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가이드

찰랑찰랑 무심천 발원지 따라
한 방울 한 방울 모여 물줄기는 시작되고
'뫼서미골 · 탑산이골 / 산정말 / 한계저수지 '

산이 한 모금씩 내어 준 물은 사냥에 굶주린 산짐승 하얗게 껍질을 드러낸 고목 하물며 고목에 기댄 삭정이까지 목을 축여준다. 들꽃에도 곡식에도 곁을 내어주고는 끝내 인간 세상에 닿아 손 씻기며 흐른다.
청주의 젖줄 무심천의 근원 _ 뫼서미골 · 탑산이골
어른들은 물고기를 잡느라 여념이 없고 그 옆에서 발가벗은 아이들은 물놀이를 즐기던 아련한 추억의 보고 무심천. 지금 의 무심천은 봄이 되면 벚꽃이 만발하여 꽃길을 걷느라 행복에 겨운, 삭막한 도시를 벗어나쉬 찾게 되는 도시 속 쉼터이다. 앞으로도 무심천은 청주의 생명으로 자연과 사람이 하나되어 함께 살아갈 것이다. 그렇게 청주의 젖줄이된 무심천의 처음을 찾아가는 길은 아주 특별한 여정이다. 끊임없이 의미 가 부여되는 처음을 찾아가는 길에 잠시 감사의 인사라도 해 야 할 듯 설렘이 가득하다.
가덕면은 무심천의 최상류 발원지역이다. 금거리에서 무심천과 합류하는 지류인 병암천은 내암리 골짜기에서 물줄기 가 시작된다. 내암리에서는 조선시대 퉁그릇을 만들었다고 한다. 얼마전까지 전답에서 쇠를 용해할때 응고된 것이 출토되었다고도 하는 퉁점마을이 가장 오래되었다.
左) 무심천 발원지 右)퉁점 골짜기

천주교 박해를 피해 이주한 안씨 일가가 옹기를 구워 미태재 를 넘어 청주장에 내다 팔며 마을을 형성하고 오랜 신앙생활 을 해온 터전이다. 지금은 이 곳에 생수공장이 들어서 옛 자취를 가늠해볼 수 없는 점이 아쉽다.
퉁점마을 위쪽에서 만나는 무심천의 처음은 맑은 물빛이가을 하늘만큼 청량하다. 푸른 시냇물을 만나고 마주하는 갈림 길. 재촉하는 마음에 오히려 선뜻 어느 길을 먼저 가야 할지망설여지는 길이다.
우선 수량이 좀 더 많은 갈림길의 왼쪽 탑산이골로 향해본다. 우거진 나무들 사이로 사방댐이 나타나고 목이 좀 마르다 싶을 즈음 만나는 옹달샘도 잘 정비되어 있다. 초록빛 잎사귀와 작은 물고기를 품고 있는 옹달샘 바로 위쪽에 무심천유래비가 나타난다.
생명의 근원인 물의 소중함과 발원지의 중요성을 오가는 이들에게 알려주기 위해 주민들이 직접 세우고 매년 발원제를 거행하고 있다. 수량이 적은 오른쪽 길로 접어들면 푸르른 물빛이 빛나는 뫼서미골 벽계수 옹달샘이다. 무심천와 미호천이 만나는 합수점에서 가장 먼 거리에 위치한 발원지이다. 해가 일찍 떨어지는 깊은 산중이어서인지 옹달샘 옆에는 멧돼지가 헤집어놓았을 것 같은 마른 샘이 눈길을 끈다.
산이 한 모금씩 내어준 이 모든 물길이 모이고 모여 무심천을 이루었다. 그 한 모금의 물은 나무가 봄에 깨어나 푸르름을 다 할 때까지, 그리고 겨울을 맞이하기 위해 몸을 내려놓는 가을 낙엽부터 산짐승, 작은 물고기, 들판의 꽃들, 곡식에도 목을 축여주고 있었다.
한 생명 물길로 태어나 큰 강을 이루는 것도 꿈이겠으나 작은 풀꽃에도 조약돌에게도 곁을 내주는 삶은 절로 강을 이루고 바다도 이루지 않았을까.
스님의 기도로 샘이 솟아나다 _ 산정말
가덕에서 미원으로 가는 사이에 낭성면 추정리가 자리하고 있다. 추정1리 시내버스 정류장에서 왼쪽으로 도로를 건너들어가면 낭성면 추정1리 산정말이 나오고 오른쪽 마을길에 접어들면 가래울이 나온다.
산정말 가는 길은 산길 끝에 사람 사는 마을이 정말 있을까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가파르고 좁은 편이다. 도착한 산정말은 생각보다 많은 이십여 호 이상 집들이 정갈하고 아담하게 자리하고 있다. 마을 꼭대기에 떡하니 자리 잡은 300년 넘은 느티나무는 마을의 내력을 품고 수호신처럼 당당한자태이다.
산정말고개 느티나무

산을 넘어가던 스님이 한 모금의 물을 얻기 위한 간절한 기도로 샘솟게 되었다는 전설이 산정의 우물의 의미를 더하게한다. 우물 주변에 물이 흐르는 흔적도 없는데 이 높은 곳에서 샘이 연중 마르지 않고 솟는다니 신묘한 효험이 있을 것만 같다.
산정말은 근대 이후 신작로가 생기기 전에는 보은과 청주를 잇는 길목이었다. 보은쪽 내북면 염둔마을에서 국사봉 사흘티(살티재)를 넘어 이 곳 산정말재를 지나면 한계리 꼬부랑재와 미테재를 지나 청주장에 닿았다. 나무를 땔감을 쓰던 1950~60년대까지만 해도 산정말 사람들이 지게로 나뭇짐을 지고 나가 팔았는데 산정말 나뭇짐은 나뭇단이 알차 장꾼들에게 특히 인기가 많았다고 한다.
가래울 마을은 산정말에서 동남쪽에 자리하고 있다. 보은으로 가는 길목이었던 사흘티는 험한 길이어서 어느 할머니가 사흘 동안 넘은 고개여서 그렇게 부르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左) 산정말 윗샘 右)산정말 아래샘

사흘티는 육로 운송이 발달하기 전인 1960년대까지만 하여도 청주 쇠전과 상주 쇠전을 오가는 소몰이꾼의 주요 통로였다. 쇠전에서 거래되는 소를 전문적으로 끌어다 주는 전문 직업인이 소몰이꾼이었다. 소는 당시 농촌에서 가장 큰 재산이어서 소몰이꾼에게는 소를 위탁받을 수 있는 신용이 가장 큰덕목이었다고 한다.
한 번 이동할 때 황소는 두 바리, 암소나 송아지는 네 바리 단위로 엮어서 고개를 넘고 물을 건너 마을을 지나 쇠전과 쇠전을 오가던 소몰이꾼. 화물운송이 급속하게 발전하던 1970년 대에 소몰이꾼은 사라진 직업이 되었다.
한계라고 느낄 때 마음으로 만나는 _ 한계저수지
상야들에서 북쪽으로 보이는 높은 봉우리가 선도산과 선두산이다. 한남금북정맥에 위치하여 물이 남쪽인 가덕으로 흘러들면 금강물이 되고 북쪽인 낭성으로 흘러가면 한강물이된다. 두 봉우리에서 남쪽으로 흐르는 물줄기를 막아 조성된저수지가 한계저수지이다.
한계저수지

저수지 제방 옆으로 들어오는 길에는 줄지어 서 있는 은사시나무가 일행을 반갑게 맞아준다. 특히 해가 저물녘 저수지는 금빛 물 조각을 흩어놓은 듯 가는 실눈으로도 눈이 부시다.
버즘나무와 버드나무가 깊이를 가늠하기 힘든 수심 속에 발을 깊이 담그고 있다. 수면에 드리워진 나무들의 물그림자를 물끄러미 쳐다보며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게 하는 시간을 선물한다.
한계저수지는 손맛을 중시하는 낚시동호인에게 잘 알려진 낚시터이기도 하다. 또한 주변에 수변공원이 잘 조성되어 있어 가족들과 함께 산책하기에 좋은 여건을 갖추고 있다. 저수지가 아름답고 낚시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아서일까. 저수지 주변엔 펜션이 들어서고 그림 같은 집들이 도란도란 들어앉은 전원주택들도 늘어나고 있다.
내암리 옹달샘, 산정말 우물, 한계리 저수지. 이 모든 물이 한데서 만나 무심천이 되고, 무심천은 미호천을 만나 금강의 품에 안겨 서해까지 닿는 여정을 오늘도 이어가고 있다.

EDITOR AE류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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