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차로여행

천년 신라의 숨결, 오감(五感)으로 느끼다 - 경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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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 신라의 숨결을 오롯이 품고 있는 도시 경주가 봄을 열고 있다. 경주는 국보만 30개를 보유하고 있고, 보물도 75개나 되는 도시다. 현재 국가 지정 문화재 2950개 중에서 198개가 경주에 있다. 경주는 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을 두 건이나 보유한 한국 유일의 도시다. 석굴암과 불국사가 하나고, 경주 시내를 5개 지구로 나눠 지정된 경주역사유적지구가 나머지 하나다. 경주시 전체 면적의 4분의 1 이상이 세계문화유산인 것이다.

아침 7시가 채 되지도 않은 시각이지만, 출발 장소인 충북체육관은 상춘객(賞春客)으로 붐볐다. 주차공간이 없을 정도로 이미 꽉 들어찬 관광버스와 형형색색 관광객의 옷차림이 진풍경을 연출하고 있으니. 예년보다 조금은 쌀쌀한 날씨 탓인지 버스에 오른 여행객들의 몸짓은 움츠러들었지만, 여행의 기대로 얼굴은 봄꽃처럼 환하게 밝았다. 3시간 남짓 걸려 도착한 경주는 조금은 흐린 날씨. 하지만 여행객들은 일제히 탄성을 질러 댄다. 경주 도로 곳곳에 벚꽃이 움을 틀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제 4월이면 벚꽃이 만발하리라. 제일 먼저 방문한 곳은 신라역사과학관이다. 이곳은 경주를 여행하기 전 꼭 한번쯤 들러 볼만한 곳이다. 이곳에서는 특히 석굴암과 첨성대를 모형을 통해 석굴암에 감추어진 조형의 원리와 과학적 원리를 통해 석굴암을 보존한 선현의 지혜를 엿볼 수 있으며, 첨성대의 신비스런 특징과 원리를 자세히 설명한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들러본 여행지가 경주다. 그리고 대부분이 간직한 경주의 추억은 수십 년 전 수학여행이 전부였을 것이다. 수학여행을 통해 이리저리 쓸려 다니며 대충 훑어봤던 불국사 그리고 첨성대, 포석정 등을 다시 만나보면 어떨 것인가. 이제는 대충이 아니라, 그 내면을 보고 느끼고 음미하고 싶은 것이다. 어느 절이든 들어가야 하는 입구에는 반드시 일주문(一柱門)이 있다. 그런데 왜 일주문일까.
문화해설사 김미경씨는 “두 개의 기둥으로 이루어졌으니 어쩌면 이주문(二柱門)이 맞지요. 사찰 금당(金堂)에 안치된 부처의 경지를 향하여 나아가는 수행자는 먼저 지극한 일심으로 부처나 진리를 생각하며 이 문을 통과해야 한다는 뜻이 담겨 있어 이주문이 아닌 일주문이라고 하는 것입니다.”라고 설명한다. 탐방객들은 일제히 ‘아하!’를 외쳤다. 하나의 깨달음을 가슴에 품고 불국사(佛國寺)를 맞이한다. ‘부처님의 나라’가 바로 불국사다. 불국사로 오르는 돌계단의 명칭은 청운교, 백운교다. 교(橋)란 다리가 아니던가. 왜 계단이 아닌 다리라고 했을까. 또 해설사의 설명이 이어진다. “교라고 한 것은 부처님 나라와 속세의 경계를 넘는 다는 의미지요.”라고 말하자 의문이 씻은 듯 해소된다. 자하문(紫霞門)이라고 쓰여 있는 간판아래 작은 수로가 보인다. 원래 불국사 정문 아래가 커다란 연못이었다고 한다. 수로에서 연못으로 폭포처럼 물이 쏟아져 내리면 물안개가 번지고 그로 인해 어리는 일곱 색깔 무지개가 환상처럼 펼쳐진다는 상상을 하자 1000년의 숨결이 훅 번져 오는 듯 했다. 그래서 자하문(紫霞門)이라고 했다니 그 멋스러움에 찬탄을 금치 못한다. 알고보고 느끼는 불국사는 그 감칠맛이 더해만 간다.



작년 이맘때쯤 경주에서 가장 눈길을 끌던 것은 불국사의 상징과도 같던 다보탑 해체와 수리 작업이었다. 8세기경 세워진 다보탑은 그동안 풍화와 누수로 심각한 병을 앓고 있다는 진단을 받아왔고 더 이상 방치했다가는 붕괴 위험에 처하기 때문에 전면 수리에 돌입했던 것. 이제 수리와 보수작업을 마치고 다시 우리 앞에 그 현란한 모습을 보여주니 반갑기 그지없다. 석탑에 머무는 햇살과 대나무 숲을 헤치고 나와 핀 백목련의 자태가 어우러진 풍광이 그만이다. 풍경에 그만 넋을 놓고 있다 일행들이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든다.
“뭐하세요? 빨리 안 오고.”




첨성대로 가는 길은 유려하고 시원하다. 커다란 오릉을 배경으로 유채꽃을 조성해 석빙고로 가는 길이 한층 멋스러워졌다. 넓은 풀밭에는 각양각색의 연(鳶)들이 주말의 하늘을 수놓고, 아이들은 부모와 한가하게 유구한 역사의 중심에서 또 다른 삶을 향유하고 있는 것이다. 신라 27대 여왕이라는 의미일까. 27단 돌로 쌓아 올린 첨성대를 대낮에 만났다. 굳이 대낮이라고 표현하는 이유는 작년 이맘때 본 첨성대는 깊은 밤에 만났기 때문이었다. 그때 조명불빛 아래 드러난 첨성대의 몸체는 지금보다는 훨씬 운치 있고 감동적이었기 때문이다. 첨성대를 거쳐 석빙고로 그리고 계림과 오릉의 특별한 추억을 살리려면 햇살이 가신 늦은 오후부터 달빛이 은은한 밤도 제격이란 생각이 든다. 그 색다른 맛을 남겨둔 채, 바삐 청주로 돌아와야만 하는 아쉬움을 하나 둘 켜지는 가로등 불빛에 움이 트고 있는 벚나무를 보며 애써 마음을 달래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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