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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산속 절에는 무슨 음식이 있나? -제천 고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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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푸드(slow food)가 대세다. 신선하고 맛좋은 제철음식을 정성스럽게 요리해서 식탁에 올리면, 온 가족이 행복하다. 패스트푸드에 식상한 사람들이 이제는 건강 식단에 눈을 돌리면서, 새롭게 부각되고 있는 것이 사찰음식이다. 과거 사찰음식은 일반인들이 쉽게 접하기 힘든 특정한 스님들의 음식으로만 인식되어 있었지만, 이 분야의 유명한 선재스님을 비롯하여 다양한 경로로 사찰음식을 만드는 방법이 소개되면서 세간의 관심을 끌고 있다.
현재 전국의 대한불교조계종 소속 사찰은 약 2천500여 곳이다. 그 중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사찰음식으로 명성이 자자한 몇 곳을 선택해 ‘숨어있는 사찰음식’을 탐방해 본다. 이번 사찰음식 탐방에는 사찰음식전문가 표복숙 원장(선재사찰음식문화연구원)과 함께 했다. 제일 먼저 우리고장 제천에 있는 ‘고산사’로 향했다. 고산사는 특이하게도 남자 주지인 장산스님이 사찰음식의 대가로 알려져 있다.





음식도 하나의 도(道)
제천 고산사로 가는 길이 절경이다. 산사 가는 길이 월악산을 가로질러야 갈 수 있는 덕분에 뜻밖의 호사를 누렸다. 기암절벽과 어우러진 산세가 그만이었다. 월악산 숲을 빠져나오자, 입고 있던 옷들이 그대로 자연의 생기에 흠뻑 젖어버린 느낌이다. 월악산 끝자락에서 고산사를 만났다. 뱀의 몸처럼 구불구불한 길에 어찌나 경사가 가파르던지 동승한 표복숙 원장은 “난, 죽었다 깨어나도 이 길은 차로 못 올라.”라며 손사래를 쳤다.
“고산사를 월악산 영봉에서 보면 연화부수(蓮花浮水)의 형상이지.”
고경당(古鏡堂)에서 따뜻한 차로 장산스님은 손님을 맞았다. 문 밖으로 멀리 월악산 영봉이 보였다. 요리하는 주지스님이라…. 좌정해서 차를 따르며 법문을 들려주는 모습과 요리하는 모습이 잘 일치되지 않았다. 장산 스님은 문득 선문답을 던졌다.
“소크라테스가 나쁠까, 악처로 소문난 크산티페가 나쁜 여자일까?”
“소크라테스야 현자잖아요?”
“틀렸어요. 소크라테스가 나쁜 남편이야. 자기 혼자 독야청청하며 살면 뭐해? 가정을 돌보지 않는 소크라테스는 아내 입장에서 나쁜 사람이지. 책임을 질줄 모르는 사람이야. 천하의 현자면 뭐하나. 가정하나 돌보지 못하는 사람인 것을.”
엉뚱하게 소크라테스 이야기로 접어들었지만, 재빨리 화제를 바꿨다.




가을에는 달고 미끈한 것이 좋아
“원래 사찰음식을 누구로부터 전수받으셨나요?”
“난 음식을 누구에게 배워본 적이 없어. 음식도 도(道)와 같아. 만류귀일(萬流歸一)이야. 모든 흐름은 결국 하나에 머무는 것이지. 또한 하나에서 머무르면 썩게 되는 거야. 하나는 또한 움직이는 것이지. 그게 진리야. 음식도 결국 깨달음을 통해 나오는 거지. 둘이 아니라 하나야. 만물지모(萬物之母)고. 모든 사물이 어미라는 거야. 배울 것이 있다는 뜻이지. 음식과 도는 둘이 아니라, 하나야.”
풍경소리가 간간히 들렸다. 요차채로 자리를 옮겨 장산스님이 직접 요리를 하기 시작했다. ‘오늘의 요리’는 연잎 밥과 우엉찹쌀구이 그리고 표고 버섯구이와 연근 된장 참깨무침이다. 음식재료 하나에도 스님은 설명을 깃들였다.
“봄에는 담과 가슴 병이 생기니 떫고 매운 것이 좋고, 여름엔 풍병이 생기니 짜고 신 것을 먹는 것이 좋아. 가을에는 황열병이 더하니 달고 미끈한 것을 먹어야 해.”
본디 사찰음식은 수행에 방해가 되는 오신채(파·마늘·양파·달래·부추)를 뺀 음식이다. 또한 육미(六味 : 단맛, 신맛, 쓴맛, 짠맛, 매운맛, 떫은맛)중 사찰음식은 단 것을 경계하니 의문이 인다. 그때 표원장이 “철에 맞는 음식을 먹어야 한다는 얘기죠. 봄에 나는 나물들은 몸에 보약이죠.”라고 말하자, 장산 스님 지긋이 웃는다. 그야말로 염화시중(拈華示衆)의 미소다.




끓는 물에 살짝 데친 연근 위에 직접 담근 장과 깨소금을 이겨 덧입힌다. 하얀 연근이 노란 단풍처럼 금방 물들었다. 우엉은 다져서 찹쌀가루를 묻혀 들기름에 부친다. 흑임자, 고추, 통깨, 간장을 섞어 양념을 만들어 얹으니 음식이 불을 밝힌 듯 환해진다.
“우엉을 벗길 때도 칼 뒷면으로 긁어 껍질을 벗겨야 돼. 그래야 자연의 맛을 최대한 살리거든. 음식은 정직해. 최대한 본질을 살려야 제 맛이 나는 법이지.”
연잎 향이 그윽하게 감도는 밥을 입에 넣고, 연근을 씹으니 고소한 깨 맛과 상큼한 연근의 즙이 조화를 이뤄낸다. 씹으면 씹을수록 각 재료의 맛들이 살아있는 듯 생생하게 미감을 일으킨다.
“어떻게 사는 것이 행복한 것인가요?”
행복한 음식에 덧붙여 팁처럼 스님께 물었다.
“공양도 수행이다. 음식이 상에 올라오기까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정성과 공덕이 쌓였다. 그러므로 이를 받아, 자신의 허물에서 비롯되는 온갖 탐욕을 버리고 육신에 바른 생각이 깃들도록 음식을 약으로 삼아 도를 이루기 위해 몸을 낮추어 먹는다면 이 또한 도(道)며, 행복해지는 방법이 아니겠는가.”
풍경(風磬)소리가 마지막 방점을 찍듯 고산사의 풍경(風景)을 헤집고 다녔다.




<고산사 장산스님의 사찰음식 레시피>

●연잎밥 / 연잎, 찹쌀, 은행, 밤, 대추, 잣, 소금, 물
1. 찹쌀을 2∼3시간 정도 물에 불려 찜통에 젖은 면보를 깔고 20분 정도 찐다. 너무 오래 불리지 않는 것이 관건.
2. 찹쌀이 고슬고슬하게 쪄지면 그릇에 쏟아 소금물을 조금씩 섞어주면서 버무려 간을 한다.
3. 깨끗하게 씻은 연잎을 원하는 크기로 잘라서 밥을 놓는다. 볶아서 껍질을 깐 은행과 잣을 고명으로 얹은 후 연잎 밥을 싼다. 찜통에 싸 놓은 밥을 안치고 40분 이상 푹 찐다.
●우엉찹쌀구이 / 우엉, 찹쌀가루, 양념장 (풋고추, 흑임자, 간장), 식용유
1. 우엉은 씻어 껍질을 벗기고 적당한 길이로 토막 내어 반으로 썬다.
풋고추는 손으로 비벼 반으로 갈라 씨를 털고 송송 썬다.
2. 우엉을 김이 오른 찜통에 넣고 설컹거릴 정도로 찐다. 찐 우엉은 자른 쪽이 위로 가게 도마 위에 놓고 안쪽부터 방망이로 두들겨 넓적하게 편다.
3. 찹쌀가루에 우엉 찐 물을 넣고 되직하게 반죽한다.
4. 팬이 달궈지면 식용유를 두르고 우엉에 찹쌀 반죽을 앞뒤로 묻혀 노릇하게 굽는다. 양념장을 만들어 우엉 찹쌀 구이에 뿌린 후 접시에 담아낸다.
●생(生)표고버섯구이 / 생(生)표고버섯, 들기름, 소금, 고추장, 간장, 조청, 생강즙, 통깨
1. 표고버섯은 흐르는 물에 재빨리 씻어 꼭 짠다.
2. 밑동은 떼고 갓에 십자로 칼집을 내어 절반은 들기름에 노릇하게 소금을 뿌려가며 굽고, 나머지 절반은 들기름에 표고버섯을 구운 후 갓 밑쪽에 양념장을 발라 양념이 타지 않을 정도로 한 번 살짝 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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