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문화예술 소통과 공감의 통로 [ㅊ·ㅂ]
모두의 공간에 작은 도시정원을 꿈꾸며
'모노팟 식물문화연구소 홍덕은 대표'

건물 외벽에는 선인장이 그려져 있다. 모노팟으로 시작하여 지금은 식물문화연구소, 자연미술학교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이 공간은 식물을 매개로 한 다양한 문화예술교육을 진행한다. 이 공간의 운영자인 흥덕은 대표는 현재 청주대학교에서 조경도시학과 겸임 교수로도 활동하고 있다. 젊고 화사한 내면 뒤에 만만찮은 내공을 품고 있는 홍대표의 공간에 들어서자 흥미로운 식물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 식물의 이름을 물어볼까 싶어 궁금증을 참고 있자니 홍 대표가 먼저 손을 이끌어 정원 탐방을 나선다. 그리고 들어선 회색의 공간 안에 멋스러운 가구들과 초록 식물들이 가득하다. 그녀만의 아늑한 정원에 비로소 들어온 것만 같은 느낌. 그녀의 취향이 잔뜩 묻어나는 이 공간에서, 흙을 만지고 정원을 가꾸는 그녀의 처음, 그 시작을 물어보았다.

모노팟 식물문화연구소 홍덕은 대표


Q. 조경이라는 분야에 어떻게 진입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처음 진입할 때는 부모님의 영향이 컸죠. 꽤 오래전부터 지금까지 계속 조경 분야에서 일하고 계시니까요. 어릴 때는 사실 조경이 싫었어요. 매번 현장에서 일하시는 부모님의 옷차림새가 말끔하지 못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데, 어린 마음에는 그게 그렇게 좋아 보이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나중에 어른이 되면 부모님과는 다른 결로 멋지고 세련된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늘 가지고 있었어요. 그렇게 생각한 일이 건축 디자인 설계였어요. 그런데 부모님께서 디자인 설계라면 건축이 아니더라도, 조경에도 설계 디자인 분야가 있다며, 조경을 해보라고 권유하셨어요. 당시를 회상하면 그래도 부모님 설득에 못 이겨 어느 정도는 울며 겨자 먹기로 조경 전공을 선택한 거예요.
그런데 의외로 이 분야가 재미있더라고요. 당시 학교를 다닐 때만 해도 학문으로써 조경학, 공간 설계와 실무에 대한 것들을 주로 배웠었지만 사람이 누리는 공간을 다룬다는 것에 있어서 흥미를 느꼈던 것 같아요. 조경의 주된 재료가 되는 ‘식물’ 재료에 깊게 매료가 된 것은 오히려 학교를 졸업한 뒤의 일이구요. 실제 식물을 다루는 일과 전공으로서의 학문은 달라서 오히려 원예 쪽에서 할법한 일들이 더 많았지만, 흙을 만지고 생명을 건드린다는 느낌이 되게 좋았어요. 내가 만질 때마다 달라져 있고 그로 인해 이 생명과 계속해서 교감한다는 그 느낌을 끊지 못한 것이죠. 그렇게 이어진 활동이 지금까지 이어져 왔으니 오래되었네요.




Q. 모노팟이라는 공간이 카페에서 문화예술교육 현장으로 바뀌는 과정의 이야기도 궁금한데요.
지금은 보편화된 말이지만 제가 처음 청주에서 ‘가드닝’이라는 말을 사용했을 때, 주변에서 많이 낯설어하셨어요. 돌아보면 너무 앞서 나가지 않았나 생각이 들 정도로요. 하지만 그때의 저는 어렸고 겁이 없었고 의욕이 앞서있을 시기라 무엇이라도 해야 했어요. 그때만 해도 문화예술교육은 잘 알지 못할 때였고, 식물과 함께 하는 삶의 이로움을 많은 이가 경험하길 바라며 대중에게 서비스라는 측면으로 다가가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공간의 1층에 규모가 작은 식물 갤러리를 만들고 사람들을 만났죠. 그런데 대중이 받아들이는 ‘가드닝’을 전제로 하는 이 문화와 제가 생각하는 것과 차이가 제법 있었어요. 혼자 고전을 많이 했죠. 그러니 주변에서 공간이 예쁘니까 카페를 같이 해보라고 권하더라고요. 당시 2015년 즈음의 청주는 카페 붐이 불기 시작한 시기였거든요. 감사하게도 식물카페라는 주제로 꽤 유명해져서 많은 시민이 이 공간을 찾아주셨어요. ‘모노팟’이라고 하면 아직도 카페로 알고 계신 분들이 많은 것은 이 때문이에요. 그런데 많은 사람이 올수록 점점 주객이 전도된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어요. 저는 식물과 관련된 일로 사람들과 만나고 싶었는데, 카페로서의 비중이 점점 커지고 있었으니까요. 그리고 바로 2017년 12월 31일, 카페 운영을 그만두었어요. 약 2년간의 여정을 마친 셈이죠.
지금도 청주에서 모노팟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꽤 많다. 카페에서 문화예술교육 공간으로 바뀐 지 5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카페로 기억하고 오는 손님들이 있을 정도이다. 하지만 처음 서비스로서 다가가야 한다는 홍대표의 생각은 점차 문화예술교육으로 기울어져 갔다. 처음 갤러리에서 본인의 생각을 표현했던 것을 더욱 적극적으로 사람들과 소통하겠다는 의지인 것. 그렇다면 우리는 ‘가드닝’을 주제로 한 문화예술교육의 어떤 장면을 떠올릴 수 있을까? 단순히 식물을 심는 것? 전형적이지 않아서 다소 생소했던 ‘가드닝’을 문화예술교육으로 녹여낸 이유에 대해 홍대표의 생각을 물어보았다.




Q. 식물과 함께하는 이곳의 문화예술교육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처음 문화예술교육 분야에 ‘가드닝’을 들고 뛰어 들어왔을 때, 주변에서 이미 활동하고 계시는 분들은 거의 미술, 음악 예술 분야가 대부분이셨어요. 저와 비슷한 사람은 없었죠. 하지만 문화라는 것은 사람이 살고있는 이 세계를 아우르는 포괄적인 말이잖아요. 그래서 ‘가드닝’을 그 자체로서 예술로 풀 수 있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 고민했었어요. 보통 식물이라는 것은 예술가들에게 소재로서 많이 활용됐는데, 이 아름다운 식물을 심고 가꾸는 이 활동은 소소하지만 일상에서 계속되고 있는 문화로서 움직임이 있거든요. 충분히 문화예술 교육적인 요소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죠.
그래서 우선 처음에는 설치미술을 하시는 예술가나 사진, 평면 미술 등을 다루는 시각 작가들과 같이 교육해보자고 마음을 먹고 했던 활동이 ‘자연미술학교’의 시작이었어요. 아이들과 직접 정원으로 나가서 직접 심고 가꾼 식물을 그려보며, 모든 활동들이 창작의 주제가 되었죠. 온전하게 아이들이 직접 경험한 것을 예술 활동으로 풀어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평소라면 길을 가다가 ‘이건 어떤 나무고 무슨 꽃이구나’ 그렇게 알면 끝나는 일이었을 테지만, 여기서는 ‘이 꽃이 왜 이렇게 생겼는지, 어떤 계절에만 볼 수 있는 풍경인지, 어떤 열매를 맺는지’ 등, 일련의 사이클을 인식하면서 단순히 소재로서의 식물만 보게 되는 것이 아니라 직접 정원을 짓는 주체로써 개입하며 인간과 동반하는 식물이라는 것을 인식하게 되는 거예요.
우리 주위를 둘러싼 식물이라는 거대하고도 강인한 생명체에 대한 소중함과 경외의 마음을 담아, 그것을 아이들이 몸과 마음으로 경험하게 하는 이 문화예술교육은 어쩌면 아이들이 가장 먼저 접해야 하는 경험은 아니었을지 생각해본다. 아름다운 꽃을 멋지게 그려내는 것에 앞서 그 대상을 이해하고 인식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얼핏 글을 모르는 아이가 책을 먼저 읽으려고 하는 것과 같은 것은 아닐까. 그래서 아이들은 처음 이곳에 오면 처음에는 부모 손에 이끌려 와 스마트폰을 보고 있어도 그 특유의 친화력으로 삼삼오오 실내외를 누비며 뛰어논다고 한다. 실내의 멋진 공간과 더불어 주변에는 크고 작은 정원들이 아이들을 맞이하고 있는데, 아이들은 그곳에서 본인의 꽃과 나무를 발견하는 재미를 얻는다. 그래서 이 정원은 얼핏 중구난방으로 보일 수도 있다. 꽃이 듬성듬성 나 있는 곳과 빽빽한 곳이 이곳저곳에 있고 오와 열을 맞추기보다는 들쑥날쑥하게 심어진 것도 다양한 아이들이 다녀갔기 때문이다. 본인의 나무를 찾기 위해서 자투리 나무로 울타리를 쳐둔 곳도 있다. 햇살 좋은 정원에서 홍 대표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이곳에서 웃고 뛰놀았던 아이들이 부러워진다.




Q. 성인들을 대상으로도 재미있는 프로젝트를 꾸준히 이어오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땅이 없고 또 정원이 없어서 식물을 심지 못한다고 하잖아요. 처음에 이곳에서 저와 같은 결을 가진 분들을 만나 커뮤니티를 만들고 ‘모두의 정원’이라는 프로젝트를 할 때도 다들 처음에는 그런 반응이셨어요. 하지만 환경이 안 되어도 어떻게든 각자의 공간에서 식물을 가꿀 수 있는 방안을 찾아보자고 각 멤버의 공간을 찾아가 보는 활동도 했었거든요. 어디에 화분을 두고 공간을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 의견을 주면서, 이 작은 아파트에 나만의 정원을 어떻게 만들면 좋을지 같이 고민하고 실행하는 재미있는 작업이었어요. 저는 그저 이렇게 풍요롭고 행복한 정원 활동을 하는 사람이 늘어났으면 하는 바람으로 시작했던 건데, 멤버들의 반응이 뜨거워서 팀을 이끄는 사람으로서 매우 즐거웠던 기억이 있어요. 그리고 그 인연으로 김기성 감독님의 ‘봉명주공’에도 같이 출연하게 되었고요. 저희는 우리 지역의 다양한 공간을 다니면서 어떤 나무와 꽃이 있는지 살피는 활동도 했었는데, 봉명주공에 그렇게 특이하고 예쁜 식물들이 많았어요. 단지 내 크고 아름다운 나무들이 곧 사라질 거라는 사실에 안타까워하며 식물산책을 했었죠. 저희가 자주 가니까 주민들도 같이 인사하며 이야기 나눠주시고 곧 재개발되니 뽑아가라는 분들도 많으셨고요.
인터뷰 중 커피를 마시는 홍대표의 손을 바라보았다. 그 시선을 느꼈는지 ‘제 손은 언제나 거칠어요. 손톱도 못 길러요. 흙이 많이 들어가거든요.’라고 말한다. 그런데 그 손이 우아하게 느껴졌다. 말하는 톤도 고요하고 아늑한 것이 사람을 묘하게 편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청주 토박이지만 흔히 말하는 정통으로 예술을 하는 사람은 아니어서 문화예술을 하는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일도 처음에는 어색했다고 말한다. ‘식물이 무기예요. 사람들과 같이 주변의 꽃이나 나무, 그 공간에 있는 화분 이야기를 하면 금세 분위기가 풀어지거든요.’ 하지만 식물을 만지는 사람 그 특유의 온화함도 한몫했으리라 생각한다. 화분을 많이 죽이는 식물 킬러로서, 공간을 초록의 힘으로 채우는 예술가의 아우라는 결코 내가 도달할 수 없으리라는 느낌은 본능이다. 아마도 본인은 식물을 잘 키우지 못하는 성향이라는 필자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도 많으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러한 사람들에게 홍 대표는 꽤나 솔깃하고 희망적인 메시지를 던져주었다.
Q. 일상에서 가드닝을 실천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처음 시작하려는 사람들에게 응원의 한마디를 해주신다면요.
가드닝은 단순히 정원을 가꾸는 것을 넘어 우리의 일상을 가꾼다는 느낌이 더욱 큰 활동이에요. 그래서 저는 많은 분에게 화분이라도 꼭 하나 키우시라고 추천해요. 죽여도 식물은 다시 흙으로 돌아가 또 순환하거든요. 그러니 죽이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지 말고 또 키우라고 하죠. 식물도 키우는 사람에게 맞는 게 있어요. 공간에 맞는 것도 있고요. 이 상성이 맞는 식물을 찾아보는 활동을 계속해보는 거예요. 그렇게 본인만의 정원을 갖는 거예요. 우리는 기존의 전원주택의 고요한 정원이 아닌 우리만의 ‘도시정원’을 가질 수 있어요. ‘도시정원’은 제 개인전의 한 꼭지로 풀어냈던 소재이기도 한데, 도시환경 속에서 자연으로 대변되는 공간이기도 하죠. 사람과 자연이 협력해서 만들 수 있는 공간이고요. 인간과 식물이 함께 우리가 사는 이 공간에 존재하는 정원이에요. 그래서 차 소리도 나고, 크기나 모양 환경도 제각각이죠. 누구나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누구라도 꼭 가져야 하는 게 각자의 ‘도시정원’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희는 교육 프로그램이 끝나면 마지막에 아이들 본인의 공간에서 직접 길러볼 수 있게끔 어렵지 않은 식물을 선물로 줘요. 그러면 3개월이 지나서 연락이 와요. ‘선생님, 꽃폈어요!’
식물문화연구소이자 자연미술학교인 이 공간의 입구에는 정원이 있다. 그리고 그 정원은 오랜 시간 이곳에서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을 했던 아이들이 심어놓은 꽃과 나무들이 있다. 그리고 그다음 해 또 새로운 아이들이 들어와 이 정원을 물려받는다. 선배들이 정성스럽게 가꾸어 놓은 이 정원을.

EDITOR AE류정미
충북문화재단 충북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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