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문화예술 소통과 공감의 통로 [ㅊ·ㅂ]
그루, 2021년 괴산의 마을굿과 꼬레디시
'Coree d’ici : 여기에 한국이 있다'


괴산의 풍물패 문화공간 그루, 코로나 시국을 이렇게 살아내고 있습니다.
2020년은 참 지루했습니다. 행사와 공연은 줄줄이 취소되고 연기되었습니다. 작은 고을 괴산, 확진자가 한 명이라도 나오면 순식간에 공기까지 얼어붙는 것 같았습니다. 농부시장의 길놀이도, 홍범식 고택 행사, 찾아가는 문화활동 공연을 50명 미만 적은 수의 사람들 앞에서 어찌어찌 마쳤습니다. 공연예술창작활성화 사업, 정기공연은 아예 무관중으로 진행했습니다. 관객 없는 풍물굿 공연은 아무 대답 없는 메아리처럼 허무했습니다.
2021년, 정월대보름맞이부터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몇 집만 조용히 돌면 어떨까요?” 문광면 송평리 이장님께 말씀을 드리니 “그래, 조심조심 한번 놀자!” 하고 흔쾌히 허락해 주셨습니다. “돈 안 주셔도 됩니다. 나중에 쌀로 주세요.“ 그렇게 그루 연주자 6명과, 기획자, 음향 담당 8명이 모였습니다. 그루가 처음으로 진행한, 지원금 없는 공연이었습니다. 마을 어르신들은 오랜만에 울리는 풍악소리라고 반가워하셨습니다. 마을의 십분의 일, 여섯 집을 돌고 나니, 10만 원씩 나눠가지고도 남을 돈과 쌀이 생겼습니다.
문광면 송평리 대보름굿

다음날 우리는 함께 장연면의 느티나무를 보러 갔습니다. 커다란 나무를 보니 숨통이 트였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 따위, 연연하지 마라~” 오랜 세월을 그 자리에서 묵묵히 마을을 내려다보던 나무 세 그루는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올해는 꼭 이 느티나무 아래에서 공연을 하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하지만, 코로나 초기에 전국적으로 유명해지며 마을이 폐쇄되기까지 했던 장연면에서는 외부 사람들이 와서 공연하는 것에 대해 걱정이 많으셨습니다. 결국 마을의 의견을 존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찾아가는 문화활동 공연은 문광면 방성리에서 했습니다. 방성 2구 이장님께서 동네의 커다란 느티나무가 벼락을 맞았다고 했습니다. 이후에 사람들이 다치고, 아팠다고 합니다. 나무에 막걸리라도 한번 뿌려야 하는 것 아니냐고들 하셨다는 이야기에, 바로 공연 날짜를 잡았습니다. 마을 입구에서부터 길놀이를 하고 들어와 마을회관 앞 마당에서 고사를 지내고 사물놀이 공연과 춤, 사물판굿 공연을 하였습니다.
左)장연면 오가리 느티나무 右)방성2구 벼락맞은 느티나무

지역문화진흥원에서 지원받은 2021 괴산의 마을굿 (아름드리나무 아래 아름다운 사람들) 사업은 장연면의 느티나무를 보며 기획한 행사입니다. 큰 나무가 있는 마을에 들어가 마을 사람들과 공연을 만들어 놀아보자 했습니다. 농촌마을이라면 마을 사람들이 함께 노는 마을굿이 있었을 테니까요. 문화재 복원하듯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어르신들의 말씀을 들어보고, 함께 만들고 함께 놀아보자는 작전이었습니다.
우리는 농촌으로 귀농한 사람이 많고 다양한 활동을 활발하게 하고 있는 청천면 이평리에 찾아갔습니다. 한창 일 많은 5월, 마을 청년 이제성 님과 그곳 풍물패 동아리 전대영 님과 만나 술도 마시고, 이야기도 많이 나누었습니다. 하루는 어르신들 인터뷰한다고 갔다가, “이런 건 한가할 때 해야지, 일 많을 때 찾아와서 바쁜 사람 붙들고 뭐하는 짓이냐”라고 부녀회장님께 된통 혼나기도 했습니다. 다 맞는 말씀이라 반박도 못하고, 그렇다고 사업을 포기할 수도 없어 난감한 순간이었습니다.
左)마을굿 공연 전날 연습을 마치고 右)코로나 썩 물럿거라 송이 대박 청천면 어평리 마을굿

정부 지원사업은 2월에 시작하여 11월에 마칩니다. 그리고 12월까지 정산 시즌입니다. 괴산은 절임배추를 하는 농가가 많아 11월까지 농번기이고, 12월 초에 집집마다 김장을 한 후, 12월 하순이 되어야 대동계를 하며 농한기가 시작됩니다. 1월, 2월 한가하게 마을회관에서 모여 놀다가 정월대보름 굿 한번 하고 다시 봄을 맞이합니다. 마을굿을 하려면 12월부터 모이기 시작해서 2월쯤 한 판 제대로 놀아야 하는 것이지요.
그루는 기획 원혜진, 연주자 김동호 최경아, 세 사람이 각자의 직업을 가지고 활동합니다. 평소에 괴산 등 인근의 동호회 분들을 대상으로 강습을 하고, 함께 공연도 하지만, 전문 연주자들을 객원으로 불러 공연을 만드는 시스템입니다. 실질적으로 지원금 없이 공연을 만들기는 어렵습니다. 이번 마을굿 기획은 동호회 분들과 마을 분들과 함께 만드는 공연이지만, 태평소 포함 전문 연주자 6명은 들어가야 합니다. 짧은 시간에 농악을 완성하고, 보기에 괜찮은 공연을 만들자니 어쩔 수 없습니다. 지역문화진흥원의 지원금에는 공연 사례비를 책정할 수 없습니다. 자발적으로 활동하는 동호회 모임을 지원하는 사업이기 때문입니다. 특강으로 사람들을 모이게 하고 연습을 진행했습니다. 전문 연주자의 사례비는 후원으로 충당했습니다.



한창 바쁜 때라 모이기도 어려웠습니다. 해가 늦게 지는 여름, 8시 반까지 수박 선별작업을 하고 돌아온 분들에게 같이 연습하자고 말씀을 드리기가 정말 염치없었습니다. 오히려 코로나 시국에 철없이 모여 노는 집단이라는 소리를 들을까 걱정이 되었습니다. 다행히 인근 풍물패 동아리 회원분들이 열 일을 제치고 열심히 함께해 주셨습니다. 농사를 짓지 않고 다른 직업을 가진 분들만 가능한 일정이었는지도 모릅니다. 마을굿 특강과 연습을 계속 진행한 후, 덕평리에서 9월 15일 송이버섯 무사 채취를 위한 마을굿을 올리고, 10월 17일 청천면 덕평리에서 마을 화합을 비는 마을굿을 올렸습니다. 10월까지는 공식적인 행사 금지라 각 마을 이장님의 추진력으로 조심히 조용히 마을굿을 할 수 있었습니다.
이어 11월 12일에는 다섯 번째 정기공연을 했습니다. 행사 가능한 11월이 되어 문예회관을 빌리고 100명 관객 예약을 받았습니다. 마을굿을 함께해 준 풍물패 동호회 여러분들이 길놀이와 소고춤 공연을 함께해 주셨습니다.
남프랑스와의 문화교류
정기공연까지 마친 후, 꼬레디시(Coree d’ici : 여기에 한국이 있다) 페스티벌에 초청을 받아 두 번째 문화교류를 다녀왔습니다. 남프랑스 몽펠리에는 2018년 지역우수문화교류지원사업에 선정되어 다녀왔던 몽톨리유의 인근 지역입니다. 2018년 8월, 사업에 선정되고 12월에 공연을 하기까지 몽펠리에 한인회 이장석 님과 꼬레디시 축제 감독 남영호 님이 많이 도와주셨습니다. 2019년에는 괴산의 동호회 회원 두 분과 함께 축제 참관 답사를 다녀오기도 했습니다. 2020년은 코로나로 못 갔지만, 2021년 올해 프랑스는 이미 위드 코로나로 외부에서 마스크도 안 쓰고 다닌다고 했습니다. 못 갈 수도 있다는 예측에 온라인 교류를 준비하다가 10월이 되어서야 여행사 계약을 하고 출발 준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몽펠리에 간 김에 몽톨리유에서도 공연을 한 번 하기로 했습니다.
기획자로서 2019년 3주간 몽펠리에에서 머물며 모든 축제 행사를 참관하고, 공연팀을 따라다니며 보조하고, 차를 렌트해 돌아다녔던 경험으로 이번 축제는 모든 것이 수월할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공항에서 11인승 차 두 대를 빌려 몽펠리에 시내로 들어가면서 모든 예상은 어긋나기 시작했습니다. 숙소는 차가 들어갈 수 없는 시내 중심에, 그것도 두 군데로 나누어져 있고, 해가 져 깜깜해진 좁디좁은 유럽의 골목길에서 헤맸습니다. 이미 오랜 비행으로 지친 대원들은 저녁도 못 먹은 상태로 큰 길에 차를 세우고 그 많은 짐을 걸어서 날라야 했습니다. 저녁 예약을 해놓은 식당에서 예약을 포장으로 바꿔 두 군데 숙소에 보낸 후, 그걸로 부족할 거 같아 맥도널드 햄버거 세트를 대원들 숫자대로 샀습니다. 그리고 맥도널드 앞 맥줏집에서 시원하게 맥주 한 잔을 들이켰습니다. 괴산에서 남프랑스로 날아간 첫 밤이었습니다.
左)꼬레디시 공연 실내라 소리가 울려서 걱정이 많았다 右)꼬레디시 중학교에서의 공연

금요일 밤에 도착하여 일요일 저녁에 공연을 하기까지 모든 일이 하나하나 다 걱정스러웠습니다. 차가 움직일 수 없는 상황에서 11명 인원이 악기를 들고 숙소에서 공연장으로 어떻게 이동할까, 공연장이 좁고 울려서 우리 소리가 너무 시끄럽지 않을까……. 그러나 걱정하고 고민했던 것을 싹 날려버릴 만큼 공연은 성공적이었습니다. 오랜만에 들어보는 박수와 환호성, 대원들의 사기는 충분히 충전되었습니다. 이어서 한글 정규 수업이 있는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 한 공연도 매우 좋았습니다. 비가 와서 야외 공연장에서 예정되었던 공연 하나가 취소되어 아쉽긴 했지만, 남 감독님은 내년에 또 오면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지막 날은 몽톨리유 책마을협회에서 점심 식사와 저녁 식사 그리고 숙소를 제공해 주셔서 저녁 공연을 하고 마지막 뒤풀이도 했습니다. 여름에만 여는 숙소를 통째로 쓰게 주셔서 그야말로 한가하고 여유롭게 커다란 침대에서 푹 잘 수 있었습니다.
가기 전에도 비행 편이 취소되어 귀국 비행기를 두 번 경유로 변경해야 했고, 귀국하는 한국행 비행기가 두 시간 연기되는 바람에 마지막까지 마음을 졸이기도 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니 11월 18일부터 28일까지 열흘간의 일정이 그저 꿈처럼 느껴집니다. 혹시 오미크론과 함께 들어온 것은 아닌지, 전 대원들의 두 번째 코로나 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조용히 지냈습니다.
모두 건강히 프랑스 일정까지 마친 12월, 2021년의 사업을 정리하고 2022년을 준비합니다. 괴산의 많은 사람들과 신나는 공연을 만들겠다는 생각으로 어느덧 5년이 지났습니다. 작년과 올해 유례없는 코로나 시국에도 많은 분들이 그루가 하는 공연에 손뼉을 치고, 응원해 주십니다. 이게 뭐라고, 모여서 악기를 치고, 술 한잔하고, 서로의 마음을 나누며 행복합니다. 그루는 괴산에서 활동하는 풍물패입니다.

EDITOR AE류정미
충북문화재단 충북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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