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문화예술 소통과 공감의 통로 [ㅊ·ㅂ]
머무르고 싶은 공간의 발견, 하소생활문화센터 산책
'삶을 풍요롭고 아름답게, 일상을 예술처럼'

취미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았다. 어릴 적 교실 뒤편에 나를 소개하는 문구와 함께 적었던 것 같기도 하고, 대학교 동아리 응시 원서에 무어라 써넣은 기억도 얼핏 있다. 그런데 일에 치여 밥벌이를 걱정할 나이에 다시 취미를 생각해 보라니 선뜻 떠오르지 않는다. ‘독서, 요리, 영화, 게임’ 전형적이거나 상투적인 몇몇 활동이 떠오르는데 이것이 마치 나를 대변하는 한 키워드가 될 것만 같아 적기가 망설여진다. 실제 그렇게 독서를 많이 하지 않는데, 단순히 있어 보이고 싶어 적는 욕구를 스스로에게 들켰다는 민망함도 물론 있다. 이 글은 읽는 여러분은 어떤 취미를 가졌는지 궁금하다. 필자처럼 일에 치여 그저 살아내고만 있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 물어보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이번 하소생활문화센터 산책의 취재를 마치고 나와 필자가 자신에게 던진 물음이다. 나는 어떤 문화가 있는 삶을 살고 있는가.

하소생활문화센터 산책 3층 산책도서관 어린이자료실 ⓒGIEONGNOK(사진출처)



생활과 문화는 알지만 ‘생활문화센터’가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는 사람을 위해
이 공간을 둘러보기에 앞서 우리는 ‘생활문화’란 무엇이고, 이를 실현하는 ‘생활문화센터’가 어떤 일을 하는 곳인지 알 필요가 있다. 그 이해를 돕기 위해 예술경영지원센터 누리집에 있는 ‘생활문화센터 공간 조성 및 운영안내서(2015)’의 내용을 옮겨 본다.
‘삶의 양식으로서 생활문화란 지역주민이 문화적 욕구 충족을 위하여 자발적이거나 일상적으로 참여하여 행하는 유형?무형의 문화적 활동을 말한다. 생활문화센터는 지역주민의 문화 감수성과 문화적 역량을 키우는 장으로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문화예술 활동을 지역사회로 연결하고 나누며 지역의 생활문화를 만들어가는 커뮤니티 공간이다.'이 정의를 읽고 나니 생활문화센터라는 공간이 단순히 문화센터처럼 프로그램만 운영하는 시설은 아니겠다는 짐작을 하게 된다. 그리고 조금 더 안내서를 읽어보면 ‘문화 활동을 위한 공간 제공, 동호회 양성 프로그램 및 교류 프로그램 지원, 동호회-지역사회 연계 활동 지원을 통해 지역의 생활문화를 만들어가는 곳’이라는 설명이 나온다. 생활문화의 거점으로 또 지역주민의 소통 공간으로써 활용되고 있는 것. 그렇기에 이 공간은 지역주민 모두에게 열린 공간으로 공간과 프로그램을 활용한 다양한 기회를 제공하고, 이는 곧 지역주민이 생활문화의 주체가 되는 ‘문화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공간으로서 역할을 하는 것이다.
지역문화진흥원에서 운영하는 생활문화 온라인 플랫폼 ‘문득’에서 살펴보면 2014년부터 생겨난 전국의 생활문화센터는 2022년 1월 기준으로 173개이다. 시기별로 살펴보면 2016년과 2017년이 각각 33개소로 가장 많은 센터가 오픈하였고, 가장 최근인 2022년에도 무려 5개소가 신설되었다. 충북에는 현재 6개의 생활문화센터가 운영 중인데 각각 청주, 충주, 음성, 괴산, 단양, 제천에 위치한다. 이번 호에서는 그중 가장 후발주자인 제천시 하소동의 하소 생활문화센터 ‘산책’을 방문하였다.
마치 산책하듯 이 공간에 찾아왔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하소생활문화센터는 ‘산책’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진행하는 프로그램이나 공간마다 ‘산책’이라는 키워드를 활용하고 있다. 지하 1층, 지상 4층의 규모로 지어진 건물에는 특색 있는 공간들이 속속 자리 잡고 있는데 그중 처음인 1층은 ‘산책광장’으로 불리는 야외광장이다. 어느 공간이든 감탄을 자아내는 포인트는 있기 마련. 하소생활문화센터 산책의 첫 포인트는 건물 입구에서부터 나타난다. 독특한 필로티 구조로 되어 있는 이곳은 로비와 광장 사이에 전면 개폐형 폴딩도어를 설치하여 공간 활용의 확장성을 가져왔다. 또한 야외이지만 필로티이기에 비를 막아주고 요즘처럼 더운 여름에도 언제나 서늘한 그늘을 선물하는 곳이라 연중행사가 끊이지 않는다. 중앙에는 대형 나무 구조물이 있어 회벽 건물의 삭막한 느낌을 지워주고, 야외 공연이 가능한 충분한 공간이 있어 활용도가 높다.
2층에는 센터 사무실과 ‘생활산책 1~3, 음악산책, 예술산책 A/B’의 이름으로 불리는 총 6개의 공간이 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일반 모임이나 연습 및 생활문화 관련 프로그램 운영 공간으로 쓰이며, 제천 시민 누구나 생활문화센터의 목적에 부합하는 활동이라면 대여도 가능하다. 가장 비싼 공간이 한 시간에 5,000원의 대여료를 받는다고 하니, 이 또한 지역주민이라면 누려야 할 혜택 가운데 하나가 아닐까 생각한다.

하소문화센터 산택의 옥상 산책정원 ⓒGIEONGNOK(사진출처)



3층과 4층에는 산책도서관이 자리 잡고 있다. 3층은 어린이자료실이고 4층은 일반자료실로 활용되고 있다. 취재 당시는 방학 시즌이었는데, 3층에 아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책을 읽거나 방학 숙제를 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가장 안쪽에는 그림 책방인 ‘영유아 자료실’이 위치하였다. 신발을 벗고 들어가 편안하게 책을 즐길 수 있는 공간만이 주는 따스함이 있어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도서관 두 개 층을 아우르는 산책홀은 규모 자체로 분위기를 압도한다. 70여 명을 수용할 수 있고 강연과 공연이 모두 가능한 공간이라 그 쓰임이 다양하다. 옥상에는 ‘산책정원’이 있다. 시민들의 쉼터이자 이후에는 공연장과 플리마켓을 할 수 있는 용도로 지속적인 활용방안을 탐색하고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인 공간은 건물 내 계단이었다. 가장 ‘산책’다운 느낌을 받은 곳인데, 일반적인 돌림 계단이 아닌 사각 나선 형태의 계단으로 구성되어 있어 건물 전체적으로 계단이 차지하는 면적이 넓은 편이다. 게다가 한쪽 면은 통창으로 건물 밖 풍경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고, 카페처럼 앉아있을 수 있는 소파들을 배치할 공간을 충분히 마련해두었다. 계단을 오르내리면서 한 번쯤은 앉아 쉬어가고 싶은 그런 편안한 공간인 셈이다. 물론 엘리베이터도 있었지만, 마치 산책하듯 계단을 오르내리는 중간에 앉아 쉬며, 생각하며, 이야기할 수 있어서 더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또한 곳곳에 플랜테리어 요소가 많다는 것도 이 공간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데, 이곳의 시작부터 함께한 생활문화팀 지치수 주임의 설명에 따르면 이는 산림청과 제천시, 제천문화재단이 함께 구축한 ‘초록벽’ 사업의 결과라고 한다. 수직 정원으로 관리가 쉽고, 벽 전체를 아우르는 초록의 싱그러움은 이 공간에서 산책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하다. 사계절 테마로 층마다 컨셉을 잡아 플랜테리어가 완성되어 있었고, 산책홀의 뒷면을 비롯한 공간 곳곳에 스칸디아모스 이끼를 통한 벽면 장식이 공간의 활기를 불어넣어 준다.
토요일에 산책가자, 지역민들이 함께하는 문화로운 토요일을 만들기 위하여
하소생활문화센터 산책은 제천문화재단이 위탁운영하고 있다. 그리고 재단의 생활문화팀 전체가 센터에서 근무하며 시민들과 만나고 있다. 실제 어떤 프로그램들이 운영되고 있는지 파악하기 위해서 지치수 주임과의 인터뷰 자리가 마련되었다.
“센터의 중요 컨셉 중 하나가 바로 ‘토요일에 산책가자’입니다. 1층의 폴딩도어를 열고 산책마켓, 산책쌀롱을 진행하는데 주민들의 반응이 아주 좋습니다. 특히나 산책마켓은 전문적인 셀러가 아니라 주민들이 집에서 손수 만든 바느질 소품이나 아이들의 장난감을 재순환하는 의미로 많이 들고나오시죠. 소소하지만 의미는 소소하지 않은 마켓이기에 주민들도 그 취지에 공감해주시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마을 축제처럼 토요일에는 이곳이 1층부터 곳곳이 북적북적합니다. 이곳이 누구나 산책가듯 올 수 있는 편하고 즐거운 공간이라는 것을 더 많은 시민이 아실 수 있도록 현재도 꾸준히 진행하고 있습니다.”-하소 생활문화센터 산책 지치수 주임
또한 산책학교라는 문화예술교육프로그램도 지속적으로 운영하고 있는데, 홈페이지를 통해 신청을 받으면 5분 만에 매진된다고 한다. 그는 이곳에서 펼쳐지는 다양한 활동을 소개하면서 다른 지역에서도 선진지 견학을 오는 센터라는 틈새 어필을 놓치지 않았다. 아직 만 2년도 되지 않은 이곳이 왜 전국에서 모델링하고 싶어 하는 공간운영사례가 된 것일까?

上) 2023 산책학교 슬기로운 생활문화 : 리라 下) 2023 산책학교 미술의 전당 : 아이패드 드로잉



머무르고 싶은 공간의 발견, 생활이 문화가 되는 순간
어떠한 공간이 훌륭하다고 여겨질 이유를 생각하면 먼저 설계와 시공이 잘 된 것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잘 지은 건물이라도 사람이 머물지 않으면 어떨까? 하소생활문화센터 산책은 주변 아파트 단지와 상권이 밀집된 곳에 있어 접근성이 훌륭한 편이다. 또한 생활문화센터와 도서관이 같이 운영되고 있어 주민들이 토요일에 행사를 즐기고 도서관에 올라와서도 한참을 더 머물다 갈 수 있는 구조이다. 요즘과 같은 방학에는 평일 오전부터 센터 곳곳에 아이들의 발걸음과 이야기 소리가 분주하다. 잔잔한 음악이 흘러나오는 공간은 카페와 같은 느낌을 자아낸다. 생활이 문화가 되는 순간이다.
또한 센터 공식 누리집을 둘러보면 ‘레트로아트, 민화 부채 만들기, 커피박 리사이클링, 언어의 정원 글쓰기 교육과정, 아이패드 드로잉, 미니하프(리라) 교육과정, 작가와의 만남’ 등 폭넓은 스펙트럼의 생활문화 클래스를 확인할 수 있다. 다양한 요일과 시간대에 운영되고 있어, 직장인이어도 학생이어도 충분히 참여할 수 있도록 설계해두었다. 그리고 자발적으로 조직된 주민모임인 동호회의 현황도 살펴볼 수 있다. 센터에서는 ‘생활문화 동호회 지원 사업’을 통해 주민들의 생활문화 역량을 강화하고 이들이 추후 문화기획자 양성과정과 같은 교육을 거쳐 지역 문화예술 분야에서 그 기량을 펼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지치수 주임은 인터뷰를 통해 이러한 사례들이 한두 팀씩 나오고 있으며, 공모 사업에도 진입하여 지역 문화예술을 함께 만들어가는 협력자로서 건강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전했다.
하소생활문화센터 산책은 2022년 3월에 개소하여 이제 두 번째 여름을 보내고 있다. 그동안 이 공간에서 많은 시민이 생활문화예술을 통하여 문화로운 삶을 만나왔다. 과거 이곳은 2017년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참사로 아픔이 있는 곳이었기에 처음 센터 문을 열면서 직원들은 주민들이 이곳에서 아픔을 치유하고 보듬으며 축제의 공간으로 활용해주길 원했다. 그리고 몇 번의 계절이 지났다. 산책 오듯 걸음을 옮겨 온 이들의 마음이 이곳에 쌓였다. 이제 다가올 서늘한 가을에도, 매서운 겨울에도 이곳은 동네 축제의 광장이자, 일상에 문화를 전하는 풍요로운 공간이 될 것이다. 그리고 2년 연속 찾아온 산책 세입자인 제비 씨와 추리 씨도 다시 이곳에 둥지를 틀 것이다. 행운의 첫 조각은 제비 씨가 물어왔겠지만, 이 행운 같은 생활의 즐거움은 지역주민들이 함께 만든 것이기에.

EDITOR 편집팀
충북문화재단 충북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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