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문화예술 소통과 공감의 통로 [ㅊ·ㅂ]
지역과 작가가 상생하는 구조의 예술을 그리다.
'‘청주창작스튜디오’ 전속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작가 이규선'

'운리단길’이라는 명칭으로 불리고 있는 청주시 운천동은 현재 청주시에서 가장 활발한 상권과 문화가 조성되고 있는 동네다. 각종 식당과 카페, 공방 등 개성이 가득한 가게들이 줄지어진 거리는 생기가 넘쳐나고 있다. 걷는 것만으로 즐거움을 불러일으키는 이 거리에서 가장 비밀스럽고 궁금한 공간인 이규선 작가의 개인 작업실, ‘이작가의 사생활’ 앞에 멈춰 선다. 투명한 유리창 너머로 사용하던 물감과 붓 그리고 섬세하지만 과감한 예술세계가 엿보이는 그림이 내다보인다. 당장 작업실 문을 열어 이규선 작가에 대해 알아내보고 싶은 설레는 조급함이 감돈다.

작가 이규선 ⓒGIEONGNOK(사진출처)


Q.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청주에서 12년 정도 평면 회화 작업하고 있는 이규선입니다.
Q. 청주 문화의 중심지인 운천동에 작가님의 개인 작업실이 위치해 있습니다. 많은 시민들이 이 공간 앞을 오가며 이곳이 어떤 공간인지 궁금해하셨을 거 같아요. 이곳을 소개해주세요.
3년 전에 운천동을 처음 왔을 때는 지금처럼 개발되기 전이었어요. 도시재생 이전의 동네 모습은 어수선했었죠. 다만 이 공간 자체는 그때부터 예뻤어요. 마카롱 집이었거든요. 아기자기한 디저트를 판매하는 공간답게 잘 가꾸어진 인테리어가 눈에 띄었어요. 보자마자 마음에 들어서 바로 이 공간에 들어오기로 결정했고 쭉 작업실로 쓰게 된 거예요. 사실 작업실을 얻은 건 미술 수업을 하기 위해서였어요. 작업실을 얻기 전까지 집에서 미술 소재의 수업을 진행했었는데 처음엔 두 분 정도였던 수강생이 어느새 여섯 분으로 늘어나면서 공간의 확장을 계획하게 된 거죠. 공간을 얻은 뒤로 이곳에서 수업 이외에 전시회를 열기도 하고 다양한 활동을 이어나갔어요. 수업 이외 활동이 많아지다 보니 결국 수업은 접게 되었지만요. 현재는 제 작업 위주의 개인 공간으로만 이곳을 활용하고 있어요.

'이 작가의 사생활。' 공간내부 ⓒGIEONGNOK(사진출처)


Q. 이렇게 근사한 작업실이 있는데 공유 작업실, 청주창작스튜디오 레지던시*에 전속 작가로 들어가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다른 작가들과의 교류가 필요했던 거 같아요. 서로의 작업 과정의 전개를 공유하면서 선의의 경쟁 구도를 통한 열정과 동기를 품게 마련이니까요. 그러한 감각이 약간의 긴장감을 주어서 작업에 몰두할 수 있는 도움을 주리라 생각했어요. 실제로 레지던시에서 작품 활동을 성실하게 이어나가고 있기도 하고요. 하지만 아무래도 오랫동안 사용했던 저의 개인 작업실이 저에게 아직 가장 편안한 공간이기는 해요. 주말이면 자주 이곳에 들러 내면의 사유를 즐기거나 완전한 쉼을 가져요. 그럼 오랫동안 잘 풀리지 않던 작업이 새로운 방향을 찾아 다시 술술 풀리기도 하고요.




Q. 주로 어떤 작업을 하시는지, 작가님의 작업 세계를 이야기 해주세요.
주로 캔버스 유화 작업을 해왔어요. 작품의 소재는 개인의 경험 속에서 겪은 상황과 그에 수반된 기억들일 때가 많아요. 제 삶에 어떤 마찰이 생기면 내면으로 파고 들어가 자아를 이미지화하는 작업으로 이어나가는 방식이에요. 이때 내면의 깊은 수심 속에 잠긴 욕망을 표현하려고 하죠. 아무래도 심리적 상태들을 구체적이고 적나라하게 작업에 담다 보면 부정적이라고 할 수 있는 모습까지 다 드러내게 돼요. 어쩌면 저의 치부나 안 좋은 모습까지 전부 노출하게 되는 거죠. 작품 활동에 있어서 지나치게 저를 다 들어내는 것이 위험 요소를 동반하기도 하겠지만 스스로 더 자연스럽고 편안해져서 좋아요. 일부분의 모습으로만 살아가는 게 아니니까요. 저의 모든 모습이 저라는 것을 제가 가장 먼저 인정하고 비춰내는 투명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Q. 작품 활동과 별개로 본업을 따로 두고 있다고 들었어요. 작업과 본업을 동시에 운영하는 과정에서 드는 피로감이나 괴리감도 수반될 거 같은데, 어떤가요?
10년을 고민하는 부분이지만 이것으로 괴리감이나 갈등을 품고 싶지는 않아요. 그림을 그리는 모습도, 그림과 전혀 관계성이 없어 보이는 일을 하는 모습도 모두 저니까요. 그림을 그리기로 작정한 순간부터 늘 본업이라는 걸 따로 두고 겸해왔어요. 낮에는 주로 생계를 직접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저녁에 주로 작업을 하고 있어요. 겸업으로 인해 그림 작업 시간이 부족하다거나 시간을 빼앗기고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아요. 작업에만 몰두해서 어떻게든 생계를 유지하는 방법을 찾으려면 찾을 수 있겠죠. 다만 낮과 밤의 양면성이 발휘하는 자아의 분리에서 일종의 환기와 쉼을 느끼기도 하는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이런 패턴이 작업에 함몰되지 않고 저를 지키는 방식인 거죠. 그림과 생업의 사이에서 뭐가 더 우선된다고 규정하거나 구분할 수 없을뿐더러, 오히려 두 가지 일이 서로 상응하고 있어요. 생업 현장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환경에서 얻은 영감을 그림으로 승화하기도 하니까요. 이 작업실의 이름이 <이 작가의 사생활>인 것도 ‘이’ 작가라는 대명사의 의미와 ‘이규선’의 페르소나를 담는 성씨 李(오얏 이)의 의미를 동시에 담았죠. 동음이의어를 써서 저의 양면적인 생활상을 표현했어요.
Q. 예술을 하면서 가장 힘든 점은 뭐가 있을까요? 현실적인 이야기를 통해 더 많은 작가들이 공감할 수 있고, 일반 시민들이 이해할 수 있는 예술 작가들의 진솔한 이야기가 궁금해요.
무엇보다 현실적으로 따져봤을 때 전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지불하게 되는 대관료, 배송비 등. 그리고 작업을 위한 재료비를 벌기 위해 그림을 그리는 게 수지타산을 맞추기가 어렵더라고요. 작업의 주제와 소재의 선택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유화물감과 캔버스 작업을 하는 작가의 입장에서는 재료비 부담이 많이 커요. 작품 판매가 원활히 이루어지는 유통구조의 기반이 단단하게 잡히면 생산성이 확보될 수 있겠지만 작품 전시만으로는 어려운 현실이죠. 작품 판매와 마찬가지로 작가 활동이 자체적으로 생산성을 가질만한 구조를 여전히 연구하고 있어요.

이규선 작가의 유년시절에 받았던 상장들,이규선 작가가 건설현장에 근무했을 당시 사용했던 현장모 ⓒGIEONGNOK(사진출처)


Q. 그럼에도 예술 활동을 이어나가게 되는 원동력이라고나 할까요. 도움을 얻을 수 있었던 사례도 있었나요?
저는 지역 공기관이나 문화재단, 국공립 미술관 전시 공모 위주의 활동에서 도움을 얻을 수 있을만한 방향성도 찾고 있어요. 2021년 ‘청년예술가창작활동지원사업’ 보조금을 받았었던 게 저의 첫 번째 공모사업이었어요. 그 당시에는 모든 게 처음이라 전시를 어디에서 해야 할지, 대관은 어떻게 진행해야 할지 잘 몰랐었죠. 그래서 결국 제가 가지고 있던 공간인 이곳 <이작가의 사생활>에서 전시를 열게 되었는데 오히려 좋은 결과가 벌어졌어요. 전시를 통해 공간이 많이 알려지기도 했고, 전시 이력이 생기니 공간 임대료 지원 사업도 받게 되는 등 좋은 일들이 연이어 많이 생겼어요. 이후 시립 미술관 전시도 하게 되고 개인전도 몇 번 더 치르게 되면서 지속적인 좋은 영향들이 일어났고요.
Q. 지역 재단 사업이나, 지역 거점 사업 등의 도움이 크군요. 이러한 지역 기반 활동을 통해서 ‘지역 작가’라는 키워드를 얻게 되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지역의 문화, 예술 사업으로 인해 그렇게 부르는 걸 자주 경험해오긴 했지만 작가를 지역으로 구분하는 이유는 잘 모르겠어요. 개인적으로는 ‘지역 작가’라는 명칭은 바뀌었으면 해요. 지역의 구분을 넘어서 세계적인 범위를 아우를 수 있는 게 예술이잖아요. 오히려 ‘지역 작가’라는 한정된 범위의 표현은 작가의 도약과 성장을 압박한다고 느껴져요. 하지만 지역의 특성을 잘 파악하고 지역의 역사와 미래의 이야기를 담아주는 역할은 작가로서 할 수 있는 부분임이 분명하죠. 지역과 작가가 상생하는 구조도 얼마든지 많이 있어요. 예를 들어 앞서 말했듯 다양한 공모 사업을 통해 작가는 예술 활동의 듬직한 발돋움을 얻을 수 있고 지역은 문화 예술 생태계를 조성할 수 있겠죠.
Q. 작가님의 활동에 관심을 가지고 있을 시민분들을 위해 계획 중인 전시나 활동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청주창작스튜디오에 입주하게 되면 전속 작가로서 개인전을 진행해야 해요. 총 14명의 작가가 2인 1조가 되어 한 해 7번의 전시를 열게 되는 거죠. 창작스튜디오 건물이 2개 층으로 나누어져 있어서 한 작가가 하나의 층을 맡아서 공간을 채워야 하는데 공간이 꽤 넓다 보니 부담감이 조금 있긴 해요. 저는 11월 21일에 개인전을 오픈할 계획이라 지금부터 꾸준히 준비하려고 해요. 그 시기와 비슷하게 10월말 정도에 PA 갤러리에서도 단체 전시가 예정되어 있고요. 충북문화재단 주최로 진행하는 전시인데 3인 전시로 진행될 예정이에요.
Q. 이규선 작가님이 청년 작가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문화 예술의 방향성을 이야기 해주세요.
작품활동하는 동료 작가들과 만나면 좋은 제도나 기회가 꽤나 열려 있다고 이야기해요. 임대료 지원 사업이나 전시 공모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도전하는 작가들도 많이 있고요. 주체적으로 방법을 모색한다면 작업 활동에 직접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기도 하고 작가의 성장 기회를 얻을 수도 있죠. 특히 개인적으로 청주는 문화예술 산업 제도와 시스템이 잘 갖춰진 도시라고 생각해요. 청주창작스튜디오 레지던시는 작가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아 경쟁률이 어마어마한 곳이기도 하고요. 작업하기 좋은 환경과 근사한 건물 인테리어로 전시에 좋은 영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에요. 청주창작스튜디오와 더불어 청주시립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청주관이 청주 지역을 문화예술의 메카로써, 상징성을 부여해주고 있고요. 그리고 이것들이 작가들의 성장 요소로 잘 작동될 수 있도록 보이지 않는 노력들이 있는 것으로 알아요. 작가들은 이러한 문화예술 자산을 발판삼아 더 멀리, 더 확장된 세계로 뻗어 나가야 해요. 지금 나누고 있는 이 대화 역시 청주, 충청북도 시민들에게만 공유되는 게 아니라 사회의 다양한 연결고리를 타고 세상 저변으로 퍼져나가면 좋겠어요.

EDITOR 편집팀
충북문화재단 충북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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