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문화예술 소통과 공감의 통로 [ㅊ·ㅂ]
보은의 작은 민간미술거점 ? 잘그림
'이현숙 작가 인터뷰'

예술인들이 도심으로 몰려드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특히 청년의 경우 도시에서 사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인다. 이는 예술인들에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다. 우리나라의 도시 밀집 현상은 이미 오래전부터 심각해진 사안이고 많은 지자체에서 이를 극복하기 위한 여러 정책을 시도하고 있다. 몇몇은 좋은 효과를 발휘했지만, 아직도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이동하는 청년들의 삶에 크게 영향이 있어 보이진 않는다. 예술인의 경우 예술로 삶을 영위하기 힘들기에 많은 ‘알바’가 필요하다. 단순 창작활동으로는 생계를 유지하는 것조차 힘들기에 많은 이들이 문화예술 저변으로 활동을 확대하며 여러 ‘알바’를 통해 삶을 유지하고 창작을 이어나간다. 지역에서는 이런 예술가들을 언젠가부터 도농 지대, 소도시 등으로 파견하듯 보내는 사업들이 종종 생겨났다. 이 또한 예술가 혹은 청년들을 초대하기 위한 기관들의 노력일 것이다.
보은은 인구 3만 2천여 명이 사는 군 단위 지자체이다. 이곳에 살며 활동하는 청년 예술가가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녀는 서울에서 활동하다 고향으로 돌아온 사례였다. 과연 이 예술가가 어쩌다 보은으로 왔고 이곳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이현숙 작가의 공간, <잘그림>으로 찾아가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안녕하세요. 이현숙 선생님. 이곳은 어떤 곳인가요?
안녕하세요. 이곳은 <잘그림>이라는 곳이에요. 아이들을 가르치고 원데이 클래스를 열거나 제가 그림을 연구하기도 하는 공간입니다. 어린아이들부터 청소년, 20대~30대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와서 그림 그리는 활동을 하고 있어요. 아동들은 보통 정규반으로 교육이 이루어지고 다른 연령대는 짧은 과정 등이 있어요.
이현숙작가와 교육활동모습

그렇군요. 보은에서 활동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사실 보은은 제가 자란 곳이에요. 처음에는 몸이 좋지 않아 보은으로 돌아오게 되었어요. 그러다 뭐든 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 <잘그림>을 열게 되었지요. 제가 어릴 때도 보은에는 미술을 배우거나 경험할 수 있는 곳이 없었어요. 저처럼 그림을 배우고 싶어 하는 아이들은 지금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곳에서 대학교 입시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의 그림을 배우거나 경험해 볼 수 있도록 도와주고 젊은 감성의 미술 공간도 만들어지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공간을 만들게 되었어요. 창작활동도 하고 싶지만, 생각보다 이곳의 활동이 바쁘다 보니 많이 뜸해지고 있네요. 계획을 좀 더 세워야 할 것 같아요. 부지런해져야겠어요.
보은에 미술교육 공간이 거의 없다는 이야기가 안타깝네요. 그래서 학원으로 활동을 하신 건가요?
사실 처음에는 작은 공간에서 시작했어요. 그곳에서 제 창작 작업을 하며 몇 명 오지 않아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공간을 열었는데 아이들이 점점 많아지게 되었어요. 지금 이곳은 제가 카페를 운영하던 공간인데(카페도 함께 운영하고 있었어요.), 이곳으로 확장하게 되었어요. 청주나 세종을 가보면 공방이나 미술을 체험하며 카페를 즐길 수 있는 복합공간이 많은데 그런 공간을 만들어 보자는 생각이 들어 카페를 하던 이곳에 시도하려 했지만, 카페에서는 어린아이들을 가르칠 수가 없더라고요. (법적으로) 그래서 학원으로 허가를 받고 운영하게 되었어요. 아쉽지만 지금은 원데이 클래스로 체험을 제공하고 아이들과 함께 정기적으로 만나고 있습니다.
잘그림 공간 내부

복합문화공간을 지향하지만, 아이들을 가르치는 공간이기에 학원의 사업자를 갖게 된 것이군요.
지역에서 활동하면서 어려운 점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나요?

지역에는 아무래도 다양한 미술을 경험할 수 있는 곳이 부족해요. 미술관에 가고자 해도 다른 지역으로 가야 하죠. 하지만 아이들과 함께 이동하려면 여러 가지 준비해야 할 것도 많고 보호자 중에는 원하지 않을 분들도 있더라고요. 지금은 인터넷과 프린트 등으로 작품 이미지를 보여주곤 하는데 많이 아쉬운 부분이에요. 미술 재료를 구할 때도 어려움이 있지요. 물론 인터넷으로 구매할 수 있지만 실제로 보고 따져보는 게 아니라 선택적으로 구매를 하는 것이라 한계가 있어요. 가장 아쉬운 부분 중 하나가 아무래도 젊은 예술가가 많지 않다는 것이에요. 이런저런 고민을 나누고 교류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좋을 텐데 지역에는 사람이 많지 않다 보니 함께 할 수 있는 사람들을 찾는 것도 힘들기 마련이에요.
미술 교육을 하며 느낀 지역의 특성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최근 들어 지역 청소년들과 많이 이야기하는 나누는 주제가 SNS(유튜브) 활동이에요. 도시의 청소년들은 SNS를 활용하여 자연스럽게 크리에이터가 되거나 온라인을 통해 많은 활동을 하지만 이곳의 청소년들은 그 정도로 넓은 상상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단순한 예로 동영상 크리에이터가 되어 보는 것은 도시의 청소년들에겐 아무렇지 않은 일이지만 제가 만난 보은의 청소년들은 그렇게 만들어진 영상을 보는데 급급한 것이었지요. 이런 차이가 저는 안타깝게 느껴졌어요. 이미 초등학교 때부터 태블릿PC가 익숙한 아이들이 지금의 청소년들인데 보은에서 자란 아이들은 그런 부분에서 많이 뒤처져 있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래서 저도 유튜브 활동을 하고 있는데, 이들에게 제가 활동하는 모습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것도 교육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해요. 하지만 저도 자주 업로드를 하진 못하고 있네요...
교육을 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제가 수업을 하면서 가장 다짐하는 것이 이야기를 최대한 많이 나누자는 것이에요. 대화를 많이 나누면 그 사람에 대해 알게 되고 개개인이 저마다 다른 속도로 성장한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이 부분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며 아이들을 대하고 있어요. 그래서 많이 기다려 주려 하지만 오히려 학부모들께서는 답답해하시기도 하더라고요. 그래도 제가 교육에서 가장 염두에 두는 부분이에요.


앞으로 계획하고 있는 일이 있나요?
지금은 아이들과 함께 이모티콘을 만들고 출시해 보는 활동을 계획하고 있어요, 출시가 가능할지는 미지수지만 시도해 보는 것이 아이들에게 좋은 영향을 줄 것 같다는 생각을 해요. 이처럼 아이들의 저작물이 웹을 활용해서 선보이는 것을 계획하고 있어요.

보은에서 만난 이현숙 작가는 창작 작업의 욕구와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교육철학을 가진 예술가의 모습이었다. 귀향을 하는 청년예술가의 경우, 생계와 창작을 나누고 활동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현숙 작가의 경우 스스로만을 위한 창작공간이 아닌 ‘보은에 없는 어떤 공간’을 꿈꾸며 거점을 만들어 내고 있다. 교육자로서 활동하는 이야기를 듣고 있자면 우리가 알고 있는 기능 교육 위주의 학원이 아닌 문화예술교육을 하고 있는 거점 공간의 성격이 짙었다. 다만 사업자의 형태, 활동의 소개법 등에서 민간 교육공간의 언어를 사용할 뿐 이야기를 깊게 들어주고 지역의 청소년들을 염려하는 마음은 이미 학원교육을 넘어선 활동으로 보인다.
언젠가부터 예술가들에게 읍면 단위의 문화 소외 지역으로의 이동을 강요하는 풍토가 만들어지고 있다. 물론 이들이 그런 지역에 가서 활동한다면 많은 이들에게 이로울 수 있다. 하지만 무작정 예술가를 파견하듯 보낸다면 그들은 그들을 위한 활동만을 지속하거나 지역을 대상 삼아 이용하는 사례만 만들어질 뿐이다. 이현숙 작가의 보은처럼 그곳에 무엇이 필요한지, 그곳에 사는 이들은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를 사려 깊게 생각하고 곁을 내주는 방식의 활동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다면, 아마도 영혼은 도시에, 몸은 시골에 가 있는 예술가가 더욱 많아지지 않을까. <잘그림> 이현숙 작가의 활동을 응원한다.

EDITOR AE류정미
충북문화재단 충북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본 칼럼니스트의 최근 글 더보기
해당 카테고리의 다른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