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

명당과 명문가 이야기

2021-08-11

라이프가이드 여행


휘휘도는 현도금강 따라
명당과 명문가 이야기
'오박사마을 / 보성오씨 삼효정 / 월대촌 / 오숙동 묘'

    좌청룡 우백호, 남주작에 북현무 복 많은 명당이면 그 마을이 행복하고 사람들이 안녕할까? 어쩌면 명당은 지형·지세로만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안겨 사는 사람들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리라. 마을 사람 모두가 형님이 되고 아우가 되어 나누고 보듬고 베푸는 한식구가 되어 사는 그곳이 명당이리라. 
보성오씨 전통 마을 _ 오박사마을
    참 아담하고 예쁜 마을이다. 시목2리 초입에서 옛 우물이 목을 축여주며 정겹게 맞아준다. 마을 뒤편으로 낮은 동산이 둘려 있고 앞은 동네 가득 들어찬 가을 황금들녘이 풍요로움을 더한다. 그늘 없이 종일 볕이 들 것 같은 그야말로 햇살을 머금고 있는 마을이다.
    마을에서 5명의 박사가 나왔다 하여 말 그대로 오박사마을인 이곳은 400년 전통의 오씨 집성촌인 지선 선생 후손의 선비마을로 농경공동체가 형성되었다. 10년 넘게 축제를 열면서 현도농요한마당, 지게윷놀이, 전통서각 체험행사와 부대행사로 농촌문화체험행사, 전통서각작품전시회, 탁본, 향토음식체험 등 다양한 행사를 주최하고 있다. 정월 용신제와 단오축제가 전승되고 있으며 이 중에서도 지게윷놀이는 이 마을의 독보적 문화유산이다. 1호 농촌체험휴양마을로 지정된만큼 잘 정비된 공간에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연령대 제한 없는 참여 가능한 곳이다. 
    오박사 마을은 마을 전체가 형님도 되고 아우, 삼촌, 고모가 되는 친척으로 이곳을 찾는 이들은 모두가 이들 가족의 손님이 되는 것이다. 농촌체험을 오는 아이들은 할아버지, 할머니의 온정 속에서 옥수수며 고구마를 수확한다. 어른들은 지켜야 할 우리의 전통을 함께 공유하며 추억에 젖어보고 그렇게 마을을 고향 삼아 한바탕 즐기고 갈 수 있는 열린 시골품이다. 
    오래된 우물. 오박사마을의 문화유산으로 정초에 이 샘물을 길어 마음을 정결하게 하고 정화수를 떠 놓고 마을의 태평과 풍년농사를 기원하며 가족의 건강을 염원했다고 한다. 365일 마를 날 없이 지금도 물이 찰찰넘친다. 1960~70년대에는 마을 일대의 150집 이상이 이 우물물을 먹었다하니 이 마을이 오박사를 배출해낸 것도 이 영험한 신비의 샘물 덕은 아니었을까. 
 
농촌 인성학교 / 오박사 마을 / 지게 윳놀이 
 
3대를 이은 효성어린 이야기 _ 보성오씨 삼효정 
    효비각을 찾아 나선 길을 초등학교로 들어설 줄이야 상상이나 했겠는가. 교문을 들어서면서 운동장을 가로질러 오른쪽으로 보성오문 삼효비가 세워져 있다. 언덕으로 올라가면 삼효정이라는 편액이 보이고 안에는 3인의 효자문 편액이 걸려있다. 
    달계리 현도초등학교 옆에 있는 보성오씨 삼효정은 오상건(1765), 그의 아들 오진택(1851), 손자 오정기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 삼효정을 만나기 위해 초등학교 운동장을 가로지를 때 운동장에서는 한창 아이들의 체육수업이 진행 중이었다. 이방인의 출입을 자연스러워하는 것은 이 삼효정에 대해 아이들이 익히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굳이 효에 대해 가르치지 않아도 운동장 한편에 자리하고 있는 실제 인물에 대한 이야기가 있으니 이 보다 더 큰 교육이 어디있으랴. 
 
삼효정/전통샘
 
마을 남쪽으로 금강물이 넘실넘실 _ 월대촌 
    현도는 흥미롭게도 풍수적으로 꽤 유명한 곳이다. 일찍이 제3공화국 시절 현도가 명당이라 하여 행정수도 이전 후보지 로 거론되기도 했다. 현도면 자체가 삼면으로 금강이 에워싸 며 흐르고 있어 누구나 봐도 길지임을 알아볼 수 있다. 보성 오씨 입향조인 오숙동의 종택이 있는 월대촌은 그 자손들이 터를 잘 관리하고 있다. 달을 형상화한 월대가 마을에 세워져 있으며 오숙동의 옛터를 알리는 사적비도 만날 수 있다. 종택은 앞마당에서도 금강의 물길이 보이는 곳으로 고풍스러운 옛 자취를 느껴볼수 있다. 이곳에 정착했던 원주 원씨의 원병사가 담 밑에 어린 용한마리가 똬리를 틀고 있는 꿈을 꾸고 깨어나 밖으로 나가보니 과연 어린아이가 담 밑에서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한다. 
    범상한 일이 아니라고 여긴 원병사는 어린아이를 곁에 두고 잘 보살폈는데 이 소년이 바로 오숙동이었다. 오숙동은 문무 를 닦으며 장성해서는 벼슬이 진의부위에 이르러 원병사의 따님과 결혼해서 아드님 넷을 두셨다. 풍수적으로 오숙동의 묘가 아름다운 금계포란형으로 닭이 알을 품은 듯한 형세를 이루었다 한다. 현재 전국에 그 자손이 3만여 명에 이르고있다고 한다.  
 
월대 조형물
 
명당에 묘쓰며 가문이 번성 _ 오숙동 묘 
    월대촌이 명당이요, 오박사도 배출한 현도의 또 다른 명당은 보성오씨문중사적비가 있는 달계리다. 혈이 뭉쳐진 진혈지로 표현되는 곳으로 여기에 오숙동 묘를 쓰고부터 집안이 흥했으며 자손도 번성하였다 한다. 보성오씨사적비가 중앙에 자리하고 있으며 대중문에 후손들이 제를 올리는 재실이 따로 마련되어 있다. 사적비 앞쪽으로는 영오지라는 연못을 조성해 놓았는데 풍수적으로 약하거나 모자란 것을 도와서 보태거나 채우기 위해 연못으로 비보裨補하였다고 한다. 
    재실 옆길 묘역으로 가는 길을 오르면 보성오씨설단비가 있고 돌계단을 따라 오르면 오숙동의 묘가 나온다. 묘역으로 가는 동안 만나게 되는 석물이며 굵다란 소나무의 조경이 어찌나 잘 되어 있는지 가문을 가꾸는 후손들의 정성이 고스란히담겨 있다. 잔디에 풀 한 포기 기웃거리지 못할 만큼 정갈하게 가꾸어져 있다.
    아래에서 올려다본 오숙동 묘역은 한 마디로 기운이 당차다. 언덕에 뻗친 소나무의 기개가 당당해서 인지 바라보는 이에게도 그 기운이 강하게 느껴진다. 뿌리가 깊으면 가지와 끝이 무성하고, 연원이 멀면 흐름이 크고 길다는 말이 떠오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