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문화예술 소통과 공감의 통로 [ㅊ·ㅂ]
‘그림 가족’이 이야기하는 ‘삶, 그림, 충북’
'박영규, 전민배 ,박현경 화백 인터뷰'

그 집은 멀리서도 눈에 띈다. 담벼락에 그려진 푸른 하늘 때문이다. 그린 지 수년이 흘러 빛이 바랬다지만 여전히 인상적이다. 담을 지나 대문 안에 들어서면 저절로 솟는 탄성. “이건 그야말로 그림의 집이네!”
건물 외벽마다 작품이 빼곡하다. 대담하리만큼 커다란 얼굴들, 서 있거나 의자에 앉은 인물들, 크고 화사한 풍경들, 캔버스에, 종이에, 또는 나무판에, 오랜 세월 그리고 그리고 또 그린 그림들……. 박영규 화백의 작품들이다. 괴산군 문광면, 이 ‘그림의 집’에는 화가 부부 박영규 씨와 전민배 씨가 산다. 그리고 나는 그들의 딸. 코로나19로 이동과 만남이 모두 조심스러워진 탓에 퍽 오래간만에야 이곳을 방문한다. 그것도 오늘은 딸로서가 아니라 인터뷰어로서다. 나 자신 역시 음성군 삼성면이라는 변방에서 그림을 그리는 사람으로서, 충북의 또 다른 변방 괴산을 묵묵히 지키며 창작에 매진하는 이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고, 전하고 싶다.
박영규 화백과 멀리서 본 화가 부부의 집. 담벼락의 푸른 하늘 그림이 보인다. 대문을 들어서자마자 눈에 들어오는 모습

박현경: 내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내 아버지 박영규 씨는 ‘그림에 미친 사람’이었다. (웃음) 그림을 그리시는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인지? 또한, 긴 그림 인생 중 변곡점을 꼽는다면?
박영규: 그림을 그리지 않으면 살 수 없으니까 그린다. 젊은 시절부터 늘 그랬다. 그림은 나에게 가장 쉬운 명상이다. 내 작품의 가장 큰 변화 지점은 전북에서 충북으로 이사 온 2006년도다. 그전엔 인물화에 푹 빠져 있었는데, 충북에서 시골 생활을 시작하면서 날마다 화구를 짊어지고 사생을 나갔다. 나의 풍경화 시대가 열린 것이다. 지금은 주로 실내에서 작업하지만, 이 지역 풍경을 그린다는 덴 변함이 없다. 충북의 시골은 경관이 정말 수려하다! 곳곳에 보석 같은 경치가 숨어 있다.
박현경: 전민배 씨는 약 3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셨는데?
전민배: 화가 남편을 오랫동안 지켜봤다. 남편이 그림 그리는 모습이 행복해 보였고, 그림에 대한 나만의 시각이 형성됐다. 청주에서 괴산으로 이사 와 자연 속에서 살다 보니 마음이 한층 자유로워졌다. 그러면서 내가 접한 환경 속 작은 부분들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했다. 나도 직접 표현하고 싶어 날마다 그림을 그려 페이스북에 올리게 됐다. 그림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는 것이 즐겁다. 무엇보다도 그림을 그리는 시간 자체가 편안하고 고요해서 좋다.
박현경: 각자 그림에서 추구하는 것을 이야기해 달라.
박영규: 내가 추구하는 건 자연을 보고 어떤 의도를 가미하지 않고 나의 눈에 보이는 대로 표현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새롭게 발견하며 삶의 희열을 느낀다.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면 삶을 이토록 아름답게 바라보진 못했을 것이다.
박현경: 박영규 씨의 그림은 거칠고 빠른 필치가 특징인데, 이것은 ‘눈에 보이는 대로 표현하는 것’과 어떻게 연결되나?
박영규: 눈에 보이는 대로 고스란히 표현하려다 보니 나이프 놀림이 빠를 수밖에. 자연의 표정은 순간순간 바뀐다. 현장에서 그릴 때는 물론이고 사진을 보고 그릴 때도 나이프 터치가 느슨해지면 자연의 순간적인 아름다움을 포착하기 어렵다. 물감을 팔레트에서 섞은 후에 칠하는 게 아니라, 캔버스에 곧장 발라 서로 다른 색깔이 병치되거나 겹쳐져 어우러지게 하는 것도 속도감을 살리고 자연 속 색의 스펙트럼을 보다 생생히 표현하기 위해서다.
박현경: 붓을 쓰지 않고 나이프로만 유화를 그리는 것도 속도와 관련 있나?
박영규: 그렇다. 숲속이나 들판 등 자연 속에서 사생을 할 때 붓이 거추장스러웠고 최대한 자유롭게 빠른 속도로 그리려다 보니 나이프로만 그리게 됐다.
박현경: ‘어떤 의도도 가미하지 않으려’ 한다는 말이 인상적이다. 나는 ‘어떻게 변형할까?’ 고민하며 의도를 넣는 데서 희열을 느끼기 때문이다. 우린 서로 달라도 너무 다르다!
박영규: 다르다. 그렇지만 아주 깊은 데서 서로 통한다고 본다.
전민배 화백과 그녀의 작품들

박현경: 서로 달라서 더 좋다. 전민배 씨의 그림에는 아이들과 동물들이 많이 등장하는데 이런 소재의 선택은 전민배 씨가 그림에서 추구하는 바와 관련이 있을 것 같다.
전민배: 이 세상은 폭력적이다. 나는 폭력이 너무 싫다. 이 폭력적인 세상에서도 모든 존재가 평화롭기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그림을 그린다. 그게 바로 내가 추구하는 바다. 아이들과 동물은 가장 가식 없는 존재들이다. 이 가식 없는 존재들에게서 절절하게 느껴지는 감정, 그 존재들 간의 유대감이 좋다. 특히, 슬픔이나 생각에 잠긴 어린이의 모습을 그릴 때는 이유 없이 고통받는 존재들에 대해 사람들이 관심을 갖게 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는다. 그런데 너무 우리 이야기만 하는 것 같다. 박현경 씨의 이야기도 우린 궁금하다. 최근 프랑스 만화 잡지에 작품이 실린 것으로 알고 있는데?
박현경: 프랑스어로 소통하는 것을 좋아해 프랑스어권 미술인들과 지속적으로 교류하고 있다. 그러던 중, 다양한 작가들의 자전적 만화를 담아내는 프랑스 독립만화 잡지 ‘Egoscopic(에고스코픽)’의 발행인으로부터 올해 초 참여 제안을 받아 만화 작업을 했다. 계속 그림을 그려 왔지만, 만화를 그리는 것은 대학생 때 학보에 만평을 연재한 이후 처음이라, 작업하는 내내 마치 옛 친구를 십수 년 만에 다시 만난 듯 반갑고 즐거웠다. 원고는 이미 보냈고 곧 책이 나올 것이다.
전민배: 기대된다. 박현경 씨는 꾸준히 독특한 그림들을 그리고 있는데, 박현경 씨가 그림에서 추구하는 것은 무엇인가?
박현경: 나의 그림들을 ‘삶에 대한 어떤 해석’이라 부르고 싶다. 아마도 이것이 내 다음 전시의 제목이 될 듯하다. 삶 속에서 내게 다가오는 온갖 느낌, 삶에 대한 내 나름의 해석을 핍진하게 포착해 표현하고자 한다. 내가 그린 그림들이 보는 이들의 마음에 가 닿아 삶에 대한 또 다른 해석으로 이어지길 기대한다. 내가 대답하다 보니 얼마나 어려운 질문인지 알겠다. 얼른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겠다. (웃음) 두 분은 지난 1월 지역 신문에 소개됐다. 박영규 씨가 그림 판매 금액을 청소년들을 위한 장학금으로 기부해 온 일에 대해서였다.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박영규: 약소하지만 현재까지 2천5백여만 원을 80명 정도의 지역 청소년들에게 장학금으로 전달했다. IMF 사태 이후 경제적으로 어려웠을 때 우리 딸들이 장학금을 받아 큰 도움이 됐었다. 내 가 겪어 본 어려움이기에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정에 조금이라도 힘이 되어 드리고 싶어 이 일을 계속하고 있다. 앞으로도 나의 그림을 매개로 지역 청소년들에게 힘이 되어 주고 싶다.



박현경: 작품 활동으로 누군가에게 힘이 될 수 있다는 건 창작의 소중한 동력이 될 것 같다. 아울러, 작품을 매개로 사람들과 소통하는 경험 역시 창작자에게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그림을 통해 소통한 경험을 이야기해 달라.
박영규: 잘 알다시피 내가 아주 사교적인 성격은 아니지 않나. (웃음) 그러다 보니 외부 활동을 많이 하진 않지만, 서울 인사동과 청주에서 연 개인전, 가끔씩 참여하는 단체전 등 주로 전시회를 통해 소통했다. 특히 2018년 청주에서 딸 박현경과 함께한 2인전 때는 청소년 관람객이 유난히 많아 청소년들과 그림에 대해 대화하는 귀한 시간을 가졌다.
박현경: 앞으로의 전시 계획은?
박영규: 뚜렷이 정해 놓진 않았지만 다음번에는 아내와 2인전을 열고 싶다.
박현경: 두 분의 창작에 ‘충북’이라는 공간이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는 것을 앞서 확인했다. 충청북도에서 살아가면서 아쉬운 점 또는 바라는 점은 없는지?
전민배: 충북에 와서 청원군, 음성군, 청주시에 살았었고 지금은 괴산군에 살고 있는데, 그 네 곳 모두에서 아름답던 자연이 개발로 훼손되는 모습을 목격했다.
박영규: 친구처럼 여기며 몇 번이고 그림으로 그린 나무들이 잘려 나가는 걸 볼 때 속상하다. 개발이 필요한 경우도 있겠지만, 충북의 수려한 자연이 보다 소중히 지켜졌으면 한다.
박현경: 마지막으로, 두 분 각자의 포부를 말해 달라.
전민배: 내가 미숙한 탓에 아직은 내 눈에 보이지 않고 표현해 낼 수 없었던 섬세한 감정을 찾아내 아름답고 정확하게 표현하고 싶다.
박영규: 남아 있는 삶 동안 자연의 정수(精髓)를 그려 내고 싶다.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따로 또 같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그림의 집’에 사는 화가 부부는 오늘도 나란히, 그러나 서로 다른 방식으로 그림을 그릴 것이다. 나는 또 내 조그만 작업방에서 ‘삶에 대한 어떤 해석’을 표현할 것이다. 코로나19로 인해 서로 만나고 나누는 기회가 많이 위축된 상황에서도, 이 땅 구석구석 각자의 자리에서 외롭고 치열하게 창작을 하는 이들이 있다. 그 외롭고 치열한 순간들이 모여, 척박한 세상을 조금이나마 살 만하게 만드는 자양분이 된다. 그렇게 우리 모두가 ‘따로 또 같이’ 이 땅의 문화 예술을 일구어 가고 있음을 곰곰이 되새겨 본다.

EDITOR AE류정미
충북문화재단 충북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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