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문화예술 소통과 공감의 통로 [ㅊ·ㅂ]
그럼에도 우리에게 내일은 있다
'이 시대, 이 땅의 청년 예술가들을 위한 이야기'


예술이란 차암 고즈넉하고 여유롭답니다
“국세와 지방세를 따로 내야 하는 거예요?”
“네. 국세는 홈택스, 지방세는 위택스입니다.”
“제가 당장 통장이 없는데, 가족 것으로 신청하면 안 되나요?”
“안됩니다. 본인 명의의 통장만 가능합니다.”
“선생님! 예술인 고용보험금을 계산했는데, 값이 이상해요!”
“계약서를 보니까 단기 예술인인데, 혹시 전체 금액에서 80%를 곱하셨나요?”
예술 행정은 전화로 시작해서 전화로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침에 출근하고, 저녁에 퇴근하기 전까지 내 전화기는 잠시도 쉬지 않는다. 매일 전화를 통해 설명과 상담을 반복하다 보면, 새삼 내가 이렇게 말을 많이 할 수 있는 존재였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많은 사람들은 전시나 공연, 인쇄물을 보면서 예술이 가진 우아함과 기품을 먼저 마주한다. 그러면서 예술인과 그들을 보조하는 예술 행정 역시 여유로우면서도 고즈넉한 삶을 살 것이라 짐작하곤 한다. 안타깝게도 이 땅의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것이 으레 그렇듯, 그 실상은 생각 보다 녹록지 않다. 수많은 제출 서류 중 하나가 없어서 전전긍긍하고, 몇 십 원단위 계산이 틀려서 처음부터 일일이 계산한 적도 있다. 여유로움? 고즈넉? 어떻게 보면 예술과 가장 거리가 먼 개념일지 모른다. 예술은 그 한순간의 아름다움을 위하여 생각 이상으로 처절하고 바쁜 시간을 거친다.
특히 이제 막 대학을 졸업한 청년 예술인에게 이 모든 것은 낯설다. 거기다 코로나19 장기화로 다른 해보다 예술가가 활동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안 그래도 가장 어려운 시기에, 난생처음 시행착오를 거치는 과정이 쉽겠는가. 그럼에도 그들은 이 땅에 조금은 특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들이 ‘청년’이기 때문이다.
2021 청년예술가창작지원사업 선정자 양도혁의 전시 STILL; LIFE 스틸라이프展

문화로 성공한 나라, 문화가 사라진 지역
21세기, 문화는 가장 큰 산업이자 국력이 됐다. BTS의 노래 한 곡에 전 세계가 들썩이고, 우리 한국인이 구성한 드라마나 영화로 어마어마한 외화를 벌어들이고 있다. 이처럼 문화와 예술이 고부가 가치 산업이 된 시대가 왔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해가 갈수록 예술 관련 학과는 줄어들고 있는 상태다. 이미 많은 예술학과가 통폐합되었으며, 남아 있는 학과 역시 그 존치가 여러모로 불투명한 상황이다. 갈수록 줄어드는 신입생과 낮아지는 취업률 탓에 어쩔 수 없다고들 하지만, 상반된 뉴스를 연속으로 접하다 보면 씁쓸한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예술학과가 줄어드는 것은 단순히 이 땅의 예술가가 줄어드는데 그치지 않는다. 그들로 인해 지역에 유입될 수 있었던 독자와 관객 역시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시간이 갈수록 고령화는 심화되고 있으며, 이는 결과적으로 예술계의 정체를 낳는다. 끊임없이 새로운 시선으로 작품을 소비하여 해석할 누군가가 없이, 늘 똑같은 인원으로 진행되는 예술에 생생한 활기와 변화는 찾아오지 않는다.
2021 청년예술가창작지원사업 선정단체 코커핸즈의 코커핸즈 1st단독공연 '청춘'

그런 의미에서 지역에서 활동하는 청년 예술가는 고여 가는 웅덩이에 내린 단비와 같다. 그들은 지역 예술계의 계보를 잇는 것뿐만 아니라, 전에 없었던, 우리가 몰랐던 문화를 개척하는 존재들이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지역 내의 지원은 한정되어 있고, 그들을 정착화 시킬 공간이나 수단도 부족하다. 거기다 코로나19 장기화로 예술계가 전반적으로 어려워지면서, 청년 예술가들을 향한 지원에 대해 불편한 의견을 내비치는 경우 역시 존재한다. 코로나19 이전의 시대는 영영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선고는 이미 내려졌다. 바닥을 찍은 출산율과 취업률이 갑자기 뛸 가능성은 드물고, 통폐합된 예술학과가 다시 부활하는 일도 어려울 것이다. 모든 것이 어렵기만 한 지금, 과연 우리가 도착하게 될 곳은 결국 어디일까.
2021 청년예술가창작지원사업 선정자 최규의 피아노 리사이틀 "PARFUMS de FRANCE"

오늘과 싸워나가는 모두를 위하여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지역 예술계의 미래가 마냥 어둡다고 생각은 하지 않는다. 앞서 우중충한 이야기를 잔뜩 꺼내놓고 이런 이야기를 해서 조금은 의아스럽게 생각할지 모른다. 물론 현 상황이 어렵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실제로 많은 청년 예술가가 활동을 하는 데 있어 난항을 겪기도 했다.
그래도 현장에서 예술가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그들에게서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자신의 활동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그들에게서는 무언가 글로 풀어 설명하기 힘든 이글거리고 빛나는 무언가가 있다는 점이다, 세금 계산이 어려워 고생하던 사람이 자신의 작품 하나하나를 짚어주며 다양한 예술관을 설명하고, 장소를 찾기 어려워했던 단체가 어렵사리 빌린 공연에서 무대를 쩌렁쩌렁 울리는 공연을 할 때, 나는 사람 대 사람으로서 그들에게 존경심과 경이를 느낀다. 그리고 모든 복잡한 계산과 수치를 덮어 둔 채, ‘이들이라면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확신이 들게 된다.
2021 청년예술가창작지원사업 선정단체 마음짓의 연극 '페르소나'

그렇기에 나는 지금 우리에게 놓인 오늘과 감히 싸워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모든 것이 갑자기 획기적으로 바뀌진 않겠지만, 그래도 이 땅에는 예술을 하는 청년들이 남아 있다. 그들은 모두가 힘들다고 외치는 순간에도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아간다. 그 계보가 조금 더 굳게, 그리고 길게 이어질 수 있도록 돕다 보면 어쩌면 모두가 예측하지 못한 곳에 도달할지도 모른다. 이것이 우리가 절대 멈춰서는 안 되는 이유기도 하고, 멈출 수도 없는 이유기도 하다. 아무리 무성한 숲도 결국은 씨앗 한 줌에서 시작하지 않았는가. 나는 이 모든 것을, 모두가 힘들다고 외치는 이 순간에 자신의 예술을 완성해 낸 청년들을 통해 배웠다. 그렇기에 과감히 말하고자 한다. 그럼에도 우리에게 내일은 있다, 라고.

EDITOR AE류정미
충북문화재단 충북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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