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차로여행

독도, 온 몸이 파랗게 물들다 - 울릉도, 독도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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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싶었다. 푸른 동해 바다위에 우뚝 솟은 독도를 내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민족의 영산 백두산이 염원이라면, 동쪽 바다 망망대해 한가운데서 홀로 솟아 있는 독도는 그리움의 대상이었다. 소설가 김훈은 “닿을 수 없고, 품을 수 없으며 만져지지 않는 것들과 불러지지 않는 것들을 사랑”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내 가슴속에 오랜 동안 품었던 독도를 다가가서 만져볼 것이다. 그리고 다 함께 ‘독도야, 내 사랑!’이라고 시원하게 소리치고 올 것이다.
신라 이사부 시절부터 현재의 대한민국까지. 그리고 미래의 자손에게까지 이어져야 할 삶의 터전이 독도다. 그곳은 명백하게 대한민국의 역사이고 재산이다. 이번 독도여행에는 특별한 손님들이 함께 했다. 청주꽃동네 식구들이다. 총 12명의 지체장애자 중 비교적 행동이 자유로운 4명과 함께 독도로 출발했다.




독도의 길목, 울릉도


새벽 3시, 무심천대교를 넘어오는데 가로등 불빛이 강물에 흐르고 있었다. 어둠속에서도 묵묵히 흐르는 강물은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독도로 떠나는 새벽, 바다로 흐르는 물을 보면서 더딘 걸음이지만 언젠가는 저들도 바다로 흘러들어 결국 독도를 만나지 않을까 상상했다.
묵호에 도착한 시간은 6시경이다. 7시30분 씨플라워호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묵호에서 울릉도까지 4시간 정도 소요됐다. 맑은 날씨 덕분에 배 멀미약이 필요 없을 정도로 편안한 항해였다. 울릉도 도동항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11시30분. 도동항은 밀려드는 관광객에 비해 터무니없이 작았다. 오전부터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육지 손님들로 북적거리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숙소를 안내하는 가이드들은 불친절하기 그지없었다. 여기저기서 관광객과 언성을 높이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었다. 경주에서 왔다는 한 관광객은 “이곳 울릉도는 인심이 사납다. 독도의 길목에 있는 울릉도는 ‘친절’을 배워야 한다.”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손님들이 불친절을 항의해도 꿈쩍도 안한다. ‘섬에 들어왔으니 어디로 가겠느냐?’는 배짱이다. 울릉도에서 여행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울릉도를 대표한다는 책임 의식을 좀 더 키워야 할 것 같다.


점심 식사 후, 도동항부터 시작되는 해안산책로는 굽이굽이 절경이다. 산책로 옆 바다는 온통 비취색으로 바닥이 보일 정도로 맑다. 투명한 바다의 밑바닥에는 팔뚝만한 물고기들이 유유히 헤엄치는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다. 그래서 울릉도를 울창한 원시림이 숲을 이룬 ‘바다 위의 언덕 같은 섬’이라고 했던가. 사람으로 상한 마음을 알았는지, 울릉도의 풍광은 ‘괜찮다’며 눈과 마음을 맑게 씻어주고 있었다.




누구든 가슴이 뜨거워지는 ‘독도’

짧은 해안산책을 마치고 돌아오니 1시30분이 되었다. 독도로 가는 오션플라워호가 곧 출항을 준비하고 있었다. 3시간의 항해는 지루했지만, 곧 눈앞에 펼쳐질 독도의 모습을 상상하니 내내 가슴이 떨려왔다. ‘창밖으로 독도가 보인다.’는 안내방송이 나오자, 관광객들은 일제히 창밖으로 눈길을 돌렸다. 눈길에 앞서 마음 길은 벌써 독도에 가 있었던 것이다. 물방울에 얼룩진 창문 너머로 독도는 희미하게 제 모습을 드러냈다. 독도는 그리 쉽게 입안할 수가 없는 곳이다. 험한 뱃길은 제쳐 놓고 너울파도가 1.5∼2m만 돼도 방파제가 없는 접안시설에 배를 대기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오션플라워호 승무원은 “이런 날은 1년에 30여일 밖에 없는 ‘장판’이다.”라며 빙긋 웃는다. 이곳 사람들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날씨에 파도가 잔잔한 날’을 흔히 ‘장판’이라고 표현한다. 선창으로 보이는 독도의 모습이 점점 또렷해졌다. 입도(入島)를 위해 동도에 접근하자, 제복을 입은 경비대원들이 경례로 방문객을 환영했다. 그들 뒤로 드러난 독도의 위용이 반가웠다. 하늘에는 오색종이조각들처럼 괭이갈매기들로 가득했다. 아득한 벼랑 끝에 펄럭이는 태극기가 뭉클하다.
독도에 서면, 누구든 가슴이 뜨거워진다.




양순씨, 독도에 태극기를 꽂다

오래된 고성(古城)처럼 초록의 이끼로 뒤덮였다. 웅혼한 섬 독도는 바닷물로 금방 온 몸을 헹군 것처럼 푸른 기운이 감돌았다. 수정처럼 깨끗한 바닷물과 환상적인 독도의 비경이 내 눈앞에 펼쳐지니, 좀처럼 믿겨지지 않았다. 사람들은 쉴 새 없이 셔터를 눌렀다. 셔터소리와 괭이갈매기 울음소리가 뒤섞여 묘한 화음을 이루고 있었다. 사진으로만 보았던 얼굴바위가 눈에 들어오니 조금은 생경하다. 머리띠를 질끈 동여맨 전사의 형상처럼 멀리 바다건너 일본을 노려보고 있는 듯 했다.



청주 꽃동네에서 온 정신지체장애인 양순씨가 “바다다, 바다!”라고 어눌하게 소리치자, 청나봉사회 임은경(47)봉사자는 “양순이는 바다를 좋아해요. 아마도 이렇게 멀고 외로운 바다는 처음일 것”이라고 했다. 청주 꽃동네 식구들은 독도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촬영했다. 손에는 울릉도에서 구입한 태극기가 힘차게 펄럭이고 있었다. 무엇이 좋은지 연신 입을 다물 줄 모르는 양순씨를 일행은 놀리듯 말했다.
“어때요? 이 사진 제목. ‘양순씨 독도에 오다’ 근사하죠?”라고 말하자, 봉사회원은 “아니야, ‘양순이 독도에 태극기를 꽂다!’가 더 멋지지.”라고 말한다. 정말 그 말을 들었는지, 양순씨가 바위틈에 태극기를 꽂고 있었다. 그녀의 뒤편으로 아치 모양의 독립문바위가 굳건히 서 있었다.




짧은 첫 만남, 안녕 독도!

접안 시간은 약 20분 정도. 관광객을 태우고 온 오션플라워호가 길게 고동을 울리자, 방문객들은 못내 아쉬운 듯 느릿느릿 배에 오른다. 심지어는 혈육과 헤어지는 것처럼 독도의 바위를 보듬고, 바람을 들이마시며 오랫동안 독도를 눈에 담고 있었다. 이렇듯, 독도는 저마다의 섬이며, 저마다의 고향인 것이다.
2006년 영국인 줄리안 라이언 기자는 ‘험난한 바위섬’이란 제목의 독도탐방기에 “황량하고 적막한 곳이지만, 그곳은 한국 어민의 삶의 터전이었다.”라고 썼다. 이미 오래전부터 우리의 땅이었고, 우리 삶의 터전이다. 더 이상 분쟁지역이 아님을 새삼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눈에서는 독도가 점점 멀어져 갔지만, 도종환 시인의 ‘독도’가 다시 가슴에서 피어올랐다.

‘백두산 버금가는 가슴으로 용솟음치며
이 나라 역사와 함께 해온 섬
홀로 맨 끝에 선다는 것이 얼마나 가슴 시린 일인지
고고하게 사는 일이 얼마나 눈물겨운 일인지 알게 하는 섬’




# ‘울릉도, 독도’ 여행정보
1)운항시간
-묵호에서 울릉 썬플라워2호 ( 11시30분 출발), 울릉에서 묵호(오전7시, 오후4시 출발) / 포항에서 울릉 썬플라워호(9시40분 출발) 울릉에서 포항(오후 2시20분 출발)
-울릉에서 독도 씨플라워호 (오후 12시50분 출발) / 운항시간은 계절마다 수시로 바뀐다. 미리 문의하는 것이 좋다 / 대아고속해운 1544-5117
2)기타 정보
-특별한 사유가 있는 경우, 독도관리사무소(054-790-6646)에 사전허가를 얻으면 몇 시간 정도 체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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