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문화예술 소통과 공감의 통로 [ㅊ·ㅂ]
자생하는 예술가
'회화 작가 최재영'

좁은 골목에 위치한 최재영 작가의 작업실을 가려거든 골목 초입에서 차를 세워두고 걸어 들어가야 한다. 멋모르고 차를 가지고 들어갔다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애처로운 상황을 맞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도대체 이런 곳에 무슨 작업실이 있단 말인가, 미심쩍은 가운데 오래된 구옥 문을 벌컥 열며 인사하는 최재영 작가와 마주쳤다.

회화 작가 최재영 ⓒGIEONGNOK(사진출처)


Q.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청주 우암동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는 회화 작가 최재영입니다.
Q. 우암동에서도 유난히 굽어진 골목 사이에 작업실을 얻게 된 이유가 궁금해요. 이 공간은 어떻게 찾게 된 곳인가요.
사용하던 작업실의 공간이 좁아서 더 넓은 공간을 찾아 현재의 우암동 작업실로 오게 된 거였어요. 초반에는 우암동의 원도심이라는 특징을 살려 구옥을 활용하여 새로운 예술 공간의 방안을 모색해 보려고 했어요. 예술이나 문화의 중심지가 아닌 원도심에서 예술, 혹은 미술 작품이 놓여졌을 때 예술의 위치가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가, 그런 실험적인 방향으로 이 공간을 만들었던 거죠. 재작년에 <예술 행동>이라는 전시를 이곳에서 진행했었고 그 이후에도 거점 공간 사업을 진행한 바 있어요.

최재영 작가의 작업공간 '우암창작소' 내,외부 ⓒGIEONGNOK(사진출처)



이 공간에서 다른 작가들 혹은 시민들과 교류하는 전시를 진행한다거나 공유의 공간으로 운영할 계획은 아직 없어요. 현재는 두 개의 개인전을 준비하느라 완성해야 하는 작업의 양이 아주 많아요. 따라서 작업의 양이 중요하다 보니 오롯하게 저만의 작업에만 몰두해야 할 필요가 있어서 이 공간을 개인 작업실로 운영할 생각이에요.
Q. 그렇다면 ‘우암창작소’ 이외에 다른 공간에서도 작품 활동을 하신 적이 있나요? 처음 작가활동을 시작하는 젊은 작가들에게 어떤 의미로든 공간은 꼭 필요한 부분인데요.
사실 미술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작가 활동을 시작하기까지 되게 막막하거든요. 어떻게 작업 활동을 시작해야 될지 아니면 다른 작가들과 관계 형성은 어떻게 이어나가야 할지. 그런 종합적인 고민이 저도 참 많았었는데 레지던시에 들어가게 되면서 많이 해소됐어요. 동료 작가들에게 배울 수 있는 것도 많고, 서로의 작업 활동을 통해 좋은 자극을 얻을 수도 있었죠. 그런 활발한 상호작용을 통해 자연스레 네트워크는 쌓이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주변 작가들에게 레지던시를 많이 추천해요. 특히 개인 작업만 집중하다 보면 객관적인 판단이 어려울 때가 있어요. 그럴 때 레지던시에서 동료 작가들끼리 서로 작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작업 방향을 발전시킬 수도 있죠.
저는 2012년에 대학을 졸업한 직후 ‘하이브 캠프’라는 레지던시에 들어가서 작가 생활을 시작했었어요. 그곳에 있으면서 몇몇 곳의 아시아 레지던시를 찾아다녔고요. 인도, 싱가포르, 베트남 등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레지던시에 들어가 다양한 경험을 쌓았어요. 여러 레지던시에서 만난 작가들과 활발하게 교류하면서 저의 작업에 대한 방향성도 뚜렷하게 그려나갈 수 있었죠. 요즘에는 개인 작업실에서 개인 작업에만 몰두한 채 지내지만 언제라도 작업의 정체기가 온다거나 새로운 자극이 필요하다고 느끼면 다시 레지던시에 들어갈 생각이에요.
Q. 최재영은 어떤 작가로 소개되면 좋겠는지, 작가님의 작품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주로 생활에서 마주치는 주변의 것들을 통해 얻게 된 영감을 그림으로 승화합니다. 물론 심경의 변화에 따라 그리는 주제가 달라지기도 하지만요. 현재 변형이나 왜곡의 반영이 많은 자연물을 많이 그리고 있어요. 하나의 이미지를 그려놓고 그걸 다시 파괴하거나 수정하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발생하는 우연성, 행위 위에 행위가 중첩되면서 쌓이는 시간성 등을 겹쳐 쌓아 작품 안에 담아내려고 해요. 이러한 작업이 궁극적으로 저는 ‘회화적인 회화’라고 생각해요.
회화적인 회화라는 것은 예측 가능한 1차원적 회화가 아니라는 거예요. 스케치를 마친 그림의 일반적인 순서는 색을 칠하고 묘사하는 것인데요. 하지만 제가 생각하는 회화적인 회화는 그림의 흐름을 계획과 이성적 판단보다는 우연과 직관에 맡기는 거예요. 따라서 정교하게 계산된 이미지로 구현하는 작업이 아니라 작가의 감각에 의해 예측 불허한 창작물로 완성하는 거죠. 이러한 방식으로 저만의 독자적인 화풍을 만들어나가려 해요.
Q. ‘회화적인 회화’라는 언어가 생소한 반면 이를 탐구해 보고 싶은 마음도 들끓는 거 같습니다.
작가님이 이전에는 어떤 활동을 했었는지 궁금하기도 하고요. 기억나는 활동이 있다면 이야기해주세요.

현재 ‘오뉴월’이라는 갤러리 소속으로 전속 작가 활동을 이어오고 있어요. 올해 1월에 오뉴월 전속 작가 개인전 <기질을 머금은 물감 덩어리2023>를 진행한 바 있어요. ‘오뉴월’이라는 곳은 서울에 기반을 둔 갤러리이고, ‘아트바자르’ 와 ‘가람신작’의 참여 작가로 활동할 당시 알게 된 곳이에요. 사실상 젊은 개인 작가가 아트페어와 같은 행사에 참여하는 게 비용적으로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부스 운영비로 적게는 몇백에서 크게는 몇천까지 지불해야 하기 때문에 그 비용을 개인이 부담하기란 어렵죠. 또 이러한 협업 구조를 통해 다양한 프로젝트의 참여나 홍보의 기회가 많이 열리기도 해요.

우암창작소 전시 '기질을 머금은 물감 덩어리 2023' ⓒGIEONGNOK(사진출처)



홍콩의 ‘아트시 (ARTSY)’라는 시각예술 홍보 플랫폼도 1년 홍보비용이 천만 원 정도예요. ‘아트시 (ARTSY)’는 워낙 유명하고 세계 여러 갤러리에서도 이곳을 통해 많은 작가의 작업을 검색하고 있으니 현직 작가라면 해당 사이트를 이용하는 게 큰 도움이 될 거예요. 저도 갤러리와 협업하여 매년 완성된 신작들을 업데이트하며 이곳에서 3년째 홍보를 이어오고 있죠. 작가에게 홍보는 아주 중요해요. 저의 경우 SNS에 제가 작업한 그림을 아카이브 형식으로 업로드하고 있어요. 게시글마다 해시태그를 많이 활용하고요. 특히 영어로 해시태그를 기재해서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노출될 수 있게 하죠. 그렇게 업로드한 게시물을 보고 홍콩에 있는 ‘갤러리 어센드 (Gallery Ascend)’라는 갤러리에서 연락이 왔어요. ‘엑스오더스(EXODUS)’라는 전시를 진행하고자 한다며 협업 문의가 왔고, 저의 그림 3점을 홍콩으로 보냈어요. 해당 전시는 그룹전이었는데 뜻밖의 좋은 성과를 얻었어요. 운이 좋게도 제가 전시한 그림이 모두 판매되었거든요. 최근 들어 기억나는 가장 유의미한 성과로 여겨지는 전시였어요. SNS를 통해 맺어진 관계가 현실로 이어져 전시와 판매가 이루어진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했고요. 게다가 ‘갤러리 어샌드 (Gallery Ascend)’와 인연으로 내년에 홍콩에서 개인전시를 예정하고 있어요.
Q. 활동상 어려웠던 점에 대한 이야기는 많은 작가들이 공감할 듯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어려운 지점을 극복하기 위해 필요한 제도나 변화는 무엇이 있을까요?
작가 생활에서 가장 힘들었던 부분이라고 한다면 아무래도 금전적인 요인이겠죠. 아주 유명한 작가가 아닌 경우 대부분 서브 직업을 가지고 있어요. 그림만 그려서 먹고 살 수 있는 구조가 쉽게 만들어지는 게 아니거든요. 강의를 나가 학생들을 가르친다거나, 전시 설치를 한다거나, 벽화를 그리는 사람들도 있어요. 그러한 일들을 부업의 수단으로 병행해가며 작품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는 거죠. 하지만 부업과 전업을 병행하다 보면 육체적, 시간적인 문제를 마주하게 되고, 이 문제로 인해 도리어 전업을 포기하는 작가들이 많아요. 작업을 통해 생산성을 얻거나 금전적인 보장을 늘 얻는 건 아니니까요.
그렇지만 작가로서 살아가고자 한다면 작품 판매를 통한 수익 구조 형성이 작가의 생명을 연장하는 궁극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미술관 전시나 재단 혹은 시, 도에서 진행하는 여타 지원 사업은 단발적이거나 일회성인 경우가 많으니까요. 그런 것들이 작가가 성장하는데 좋은 발판으로서 작용할지는 몰라도 자생하는 방법은 아니에요. 매년 일정한 금액의 지원금을 얻어 1년 단위의 기획 활동을 하는 것으로는 지속성을 갖기 어렵다고 생각해요. 궁극적인 선순환 구조를 세우고 구체적인 유통과 생산의 구조를 갖춰야 해요.
작가라면 어쩔 수 없이 이러한 문제점을 견디고 이겨내야 한다고 보거든요. 재단이나 정부의 지원을 받아서 작가의 역량을 키웠다면 자생하는 능력으로 이어내야 해요. 물론 작가만 노력한다고 해서 이뤄낼 수 있는 건 아니겠죠. 다 함께 문화예술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가장 좋은 대안은 더 많은 시민들이 예술을 향유하는 문화가 조성되고, 그 안에서 작가가 활발한 활동을 이어나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 생각해요.
Q. 개인 작업실 공간이 위치한 지역에서, ‘지역예술’ 혹은 ‘지역작가’라는 키워드를 생성하는 것에 대하여 어떤 생각을 가지시는지 이야기 나눠주세요.
청주라는 지역을 넘어 예술이 전할 수 있는 더 큰 에너지가 있다고 봐요. 작업실의 위치만 청주에 있을 뿐이지 작가의 활동 범위가 청주나 지역에 한하지는 않잖아요. 작가는 물론 작가의 작품이 전 세계에서 유통되고 전시되는 시대에서 사실상 지역 작가라는 말은 어색하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특히 지역은 서울권역에 비교하자면 작품이 판매되거나 활발하게 유통되는 순환 구조가 다소 적은 편이잖아요. 그럴수록 지역의 풍부한 지원을 바탕으로 역량을 강화하고 청주뿐만 아니라 다른 어느 곳에서도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작업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EDITOR 편집팀
충북문화재단 충북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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