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문화예술 소통과 공감의 통로 [ㅊ·ㅂ]
연극이 끝나지 않는 생활이라는 무대
'연극배우 홍정연'

생활에서 연극을, 연극에서 생활을 이어간다는 홍정연 배우를 만나러 음성으로 향했다. 홍정연 배우가 소속된 소극장<하다>가 위치한 곳에서 바라보는 8월 한낮의 응천은 눈부실 정도로 아름다웠고 찌르렁-울어대는 매미의 울음소리와 짙푸른 초록의 나무 아래 우두커니 놓인 벤치 하나가 기분 좋게 어우러져 있었다. 이 아름다운 장면만큼이나 놀라운 홍정연 배우의 연극 생활 이야기를 들을 생각에 벅찬 감각으로 소극장<하다>의 문을 힘껏 열었다.
충청북도 음성에 위치한 소극장<하다>의 극단 <잇-다> 소속 연극배우 홍정연은 충북 지역을 주 무대로 다양한 연극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음성 소극장 <하다> 전경 ⓒGIEONGNOK(사진출처)


Q.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36살 연극배우 홍정연이라고 합니다. 충청북도 음성에 위치한 극단 <잇-다> 에 소속되어 활동하고 있어요.

연극배우 홍정연 ⓒGIEONGNOK(사진출처)




Q. 음성이라는 지역에서 소극장<하다>의 소속 극단 <잇-다>의 단원이 되어 연극 활동을 하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서울에서 연극 활동을 이어 나갈 당시 <경험과 상상>이라는 극단에 소속 배우로 활동했었어요. 그 당시 이곳 소극장 <하다>의 대표 황금미영 선생님도 같은 극장에 계셨었죠. 그곳에서 인연을 계기로 소극장<하다>도 알게 되었어요. 음성 소극장<하다>와 함께한 지 5년 정도 된 거 같아요. 처음 2년 정도는 음성에 정착하지 않고 서울과 음성을 오가며 지냈었어요. 매주 토요일에 진행되는 청소년 극단 수업을 맡아 지도했었거든요. 그러다가 이곳 소극장 <하다>가 충북문화재단 문화예술 교육 거점 사업에 선정되면서 극장 일이 점점 늘어났어요. 하지만 극단의 주인력은 대표님 부부 두 분뿐이라 일손이 부족했죠. 부족한 인력을 충원하며 조금씩 돕다 보니 점차 함께 하는 일이 늘어났고, 서울 집을 정리한 뒤 완전히 음성으로 내려오게 됐어요.
Q. 음성에 내려오기 전의 연극배우 생활은 어떠셨었는지 궁금해지네요.
대학에서 연극과를 졸업했어요. 운이 좋았는지 대학 졸업 직후 바로 신춘문예 단막극전에서 연극배우로 입봉 할 수 있었죠. 그 이후 저의 첫 작품을 보셨던 다른 연출가분이 저를 캐스팅해 주시기도 하고 오디션을 보기도 하면서 약 3~4년 정도 공백 없이 연극 활동을 이어 나갈 수 있었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소속감을 느껴가며 연극 활동에 더욱 깊이 집중하고 싶은 욕구가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유목민>이라는 극단에 들어가게 되었죠. <유목민>에서는 고전 작품이라든가 연극제 수상작 같은 큰 공연을 할 기회가 많은 극단이었어요. 그곳에서 좋은 선배님들과 함께 호흡을 맞춰가며 더욱 진지하게 연극을 대할 수 있었죠.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사회적 문제나 현안에 대한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무대에서 표현하고 싶은 욕구가 커졌어요. 또 새로운 것에 도전해 보고 싶고, 실험적인 것을 시도해 보고 싶어 극단<경험과 상상>으로 옮기게 되었죠. 극단을 옮긴 후 이전까지 해왔던 작품들과 다른 방식으로 연극을 대할 수 있어 좋았어요. 하지만 극단<경험과 상상>은 재단이나 시의 지원 사업을 받지 않는 극단이었기에 제작 여건이 그리 좋지 않았어요. 그래서 가끔은 공연을 위해 단원들이 모두 십시일반 돈을 걷어서 제작 지원비를 모으기도 했었죠. 그때부터 늘 연극 생활이 배고프고 고단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어떻게라도 연극 활동을 이어 나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가며 지금까지 해오고 있네요.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사는 게 얼마나 행복한지, 그걸 모르는 사람이 있나요? 물론 이 행복을 유지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병행하고 있기는 하지만요.
Q. 좋아하는 일인 연극 활동을 이어나가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병행하고 있는 배우님의 이중생활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를 더 듣고 싶어요.
다른 분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저는 연극도, 아르바이트도 모두 재밌어요. 공연을 준비해서 올리는 활동은 저의 숙명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아르바이트는 그 숙명을 실현하기 위한 하나의 연습 공연이고요. 제가 일하는 곳의 사장님은 제가 일을 나갈 때마다 계속해서 급여를 올려 주셨었어요. 급여 인상에 대한 의미에는 아마도 사장님이 저를 응원하는 마음도 담겨 있었겠지만, 제가 항상 열정을 다해서 일했던 이유도 있었을 거예요. 저는 아르바이트할 때 손님들에게 ‘최상의 서비스를 보여주겠다’는 마음으로 한 편의 연극을 올리듯이 일하거든요. 실제로 아르바이트 경험을 연극 소재로 사용한 적도 있어요. 예전에 <자혜, 그 누구도 아닌>라는 작품에서 일본 첩자 역할을 맡았었거든요. 그 당시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는데 편의점 사장님이 일본인이셨고 사장님의 말투와 특징을 캐치해서 연극에서 저만의 톤으로 사용할 수 있었어요. 그리고 서빙 아르바이트를 할 때 있었던 에피소드인데 뭐가 불만이었는지 꼬박꼬박 트집을 잡던 손님이었어요. 그때 제가 나서서 그분을 맡아 케어하면서 저만의 퍼포먼스, 연극을 펼쳤죠. 결국 식사 막바지엔 그 손님의 기분이 풀렸고 그분이 저에게 팁을 주시겠다는 거예요. ‘여기 알바는 정말 사람이 됐네.’라고 말하더니 지갑을 열어 2천 원을 꺼내 저에게 건네더라고요. 그러면서 또 하시는 말이 ‘아이스크림 사 먹어요’라고 하셨죠. 너무 재밌지 않나요. 꼭 다음 연극에서 이 에피소드를 풀어보고 싶어요. 생활 속 연극이 저에게 많은 영감을 주는 거 같아요.

연극 '자혜, 그 누구도 아닌'


Q. 생각지 못한 흥미로운 시점이네요. 그러면 이후 완전히 음성으로 내려와 이곳의 생활에 집중하게 된 계기는 뭔가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아무래도 가장 큰 이유는 ‘꿈다락토요문화학교’에서 가르치던 아이들 때문이었어요. 이곳 아이들은 누가 시키지 않았어도, 또 누가 봐주지 않더라도 늘 연극에 진심이거든요. 아이들이 주말마다 극장에 와서 시간을 보내는 모습과 아이들이 청소년극단으로서 진지하게 연극을 대하는 자세가 감동적이었어요. 제가 없어도 본인들끼리 열심히 공연 준비하더라고요. 성공적인 연극을 올리는 게 목적이 아닌, 연극이 생활인 아이들이에요. 저는 아이들이 연극 영화과에 진학하고 싶어서 그러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어요. 단지 연극이 너무 재밌어서 그러는 거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잘하고 싶은데 마음처럼 잘 안되니까 그렇게 열심히 연습하는 거래요. 그런 아이들이 너무 기특하고 예뻐 보일 수밖에 없잖아요. 그래서 ‘이 아이들과 함께 연극을 해보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음성으로 완전히 내려오게 됐죠.
Q. 개인적으로 ‘청소년극단’ 친구들의 이야기가 정말 인상적이네요. 아이들의 생활이 연극 자체가 되는 게 느껴지는 거 같아요.
맞아요. 어느덧 저희 극장에서 ‘어린이 극단’을 지나 자연스럽게 ‘청소년 극단’을 거치고 이후 성인이 돼서 다시 이 극장으로 돌아와 아이들에게 연극을 가르치는 활동을 이어가는 아이들도 생겼어요. 이런 순환을 통해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예술 활동을 가까이하게 되니 아이들이 모두 맑고 순수해요. 저는 아이들과 작업하는 걸 좋아해서 학교나 기관 등 한 곳에서라도 아이들과 만나는 연극 수업을 맡아 진행하려고 해요. 어쩌면 이 활동은 저의 연극 생활의 단단한 신념 같은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어요. 연극 선배 중에 한 분이 저에게 어느 날 문득 그런 이야기를 하시더라고요. 왜 대중들이 연극을 많이 찾지 않는지 아느냐고, 연극이 대중성을 잃은 이유 중 큰 부분은 바로 교육 때문이라고 말이죠. 아이들은 학교에서 미술 수업이나 음악 수업을 통해서 피아노를 접하고 고흐나 피카소를 접해요. 그럼 그 아이들에겐 피아노와 고흐, 피카소가 조금이라도 익숙한 속성이 되는 것이죠. 하지만 연극을 학교에서 배우는 것이 흔하고 보편적이진 않잖아요. 그럼 그런 아이들이 자라 사회에 나왔을 때 연극이라는 것이 얼마나 낯설겠어요. 연극 극장을 찾아가는 게 어려운 일이 되는 것이죠. 저는 연극에 종사하고 있는 전문가로서 연극이라는 예술이 다음 세대에게 지속적으로 전승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해요. 교육을 통해 아이들이 연극에 익숙해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것이죠. 생활에서 연극을 접하고 예술을 누리는 아이들로 자라날 수 있도록 말이에요. 그걸 이곳 음성 아이들은 무척 잘하고 있는 것이고요.
Q. 음성에서 겪은 인상적인 경험은 또 어떤 게 있는지 궁금하네요.
소극장<하다>에서 제가 쓴 첫 작품을 무대에 올렸던 때였어요. 극본부터 연출 그리고 무대 창작과 배역까지 모든 것에 참여해서 만든 작품이었어요. 그러다 보니 연극을 올리기 전까지 긴장을 많이 했었어요. 연극을 보러 와주신 관객분들은 대부분 동네 주민분들이셨고 그중에 연극을 처음 접하는 분들이 많아서 연극이 어색할 수도 있을 텐데, 과연 잘 즐겨주실 수 있을까, 불안하기도 했었죠. 첫 번째 신이 끝나고 다음 신으로 넘어가는 암전 상태에서 대기하고 있을 때였어요. 그때도 저는 계속 긴장한 상태였는데, 아주머니 한 분이 이야기하시는 게 들리는 거예요. “나 연극 처음 봐. 너무 재밌다. 연극이 이렇게 재미있는 거였어?” 그 순간 ‘나 여기, 음성에 내려오길 정말 잘했구나’라고 생각했어요. 내가 쓴 작품을 첫 연극으로 보는 관객이 잘 즐기고 있다고 말해주니 감동이 몰려오더라고요. 그 이후로 더욱 음성 지역과 소극장<하다>에 애착이 생겼어요.
Q. 진정으로 좋아하는 일에 몰두하며 살아가는 삶이라고 여겨지네요. 마지막으로 배우님이 생각하시는 연극의 힘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사실 현장에 나가보면 연극 영화과를 졸업한 사람들만큼 비전공자도 많아요. 제 대학교 동기들이 한 24명 정도 되는데 졸업할 때 계속해서 연극의 길을 가겠다는 친구들이 반도 안 됐거든요. 전공, 비전공 상관없이 연극의 길을 택하고 끝까지 나아가려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대부분 자기 자신의 상처를 연극으로 어느 정도 치유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인 것 같아요.
적어도 저는 그랬거든요. 연극은 분명히 치유의 힘이 있거든요. 연기를 하는 사람도 지켜보는 사람도 치료를 받을 수 있어요. 이 질문을 받고 생각해 본 건데, 저로서는 괴물이 되지 않기 위해 연극을 하는 것 같아요. 세상이 너무 편해졌잖아요. 너무 자동화가 되었고, 이제는 생각마저도 AI가 대신해 줄 수 있죠. 하지만 연극은 여전히 접근성 자체가 불편한 예술이죠. 예고편은 물론 어떤 정보도 쉽게 얻을 수 없으니까요. 게다가 극장까지 찾아와서 어둡고 불편한 극장에 앉아 공연을 봐야 하죠. 극과 극 사이 짧은 긴장감이 감도는 암막의 순간도 있고요. 그 모든 순간을 견뎌내며 배우와 관객은 끝까지 함께 이야기를 이어나가야 해요. 그 시간 속에서 관객과 배우가 끝없는 상호작용을 나누게 되죠.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정서적 공유를 통해 서로에게 치유를 얻게 된다고 생각해요. 또 세상의 너무 빠르고 각박한 시스템에서 벗어나 느리고 불편한 즐거움을 누리면서 관객이 연극을 보는 것은, 단지 보는 것의 행위를 넘어서 관객도 함께 연극을 이끄는 주체가 된다고 생각해요. 이 주체성을 통해 관객도 성취감과 쾌감을 누리게 되는 것 같아요. 연극이 다 끝나고 커튼콜이 열리면 관객과 배우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쳐요. 이 행위가 서로가 서로에게 수고했다고 말해주는 감동의 인사가 아닐까요?

EDITOR 편집팀
충북문화재단 충북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본 칼럼니스트의 최근 글 더보기
해당 카테고리의 다른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