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삶의 풍경이 머무는 곳
[수필] 아버지의 보물 상자
'글. 이정연'

일 년에 한두 번 벌초나 묘사 때 고향에 갈 때마다 비어있는 시골집에 가 본다. 민속품 수집가가 와서 방문마저 떼어 가버린 시골집에 초겨울 골바람만 빈방에 차가웠다. 아버지가 쓰시던 사랑방으로 들어가 보았다. 평생 살았던 내집을 두고 어디로 이사 가느냐며 사랑방 문고리를 잡고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못 간다고 하며 완강하시던 아버지도 임신한 누렁이를 마지막으로 차에 싣자 마지못해 타셨다. 겨우 방 두 칸을 마련해 놓고 이사를 서두르는 자신이 너무도 초라해서 눈물조차 나오지 않았다. 그보다는 이제부터 폐암 투병 중인 어머니와 치매에 걸린 아버지를 모시고 가서 잘 지낼 수 있을까 너무도 걱정스러웠다. 이삿짐 차가 일으킨 회오리 먼지 속으로 고향 집이 점점 멀어졌다. 마치 꿈처럼 한순간에 모두 일어나 버린 일들이 벽면 가득 영화처럼 펼쳐졌다.





아직도 희미하게 느껴지는 아버지 냄새를 좇아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천장 아래 벽면과 다를 바 없이 누렇게 퇴색한 상자 같은 게 매달려 있는 게 보였다. 빈 상자에 창호지를 겹겹이 발라 합판처럼 딱딱해진 상자였다. 손을 넣어보니 한 움큼의 쥐똥과 함께 종이 뭉치가 만져졌다. 문지방 아래 내려놓고 한 켜나 쌓인 먼저부터 털었다. 바랜 할머니 사진, 머리가 푸시시 한 아버지의 도민증과 박꽃처럼 하얀 사진이 붙은 어머니의 도민증, 재산세 영수증, 단기 4284년 4월 23일 자로 발행된 육군 총참모장이 아버지 앞으로 보낸 출두요구서와 그 이듬해 보낸 징용 영장, 모서리가 낡아 떨어진 문서들이 이 집의 역사처럼 먼지 속에 와르르 쏟아졌다. 그중에서 비닐에 싸여있는 것도 있어 풀어보니 큰언니 통신부와 졸업증명서 그리고 내가 고등학교 때 보낸 편지 한 통이 들어있었다. 별 대단한 것도 아니지만 아버지로선 더없이 중요한 것들인 모양이었다. 그런 상자를 하도 경황없이 이사하느라 그만 잊고 오신 것이다.
그해 여름이 생각났다. 냉해로 학교 등록금 일부를 면제받을 확인서를 받느라 시골에 다녀온 직후였다. 당신께서 손수 읽을 수 없으리라는 걸 잘 알면서도 냉해로 한 해 농사를 다 망치고 워낙 실의에 빠져 계신 부모님이 못내 걱정되었던 모양이었다. 그 확인서로 등록금이 면제되었으니 상심하지 마시고 조금만 더 참고 견디면 곧 졸업하고 졸업하면 금방 취직해서 가계를 돕겠다는 요지의 내용이었다. 마치 생소한 글씨가 내 편지 같지 않았다. 편지를 받으신 아버지는 봉투를 뜯지도 못하신 채로 바로 앞집 동장님께 달려갔을 것이다. 동장님이 읽어주신 편지를 들으시고는 앞날에 대한 암담함을 애써 다독이며 터벅터벅 집으로 돌아오셨을 아버지! 그 편지 내용을 어머니께 일러주기는 하셨을까. 아무 희망이 없던 첩첩 산골짜기, 한 해 겨우 먹고살 만한 농사를 송두리째 망치고 난 뒤의 참담한 기분이 내 편지로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긴 하셨을까. 그 당시에는 무슨 말씀을 하셨을 것 같은데 나는 도무지 기억이 없다.
아버지는 왜 유독 그것을 비닐에 싸 두셨던 것일까. 자식들에게 마음만큼 해 줄 수 없는 미안함 때문에 딸을 보듬듯 비닐에 싸두고 싶은 아버지로서의 애틋한 심정이셨을까. 편지는 손때가 묻고 접은 부문이 닳은 거로 봐서 아버지가 여러 번 꺼내서 다시 보신 모양이었다. 딸의 편지 하나 읽을 수 없는 당신이 얼마나 서글프셨을 것인가. 아버지 성격에 그 편지를 다시 들고 가서 읽어 달라는 소리는 아마 하지 못하셨을 것이다. 다만 동장님이 읽어 주신 기억에 의존하여 몇 번이고 다시 보면서 아무것도 추수할 게 없는 그해 가을을 견디셨을 것이다.
참 놀라운 것은 큰언니의 통신부가 1학년 때부터 고스란히 다 보관되어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것도 내 것이나 둘째 언니 것처럼 어머니의 반다지에서 나온 게 아니라 아버지의 그 상자에서 나왔다는 게 놀라웠다. 아버지는 늘 엄격했을 뿐 잔정이 별로 많지 않은 분이셨다. 특히 막내인 나 말고는 오빠 큰언니 작은언니 그 누구에게도 냉정할 만큼 엄격한 분이셨는데 새삼스러운 일이었다. 맏딸인 큰언니는 아버지께는 집안의 기둥이나 다를 바 없었을 것이다.





빈농의 육 남매 중 셋째 아들로 태어나 서로가 가난을 숨길 수밖에 없으셨던 시절, 몸이 불편하신 아버지가 자식들을 위해 해 줄 수 있는 것이라곤 그저 잘 되기를 바라는 기도뿐이었을 것이다. 그나마 정신이 온전하셨을 때 아버지는 당신이 자식들을 위해 해 주실 게 아무것도 없는 슬픔을 견디지 못한 나머지, 라면상자에 딸들에게 예쁜 옷을 입혀주듯 겹겹이 창호지를 바르고, 딸들의 지난 흔적이나마 소중하게 간직하고 싶으셨을 것이다. 아랫목에 앉아서 바라보면 잘 보일 천장 아래 그것들을 매달아 놓고, 삶이 고단할 때마다 쳐다보고 마치 딸들이 당신이 지은 따뜻한 방에서 오글오글 놀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듯 위안으로 삼으셨을 것이다. 아버지께 그것은 그저 보잘것없는 종이상자가 아니라 아버지로서 딸들에 갖는 애정과 기대가 담긴 보물 상자였을 것이다.

EDITOR 편집팀
이정연 작가
이메일 : manjuyeon1@hanmail.net
2003년 4월 수필문학 등단.
2004년 중부매일신문 세정유감코너 짧은 수필 집필 (1월-4월까지)
2004년 여름호 수필 ‘망월사에서’ 에세이문학 등단
2004년 영남수필 회원 –2019년
2006년~2008년 에세이문학 올해의 수필 20선 추천
에세이문학 수필과 비평 에세이21 수필사랑 대구문협지 다수 기고
2011년 - 현재 대구 달서구 현대힐공인중개사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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