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차로여행

방콕, 화려함과 그늘이 공존하는 도시 - 태국 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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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은 음기가 세서 여성이 많은 나라입니다. 강아지가 태어나도 열에 아홉은 암컷이지요.”
방콕에 도착한 첫 날, 여행안내자의 첫 일성(一聲)이다. 2014년 군분에 의해 축출된 28대 총리 잉락 친나왓도 여성이다. 아무리 오빠인 탁신 전 총리 후광 때문이었다 하지만 당시 44세의 젊은 여성이 일국의 총리가 되었다는 것은 획기적인 일이다.
방콕의 밤거리는 불안했던 정국의 여파 탓인지 거리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의 얼굴은 어딘지 그늘이 어려 있었다. 곳곳에 노숙자들도 눈에 많이 띄었다. 다만 숙소에서 내려다보는 밤의 차오프라야 강이 이국적이고 고요한 자태로 길게 누워, 낯선 이방인을 편안하게 맞이했다.




다음 날, 우선 왕궁내의 에메랄드 사원을 비롯 여러 사원들을 방문했다. 왕궁과 에메랄드 사원은 작디작은 형형색색의 원석을 촘촘히 박아 넣어 만들었다. 하나하나의 섬세한 손길이 연상되는 건축물이었다. 신이나 왕의 위엄보다도 백성의 공력이 먼저 떠오르게 하는 사원들이었다. 왕궁에 들어가는 것이라 샌들을 신을 수 없다고 해서 운동화를 준비해 갔지만, 워낙 여행객이 많아서인지 일반 슬리퍼나 샌들을 신어도 아무 문제되지 않았다. 다만 민소매나 반바지는 허용되지 않았다.



궁에서 나와 차오프라야 강의 보트를 타니 황토빛 강물에 여기저기 풀들과 이물질이 널려 있다. 수많은 여행객들의 보트가 지나다녀도 특별히 치울 생각을 하지 않는다. 강의 한 옆에는 왕궁과 새벽사원이, 다른 한 옆으로는 나무판자의 수상가옥이 있는 풍경이 인상적이다. 강은 왕에서부터 빈민까지 모두를 품고 있는 모성의 젖줄처럼 출렁거린다. 수상가옥 옆을 지날 때 한 아주머니가 언제 나타났는지 보트를 저어와 바나나 한 묶음을 들어 보이며 ‘천원’을 외친다. 잠시 천원을 들고 망설이는 사이 바나나를 쥐어주고 나꿔채듯 천원을 가져간다. 돈 때문이 아니라 들고 다닐 일이 난감해서였지만, 바나나 맛은 아주 좋았다. 천연으로 익은 과일향이 입 안 가득 달콤했다.



천혜의 자연 풍광과 환락의 도시 파타야

파타야로 출발하기 전 태국 전통 음식 ‘수끼’를 먹었다. 수끼는 육수에 신선한 야채와 버섯, 다양한 해산물 그리고 육류를 살짝 데쳐 매콤한 칠리소스에 찍어먹는 태국의 대표적인 전통요리이다.
방콕에서 파타야까지 가는 1시간 30분 동안 보이는 것은 강줄기며 논밭뿐이었다. 그런데 인상적이었던 것은 논밭에 농작물이 아니라 물이 가득 들어차 있다는 점이었다. 흡사 둔덕으로 구획된 작은 저수지들이 들판에 즐비한 풍경이었다. 열대 및 아열대 기후가 혼재되어 있어 이모작 삼모작이 가능하기 때문에 특정 농작물을 심기 전의 상태 같았다.



밤의 파타야에 도착하여 숙소에 들어오니, 저 멀리 시가지의 불빛과 어우러진 밤바다의 풍경이 무척 아름답다. 그저 자연 그대로의 어두운 바다가 아니라 사람살이의 흔적이 보태지는 바다라야 더 푸근하고 정겹다. 저녁을 먹기 전 가이드의 광고에 깜박 속아 티파니쇼를 보고 나오며, 60년대나 인기를 끌었을 삼류극장쇼를 보았다고 개탄을 했다. 하지만 아내는 쇼의 내용보다 여자들의 아름다움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등장하는 수십 명의 여자들의 완벽한 얼굴과 몸매에 넋이 나간 눈치였다. 그러면서 바라보는 눈빛이 ‘당신 좋았겠수’하는 표정이다. 나 또한 아름다운 몸매와 우아한 자태에 경탄했지만 어쩐지 비현실적인 느낌이라 그다지 매혹된 것은 아니었다. 너무도 완벽하다는 생각 때문에서였을까. 꽃으로 치자면 생화가 아니라 조화를 보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 느낌은 가이드의 다음 말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이 쇼에는 72명의 여자가 등장하지만 진짜 여자는 한 명도 없습니다.”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또 다른 놀라움에 아내는 이번에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야간시티투어의 밤거리에서도 곳곳에 게이바가 많았다. 수박 주스나 맥주 한 잔을 마시며 보는 무에타이, 코브라쇼, 연체동물처럼 흐느적거리는 대여섯 살짜리 소녀의 거리 공연, 판토마임 등 파타야의 밤거리는 다양한 풍경으로 화려했다. 과연 베트남 전쟁 때 미군휴양지로 번성하기 시작했다는 명성에 걸맞았다.



파타야의 보석, 눙눅빌리지와 산호섬

다음날 아침, 눙눅빌리지로 향했다. 농눅 빌리지는 1980년 개장한 동남아 최대 규모의 테마파크인데 정원의 규모가 방대해 정원사의 수만 약 3천300명에 달한다. 또한 코끼리, 악어 외에 호랑이, 오랑우탄 등 수만 마리의 동물이 사육된다. 특히 코끼리쇼가 인상적인데 거대한 코끼리들이 댄스, 축구, 농구 등을 한다. 얼마나 고된 훈련을 받았을까 마음이 짠해졌다. 쇼가 진행되는 와중에 유치원에서 초등학교 1,2학년쯤 보이는 아이들이 코끼리 먹이용 바나나를 팔았다. 그 중 제일 먼저 다가온 아이한테 샀더니 다른 아이들은 모두 시무룩해지고 바나나를 판 아이만 환하게 웃음 짓는다. 돈 내고 코끼리쇼를 보며, 코끼리 먹이 바나나를 사고, 코끼리 발밑에 눕는 체험을 하는 데 또 몇 달러를 내야 한다. 모든 것이 돈과 관련된 매커니즘이었다. 하지만 관광객들은 여행 와서 단 한 번의 경험이라는데 의미를 두고 그 모든 것을 즐겁게 의식 치르듯 행한다. 코끼리 트레킹 시 귀 근처의 털을 하나 뽑아 지갑에 넣어 두면 부자가 된다는 속설이 있다고 한다. 털이 얼마냐고 물으니 앞에 올라탄 태국 코끼리 조련사의 콩글리쉬가 걸작이다.
“투(Two)털 삼천 원”
웃다가 코끼리 등에서 굴러 떨어질 뻔했다. 아마 두 사람이 탔기 때문에 ‘투 털’가격을 제시하는 것 같았다. 이 코끼리들이 그 속설로 인해 한국 관광객들에게 얼마나 많은 털을 뽑혔을 것인가. ‘이 코끼리에 털이 많으니 당신은 부자’라 하니 ‘노, 노’하며 고개를 젓는 뒷모습이 고달파 보인다.
점심식사 후 배를 타고 산호섬으로 향했다. 고속 보트의 빠른 속도로 인해 앉은 자리에서 튕겨 나갈 것만 같다. 그렇지만 물보라의 세례가 강해질수록 아이들은 마냥 즐겁다. 산호섬으로 들어가는 중간에 낙하산 체험장이 있고 산호섬에서도 제트스키, 씨워킹 등 각종 해양스포츠 시설을 즐길 수 있다. 호랑이공원에서는 악어쇼와 호랑이쇼 돼지달리기 등 아이들이 좋아할 볼거리가 이어졌다.
방콕으로 돌아가는 길, 파인애플 농장에서 맛보는 파인애플은 지금까지 먹어본 것 중에서 단연 최고였다. 파인애플의 익은 정도를 알아보는 기준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색깔이 아니라, 두드려서 나는 소리라고 했다. 수박처럼 맑고 울리는 소리가 나면 알맞게 잘 익은 것이라고 한다.



여행, 결국 사람을 만나는 것

흔히 패키지 여행하면 수박겉핥기, 억지 쇼핑몰 관람 등의 이미지가 먼저 떠오르지만, 가족 중 노약자가 있을 때 편리하고,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이라는 장점이 있다. 또 하나는 일정을 같이하는 다른 여행자들과 친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중학교 동창끼리 온 젊은 직장인들, 회사일로 인해 집에 남겨진 아버지를 계속 걱정하는 모자모녀 가정들, 바쁜 부모를 대신해 할머니가 손자 손녀들을 데리고 온 경우, 호형호제하는 사이에서 온 나이 지긋한 아저씨들 등 각기 여행 온 사연이 재미있다.
여행은 결국 사람을 만나 온정을 나누는 것이다. 즐길거리 볼거리는 부차적이다. 낙하산 타기를 무서워하는 아이에게 ‘봐, 할머니도 타잖아’하는 격려를 하는 할머니, 왕궁 입구, 태국 전통 바지를 입어야 하는 상황이 창피해 눈물짓는 아이에게 ‘이거 봐. 형 것은 아예 가운데가 찢어져 있어.’하고 구멍 난 바지를 펼쳐 너스레를 떨며 아이를 위로하던 젊은이들…….
마사지를 해주다가 봉숭아물들인 아내의 손가락이 예쁘다며 신기해하던 태국 여인들, 특히 바나나를 팔기 위해 코끼리 쇼를 관람하던 외국 아이들 앞에서 이리 뛰고 저리 뛰던 태국 꼬마 아이들의 잔상이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여행 수첩>
* 태국을 갈 때는 달러보다는 태국 돈 바트화(1바트 : 한화 39원)로 환전하는 것이 유용하다.
* 태국에서 ‘전통지압마사지’를 받으려면 가이드가 추천한 곳은 피하는 것이 요령이다. 파타야에서는 두 곳의 마사지 숍이 유명하다. 먼저 태국 탁신 총리의 아들이 운영한다는 ‘헬쓰랜드 마사지 숍’이다. 가이드 추천 마사지는 보통 40달러(4만5천원, 3달러는 팁 포함)지만 이곳은 800바트(3만2천원)면 충분하다. 서비스와 시설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훌륭하다. 두 번째는 ‘렛트 릴렉스 마사지 숍’이다. 일반 마사지 숍 중 파타야에서 제일 시설이 좋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 가격은 ‘헬쓰랜드 마사지 숍’과 비슷하다. 사전 예약필수.
* 태국과 한국의 시차는 2시간이다. 한국시계를 뒤로 2시간 돌려놓으면 딱 맞는다. 인천공항에서 태국 방콕까지 걸리는 시간은 5시간 40분. 방콕서 파타야까지는 약 1시간 30분정도 걸린다.
* 면도기, 칫솔, 치약은 필히 챙겨야 한다. 호텔에서도 제공하지 않는다.
* 송태우(미터가 없는 개조형 택시)택시는 보통 150바트를 부르지만, 요령껏 깎으면 100바트면 충분하다. 원하는 모든 장소까지 100바트면 충분하다.
* 태국 식당에서 주는 물의 수질이 좋지 않다. 지사제와 진통제, 청심환 정도 챙겨가는 것도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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