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문화예술 소통과 공감의 통로 [ㅊ·ㅂ]
단양에 뿌린 예술 씨앗, 청춘극장
'척박한 땅에 씨를 뿌리기로 결정했다'

극장을 세우고 싶었다. 우리만의 극장을 만들어 공연도 하고 너도나도 연극을 올리고 싶어 하는 공연장을 만들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필요했다. 연극을 할 사람, 연극을 만들 사람... 등등. 하지만 이곳 단양에서 특히나 연극을 ‘할’ 사람을 찾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다. 그렇다고 서울에서 사람들을 데려오고 싶지는 않았다. 전문성에 기대야 할 부분이 분명히 있겠지만 처음 충북 단양 영춘에 내려와 극단을 만들면서 가진 목표인 ‘우리만의 공연’에는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혹시나 영춘에 연기에 피 끓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로 단양 영춘의 마을 주민을 대상으로 단원을 모집했다. 포스터도 붙이고 영춘면사무소에 도움도 요청했다. 홍보를 시작하고 한 달 동안 4명의 단원이 모였다. 조촐하게 느껴질지 모르겠지만 연극을 ‘하기 위해’ 모여준 이 4명의 단원들은 너무나 든든한 지원군이었다. 4명의 단원 외에도 연극에 참여는 못하지만 본인의 컨테이너를 공연장으로 쓰도록 열어주시기도 했다. 조용했던 단양 영춘에서 청춘극장이 떠들썩한 첫 발자국을 떼게 되었다.
청춘극장 단원 연습 모습

단원들 모두 자기 일을 하는 자영업자여서 자주 모일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매주 1번에서 2번 정도 모두 모여 발성 연습, 움직임 연습을 했다. 매달 1번씩은 단원들과 주민들을 모시고 현직 연극배우와 연출가를 초청해 연극에 대한 특강을 열기도 했다. 그러면서 우리에게 맞는 대본을 찾아보았다. 이 적은 인원으로 할 수 있는 연극이 도대체 뭐가 있을까. 음향과 조명, 연출까지 빼고 나면 남는 배우는 딱 3명뿐이었다. 고민 끝에 연극 <절대사절>을 선정했다. 단 세 명이서 끌어가는 극이다 보니 대사 연습이 잘 될 것 같다는 판단에서였다. 대본은 정해졌고 대본 연습에 들어가려는데 문제가 발생했다. 출연하는 배우가 3명뿐이다 보니 대사량도 많고 대사를 하면서 연기까지는 하는 것이 단원들에게는 부담이 되는듯했다. 모두들 열정이 넘쳤지만 전문 배우가 아닌지라 무척이나 힘들어했다. 그래서 본 공연은 뒤로 미루고 움직임 없이 앉아서 할 수 있는 낭독극의 형태로 진행하게 되었다.
단원들이 직접 홍보 포스터를 만들어 붙이고 발품을 팔아가며 홍보를 했다. 주민들이 많이 도와주신 덕분에 작은 카페에서 의자 몇 개를 두고 낭독극을 진행할 수 있었다. 청춘극장의 첫 공연이 올라갔다. 낭독극은 생각보다 좋은 반응을 얻었지만 적은 인원 탓에 장기 공연을 할 수 없었고 단 3회의 공연을 할 수 있었다. 역시 이 작은 인원으로는 분명 한계가 있었다. 아직까지는 연극에 관심은 있지만 연기를 해야 한다는 막연한 두려움에 더 이상 단원으로 지원하는 사람들조차 없었다. 단원들을 더 모을 수 있는 방법이 필요해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가 심해져 공연을 할 수도 없게 되어버렸다. 가장 힘든 시기에 위로가 될 수 있는 건 문화 예술이 아닐까 생각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답은 연극이었다. 하지만 코로나로 힘든 시기에 무료 공연이라 한들 모임조차 할 수 없는 시기에 공연을 올릴 수는 없었다. 그럼에도 연습은 쉬지 않았다. 최소한의 인원으로 공연을 올리기 위해 배우는 단 두 명, 그리고 연출 한 명. 이렇게 세 명이 연습을 계속했다. 코로나가 곧 끝날 것이라고 기대하며... 한동안 연습만을 계속하던 2020년 6월 즈음 코로나가 잠시 주춤하며 소강상태를 보였다. 마침 마을 주민이 창고로 쓰는 컨테이너를 공연장으로 빌려주었다. 단양군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청춘극장의 (낭독극을 제외하고) 첫 연극 ‘왔소’였다.
보건소에서 방역을 하고 거리두기로 인해 많은 인원이 들어올 수 없는 작은 컨테이너였지만 열광적인 환호를 받으며 공연을 마칠 수 있었다.
청춘극장 첫 번째 낭독극<절대 사절>공연 연습현장

씨앗을 뿌리고 물을 주며 봄이 오기를 기다린다.
수도권이야 문화예술의 홍수 속에서 가고 싶은 공연장, 미술관을 골라 갈 수 있지만 단양은 접하기도 힘든 지역이었다. 흔한 영화관조차 없고 미술관은 차로 2시간은 나가야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만의 연극을 할 수 있을까. 연극 <왔소>야 두 명의 배우로 공연을 했다지만 앞으로 계속 2인극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처음 단양에 내려오며 가진 목표는 극장을 세우는 것이었지만 그 이상을 위해서는 공연, 그중에서도 연극을 좀 더 친근하게 만들 필요가 있었다. 무슨 방법이 있을까? 살면서 농사도 지어보지 못한 사람들이 모여 척박한 땅에 씨를 뿌려야 하는 상황이 되니 밭을 어떻게 갈아야 할지 어떤 씨를 심어야 할지 모든 것이 고민이 되었다.
연극이 가지는 매력은 참 많다. ‘연극 좋아하세요?’라는 물음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네, 좋아해요.’ ‘한번 보고 싶어요’ ‘본 적은 없지만 재미있을 거 같아요’ 들의 대답을 많이 한다. ‘같이 연극해보실래요?’라고 묻는다면, 10명 중 8명 정도는 두 손을 설레설레 흔들며 뒷걸음질을 칠 것이다. 무기를 들지 않고도 상대방을 긴장하게 할 수 있는 최고의 질문이 아닐까?
청춘극장 두 번째 연극<왔소> 포스터와 공연현장 모습

이렇다 보니 연극을 친근하게 하기 위해 우리의 선택은 연극 수업이었다. 그것도 초중고 학생들을 위한 연극 수업. 성인들을 대상으로 수업을 진행해 단원을 빠르게 늘릴 수도 있었겠지만 학생들에게 연기의 ‘맛’을 보여주고 문화예술을 가깝게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뭐 10년 뒤쯤 청춘극장의 단원으로 데려와 함께 하고 싶은 약간은 불순한 의도가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우연찮게 단양교육지원청에서 진행하는 마을학교 프로그램을 알게 되어 우리의 의도를 전하자 교육지원청 쪽에서는 열렬한 환영을 해주었다. 학교에 수업이 들어갈 수 있도록 홍보도 해주었고 고등학교 중학교 진로상담에도 들어가 학생들과 만나며 연기에 대한 연극에 대한 진로를 상담할 수 있게 해 주었다. 단양지역의 초등학교와 중학교에 들어가 연극 수업을 진행했다. 처음에는 말도 안 하고 소심하던 친구들이 시간이 지나며 대본을 읽고 자신의 연기를 하는 모습을 보며 너무나 큰 가능성을 보았고, 10년 후 청춘극장의 모습이 그려지는 듯도 했다.
연극의 씨는 호기롭게 뿌렸다. 문제는 이 친구들이 커서 청춘극장에 올 때까지 극단을 지속하는 것이었다. 이제는 정말 성인 배우들이 필요해졌다. 씨앗이 아닌 모종이 필요해진 것이다. 이왕이면 꽃이 피기 전 바로 그것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없었다. 없다면, 만들면 되지. 성인들을 위한 연극 수업을 만들기로 했다. 우리가 직접 꽃을 피워보리라. 처음으로 충북 문화재단의 지원금을 신청했다. <지역특성화문화예술지원사업> 딱 우리와 맞는 지원금이 아니었을까. 이것은 운명이라고 생각했다. 한 번도 써본 적 없는 신청서를 받아들고 문제지에 답을 쓰듯 빈칸을 채워갔다. 화려한 미사여구를 쓸 여유도 없이 벼락치기도 못한 수험생마냥 휘리릭 신청서를 낸 것이다. 초조하기는 했으나 기대는 할 수 없었다. 느닷없이 선정되었다는 연락이 왔다. 또한 단양군 평생학습센터에서 강의실과 공연장을 쓸 수 있게 도와주겠다는 연락을 받았다. 마음이 급해졌다. 홍보물도 만들어야 하고 수업 계획안도 재정비를 해야 했다. 단양을 홍보할 수 있는 연극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평생학습센터에서 *다자구 할머니라는 설화를 연극으로 만들어 보는 것을 추천했다.
단양교육지원청에서 지원한 마을학교 연극 발표회(가평초등학교 고학년)

<다자구할머니 이야기> 조선시대 초기 산길이 험한 죽령골에 도적들이 많아 지나가는 백성들을 약탈하는 사건이 빈번했다. 길도 험하고 미로 같은 곳이었기에 관군들로도 도적들을 잡기 어려웠다. 어느 날 홀연히 나타난 할머니가 묘책을 내어 산을 돌아다니며 다자구야~ 들자구야~를 외쳐대었고 도적들은 정신이 나간 할머니라고 생각하고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 도적 대장의 생일잔치로 먹고 마시며 곯아떨어진 도적들을 확인한 할머니가 다자구야! 라고 소리치자 숨어있던 관군들이 잠든 도적들을 일망타진했다.
어르신과 젊은 세대 간의 연결 고리가 없는 지금, 할머니의 지혜로 도적을 잡아낸 내용을 바탕으로 현실의 문제를 어르신의 지혜로 해결해 나가는 이야기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대본을 바로 만들지 않았다. 전문 작가에게 맡기면 좋은 퀄리티의 대본을 나올 수 있겠지만 단양 주민이 주체가 되어 연극을 만들어가기로 한 만큼 연극 수업을 위해 모인 수강생들과 함께 이야기의 주제를 정하고,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함께 고민하기 위해서였다. 충분한 토론이 이뤄지고 나온 이야기를 바탕으로 연극 대본을 만들 예정이다. 성인반뿐만 아니라 학생반도 함께 개설해 학생들의 재기 발랄한 의견으로 새로운 다자구 할머니 이야기를 만들어 볼 계획에 있다. 전문작가의 강의를 통해 함께 토론하고 만들어가는 진정한 우리의 연극을 만들어보려 한다. 이 연극 수업이 단양군 주민들의 앞으로의 연극 관람의 주례사가 되기를 희망해본다.

EDITOR AE류정미
충북문화재단 충북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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