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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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특성화사업 - 감자꽃 중창단
'감자꽃 중창단은 기적을 만들어 낸다. '

비영리민간단체인 ‘충주열린학교’는 사랑, 나눔, 섬김이라는 교훈 아래 2005년 충북도민의 평생 교육 실천을 위해 설립되었다. 2012년 지역특성화 문화예술지원사업에 선정되면서 글쓰기를 시작으로 민화, 캘리그라피등 다양한 프로그램 운영을 통한 충북을 대표하는 평생교육기관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충주열린학교에서는 평균연령 70대인 어르신들이 모여 한글을 배운다. 한글을 모르고 한평생 살아온 어르신들은 입버릇처럼 ‘이건 못해요.’ ‘저것도 못 해요.’ 말하며 늘 자신감 없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들에게 자신감 회복과 당신들의 인생을 찾아 드리기 위한 고민을 거듭해온 끝에 2019년 ‘감자꽃 중창단’을 설립하여 5년째 운영 중이다.

충북 지역특성화 문화예술지원사업 감자꽃중창단 공연 ⓒ충주열린학교(사진출처)



‘감자꽃 중창단’은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한글을 교육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작성된 시에 음절을 붙여 세상에 하나뿐인 노래로 탄생시키는 활동을 한다. 중창단에 참여한 어르신들은 자신들의 이야기로 탄생 된 노래를 부르며 비로소 자신만의 이야기 속 주인공이 된다. ‘감자꽃’이라는 중창단이라는 이름은 충주에서 음악 봉사 활동을 하는 ‘루체레’ 중창단 어혜준 단장과 의논한 끝에 짓게 되었다. 충주의 독립운동가인 권태응 시인의 시 ‘감자꽃’에서 그 이름을 빌려 온 것이다. 권태응 시인의 단단한 삶의 모습처럼 우리 중창단 어르신들도 당신들의 지나온 삶에 자신감을 가졌으면 하는 마음을 담은 것이다.
2019년 3월 ‘감자꽃 중창단’을 처음 기획했을 당시 ‘감자꽃 중창단’이 충주 문화예술의 중심이 되기를 소망했다. 하지만 첫 발걸음을 떼는 일은 그리 순탄하지 않았다. 한글도 잘 모르는 70대 어르신들이 악보를 읽는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박자를 알려드리기 위해 어르신들의 손에 야구공을 하나씩 쥐어드리고 하나, 둘, 하나, 둘, 박자에 맞추어 공을 옮기는 방식으로 박자 감각을 익힐 수 있었다. 빠른 템포의 곡은 박자에 맞추어 손뼉을 치기도 하며 그것으로도 부족할 땐 온몸을 사용하여 박자를 익혀 나갔다. 시간이 갈수록 조금씩 중창단의 모습을 갖추어 나갔고, ‘감자꽃 중창단’만의 특별함을 찾기 위한 고민을 시작했다. 고민 끝에 어르신들이 직접 작성한 시에 곡을 붙여 노래로 만들어보기로 한 것이다. 이 시도를 통해 세상 어디에도 없는 어르신들만의 삶을 노래로 만들게 되었다. 글자를 배운 지 얼마 되지 않은 이들이 자신의 삶을 시로 쓴다는 것은 역시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중창단 어르신들과 함께 여러 편의 시도 읽어 보고, 좋은 노랫말을 함께 불러 보기도 했었다. 그러자 어르신들은 다른 사람의 삶이 아닌, 자신들이 살아왔던 삶을 글로 표현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쓰인 글 중 몇 편의 글을 추려서 가사로 탄생시킬 수 있었다.
완성된 가사에 서울시립합창단과 원주시립합창단 상임지휘자인 정남규 교수님 외 여러 작곡가가 곡을 붙여 총 여섯 곡의 노래가 만들어졌다. 2019년부터 2022년, 4년 동안 매년 새로운 노래 여섯 곡을 만들고 있다. 그렇게 충주열린학교에서 한글을 깨우친 어르신들이 작사한 ‘감자꽃 중창단’의 노래가 어느덧 스물네 곡이 완성되었다. 여전히 노래를 부를 때면 어르신들은 목소리와 몸은 떨리지만, 마음만은 십 대 소녀로 돌아간 것처럼 밝고 행복해진다고 말해주셨다. 그런 어르신들을 보며 필자의 마음마저 맑고 깨끗해지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감자꽃 중창단은 매주 금요일에 모여 세 시간 동안 글을 쓰거나 노래 연습을 하고 있다. 처음에는 수줍어 입만 겨우 벙긋하던 어르신들이 점점 자신감이 생기며 목청껏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보면 괜히 목구멍이 들큰거린다.

감자꽃중창단의 피아노 연습시간 ⓒ충주열린학교(사진출처)



창단된 지 3개월 만에 첫 번째 공연 섭외가 들어왔던 날의 떨림을 잊지 못한다. 과연 잘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한 마음과 무대에 선다는 설렘이 교차했었다. 어르신들은 공연을 앞둔 2주 전부터 매일 모여 열정적으로 연습을 이어가셨다. 어르신들의 열정은 자못 젊은 사람들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았기에 자신감은 충분했다.
우리의 첫 공연은 충주의 문해학습자들의 축제인 ‘문해 학습자 나들이’ 식전 행사였다. ‘감자꽃 중창단’ 어르신들은 충주호암예술관에 모인 관람객 250여 명 앞에서 공연을 해야 했다. 모두가 얼마나 떨었는지 모른다. 서로 손을 꼭 잡고 기도하는 분, 물을 찾는 분, 급히 화장실로 가는 분 등 무대 뒤는 분주하게 북적였다. 무대를 오르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어떻게 공연을 마칠 수 있을지 막막하기만 했다.
빨간 반팔티에 검정 바지를 단체로 맞춰 입은 스무 명의 어르신들은 경직된 모습으로 무대에 올랐다. 반주가 시작되고 그동안 연습했던 대로 오른쪽, 왼쪽 가볍게 몸을 움직이는 율동과 함께 드디어 합창이 시작되었다. 첫 공연 당시에는 우리가 쓴 곡이 없었기에 대중에게 잘 알려진 ‘내 나이가 어때서’와 ‘홀로 아리랑’을 불렀다. 방청객들의 박수와 환호가 한동안 쏟아졌다. 감자꽃 중창단 어르신들이 드디어 해냈다는 생각에 필자는 마치 구름 위를 걷는 것처럼 들떠있었다. ‘감자꽃 중창단’ 어르신들의 공연은 비문해 학습자를 비롯해 공연을 관람한 많은 이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심어 주었다.
첫 공연을 성공리에 마치고 자신감을 얻은 ‘감자꽃 중창단’은 전국 노래자랑이 충주에서 열린다는 소식에 선뜻 출연을 결심하고 맹연습을 이어나갔다. 예선을 앞두고 밤잠을 설쳐 가며 무대에 오르기만을 기다렸다. 예선 당일 한껏 부풀어 오른 어르신들은 다른 팀들이 하는 것을 지켜보며 자신만만한 자세를 보였다.
세 시간을 기다린 끝에 드디어 전국노래자랑 예선 무대에 올랐다. 그런데 막상 무대에 서니 자신감은 온데간데없고 모두 얼어붙어 버린 게 아니겠는가. 첫 소절부터 불협화음에 가사는 다 잊어버리고, 음은 하나도 맞지 않았다. 결국 ‘감자꽃 중창단’은 예선 탈락이라는 쓰라린 고배를 마셔야 했다. 충격에 빠진 단원들은 다시는 노래를 부르지 않겠다는 투정어린 말을 하기도 하였는데, 감히 웃으며 넘길 해프닝이 아니었다. 자존감이 하락한 ‘감자꽃 중창단’ 어르신들은 해체 위기에 놓이고 말았다.
“어르신, 우리 다시 중창단에서 노래해요.”
“텔레비전 나온다고 동네방네 소문 다 냈는데, 떨어져서 남사시러워 노래 못 혀.”
“더 열심히 해서 다음에 꼭 나가면 되죠. 우리 같이 연습해서 나가요.”
“선생님이 책임지고 나가게 해줄 거야?”
“그럼요. 제가 책임질게요.”
어르신은 회차를 거듭할수록 아픔을 회복하고 자신을 밖으로 드러내기 시작했다. 다시 글을 쓰고 노래를 부르며 활력을 충전해나갔다. 이에 충주열린학교에서는 감자꽃 중창단을 지속해서 지켜내기 위해 정기 공연을 기획하였다. 2019년 11월 [충주열린학교 ‘감자꽃 중창단’]의 첫 정기 공연을 충주 시민과 함께 음악 창작소에서 열게 된 것이다.

충주열린학교 '감자꽃 중창단'의 정기 공연 ⓒ충주열린학교(사진출처)



정기 공연인 만큼 드레스를 맞추어 입자는 의견들이 있었다. 생애 처음 입어 보는 화려한 빨간 드레스를 착용한 어르신들의 얼굴은 환하게 웃는 얼굴과 수줍어하는 모습이 어우러져 설렘이 가득했다. 많은 관객이 지켜보는 가운데 무대의 주인공이 되어 노래를 부르는 중창단 단원 어르신들. 객석에서는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눈물을 흘리는 분들도 있었다.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자신만의 이야기를 담은 노래를 무대에 서서 부르는 모습이 자랑스러웠다. 마음으로 부르는 노래에 객석에서도 우렁찬 박수가 터져 나왔다.

한글날 기념 열린음악회 공연 ⓒ충주열린학교(사진출처)



감자꽃 중창단이 직접 만든 노래는 2019년에 CD로 제작되었고, 2020년은 영상제작과 유튜브로 공유하였다. 2021년은 다큐멘터리를 제작하였으며, 2022년은 노래와 더불어 피아노까지 배워 합주를 병행하고 있다. 2022년 10월 9일 한글날을 기념하여 KBS 열린 음악회 팝핀현준, 박애리와 함께 공연했으며 전국노래자랑에 예선 탈락했던 설움을 딛고 전국으로 방영되는 열린 음악회 프로그램에 출연해 한을 풀었다. 어르신들과의 약속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열정을 다한 어르신들과 이들을 성심껏 지도해준 어혜준 지휘자와 우리 중창단을 도와준 많은 이들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EDITOR 편집팀
충북문화재단 충북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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