개씩 사다 쓴 것 같아. 그땐 지금처럼 질기지 않아서 잘 찢어졌어. 설거지나 빨래할 때 만 낀 게 아니라, 옛날엔 채소 같은 거 다 우물 가서 씻었 으니까 꼭 고무장갑을 꼈지. (설거지, 빨래 등 용도에 따라) 구 분 안 하고 하나로 다 썼어. 오죽하면 부엌도 추우니까 고무장갑을 끼고 칼질을 했단 말이야. 그러면 잘못해서 장갑 끄트머리를 칼로 잘라먹는 거야. 장갑이 비싸니까 그걸 또 본드로 붙여서 쓰고.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나았어.” - 134쪽, 고무장갑
저자. 심혜진
글 쓰고 글쓰기 강의도 합니다. 반려묘 미미와 코코의 집사이고요. 책 사는 것이 낙이고 연어회를 좋아하지만 자주 사 먹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내일은 오늘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어 좋은 글을 쓰는 것이 저의 바람입니다. 책 《인생은 단짠단짠》, 《일상, 과학다반사》를 썼습니다. 이번엔 1950년생 전쟁둥이인 엄마의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두레박으로 퍼 올린 우물물부터 프랑스 산 ‘에비앙’ 생수까지 모두 맛 본 흥미진진한 삶의 여정을 엄마의 목소리에 담았습니다. 소수자와 약자들의 서사가 넘실대는 세상을 꿈꾸며, 엄마의 이야기를 여기 내놓습니다.
저자. 이입분(구술)
1950년생이지. 충남 부여군 충화면에서 태어났어. 충청도에서 경기도로 경상도로 얼마나 이사를 다녔는지, 결혼 전엔 17번, 결혼 후엔 19번이나 다녔다니까. 인천에는 1990년에 와서 지금껏 살고 있어. 돌아보면 평탄하게 살기가 참 쉽지 않은 거 같아. 가장 좋았던 때는 요즘이야. 자식들에게 뭔가를 해줘야 한다는 부담이 없고 혼자 자유롭게 사니까 마음이 편해. 집에 있을 땐 월간지 <좋은 생각>을 읽고 좋은 글귀가 있으면 필사를 해. 마음에 오래 간직할 수 있잖아. 저녁엔 뉴스를 보고 ‘가요무대’랑 ‘전국노래자랑’ ‘뭉쳐야 찬다’는 아주 빼놓지 않고 봐. 큰돈 없이 그날그날 즐겁게 살아. 책이 나오면 나도 한 권 사봐야겠어.

EDITOR AE류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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