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문화예술 소통과 공감의 통로 [ㅊ·ㅂ]
현장으로 이끄는 미디어 활동가의 힘
'생활교육공동체 공룡 김설해'

김설해 님은 생활교육공동체 공룡의 멤버이다. 미디어활동가로 남길 원한다. (농사를 지어 감자를 판매하고 있다)
미디어 자체의 건강함을 추구하며, 미디어를 주요 수단으로 연대가 필요한 현장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생활교육공동체 공룡’의 ‘김설해 미디어 활동가'를 만나다.
생활이 번잡하여 연대를 모른다고 하여도, 우리는 일정 부분 그것을 외면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괴롭다는 이야기가 더 맞을 것이다. 우리는 좋은 세상에 살고 있다 싶지만 뒤집어 까보면 이토록 잔인한 세상에 살고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 순간이 있다.
감자 농사로 바쁜 ‘공룡’의 김설해 감독을 결국 테이블에 앉혀두고 나누었던 이야기를 글로 정리하는 것조차 버거운 이 마음이 독자들에게도 닿기를.

생활교육공동체 공룡 김설해 활동가


‘공부해서 용 되자’의 줄임 말은 공룡은 청주시 사직동이라는 동네에 살면서 서로 하고 싶은 것과 필요한 것을 찾고, 배우고, 가르치고, 만들어가는 과정을 함께하는, 그게 공부하고 생각하는 생활교육공동체입니다. 공룡의 활동가들은 각자의 매체를 가지고 연대 및 네트워크 활동, 매체 제작, 매체를 활용한 교육 활동 등을 하고 있습니다. 사회적 이슈에 대해 공룡의 목소리를 직접 드러내는 책과 다큐멘터리, 음악 등을 제작하고 있으며, 공룡이 만나는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매체를 활용해서 표현하고 전달할 수 있도록 미디어 교육을 기획/운영하기도 합니다.
- 공룡이 만드는 사직동 마을잡지, ‘크앙’ 발췌-
‘공룡’이라는 단체명이 재미있어서, 처음 들었을 때 맞게 들었는지 의심부터 하게 되더라고요. 어떤 단체인가요?
공룡은 ‘공부해서 용 되자’의 줄임말이에요. 이곳 청주시 사직동에서 공부방으로 출발한 어떻게 하면 공동체를 지향하는 교육이 될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공부하고 실행하는 모임이죠. 2010년에 지금 이 공간을 만들었고, 아이들의 변하지 않는 삶 속에서 공동체라는 것은 수업이 아닌 일상에서 같이 만들어나가야 한다는 고민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래서 이곳 초등학생과 청소년들의 아지트 같은 공간이 되었죠. 지금은 연대가 필요한 전국을 돌아다니며 활동을 하기 때문에 마을에서 많은 일을 하고 있지는 못해요. 하지만 지금도 가끔 그때 함께 교육했던 꼬마, 학부모 한둘이 이곳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들리는 것을 보면 그들에게 의미 있는 곳이었다는 생각은 들어요.
현재는 주로 미디어를 가지고 어떤 활동을 만들어 낼 것인가에 방점을 찍고 있기는 하지만 미디어 운동단체는 아니에요. 어느 때는 미디어 교육을 하지만 또 책 읽기 모임이나 드로잉, 인문학 교실 등도 진행했었거든요. 일종의 지역 운동을 하는 단체로서 미디어를 주요 수단으로 삼고 있는 것이죠. 그렇기에 미디어 단체나 기관들이 하는 교육, 제작 활동도 있고 지역에서 하는 네트워킹 활동도 있고 다양해요.





다양한 활동을 하다 보면 여러 가치 충돌이 발생할 수 있는데,
공룡이 지역 활동을 하면서 가져가는 지향점은 무엇인가요?

공룡이 지향하는 가치는 일상성, 공동체성, 반자본주의인데요. 슬로건을 말씀드리고 나니 저희가 어떤 거대한 사회변혁을 이루어내는 것 같지만, 우리는 그런 거대 담론의 중심에서 이슈를 외치는 조직체는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어요. 그래서 우리 곁에 있는 사람들과 그것들을 하나씩 살펴보고 해결해나가자는 기조로 시작한 것이죠.
?다양한 미디어를 생산하고 또 유성기업 노조원들의 이야기를 담은 장편 다큐멘터리 영화 ‘사수’의 제작과 상영까지 가열차게 달려오셨는데요. 20대와 30대를 현장에서 많은 기간 보내시면서 지역활동가, 미디어 활동가, 독립영화감독 등 다양한 타이틀로 불리고 계세요. 어떤 타이틀이 본인에게 가장 바르다고 생각하시나요?
인생의 한 시점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따라 정체성은 하나로 대표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을 거예요. 그렇기에 제가 무엇으로 불려야 하는가에 대한 답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개인적으로는 ‘감독’보다는 ‘활동가’에 더 가깝고 그렇게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이 있어요. 단순히 영상 제작집단이라기보다는 현장에서 미디어를 통해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하는데 저의 역할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렇기에 어떤 때는 현장에 밥을 함께 하는 연대일 수도 있고 교육 활동이나 행사일 수도 있고 ‘사수’와 같은 장편 다큐멘터리 영화를 찍는 사람이 될 수도 있겠죠. 저희가 하는 활동도 비슷한 맥락으로 이해될 수 있을 텐데, 얼마 전에 상영한 ‘사수’ 역시 영화로서의 장치나 완성도, 예술적인 가치, 작품성을 다 담아야 한다는 생각보다도 그 과정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을 해요. 필요한 목적에 따라서 작업하면 되는 것이라 작품으로서의 영화와 저널리즘으로서의 뉴스, 그 중간 지대가 분명히 필요하죠. 그렇기에 현장에서 만들어진 미디어 활동의 결과물들을 어떻게 평가하고 피드백할 것인가에는 그에 맞는 다양한 관점과 기준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생활 이야기로 넘어가 볼까 합니다. 감자 농사가 굉장히 본격적인 것 같은데요, 자급자족의 목적은 아니시죠?
텃밭이나 취미 혹은 저희가 자연 친화적이라 농사를 짓는 것은 아니고요. 명백히 판매를 위한 농사가 맞아요. 저희 활동비를 만들기 위한 농사죠. 저희는 농사 말고도 다양한 방식으로 돈을 벌어요. 우선 CMS 정기 후원이 있고, 따로 후원 주점을 열거나 영상 제작 혹은 미디어 강의로 외부에서 돈을 벌기도 하고요. 책이나 음반을 만들어서 팔 때도 있고 철 따라 잼이나 술을 담가 팔기도 해요. 팔 수 있을 것들을 팔아서 돈이 모이면 그것으로 활동비를 조금씩 받아서 작업하죠. 그리고 공간, 식사에 대한 돈은 같이 쓰고요. 그렇게 되면 삶의 규모나 리듬이 규칙적으로 만들어져요. 저는 그게 중요한 지점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이 리듬감이 생기면 사는 게 그렇게 어렵지도 무섭지도 않아요. 매달 직장에서 받는 고정적인 월급만이 괜찮은 삶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이 단체에서 이렇게 사는 방법에 대해서 서로 고민하고 합의하는 과정이 어떻게 보면 ‘빡세다’라고도 할 수 있지만, 저에게는 잘 맞는 것 같아요. 시키는 대로 사는 것이 아닌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찾아가는 과정이니까요.

생활교육공덩체 공룡이 키운 감자. 공룡은 활동비를 벌기 위해 직접 감자 농사를 지어 판매하고 있다.
인터뷰가 끝난 뒤 팀원도 감자 한 상자를 구매했다. 감자는 10kg에 만 오천 원 이다.


흔히 말하는 청년의 거의 모든 시기를 공룡에서 그리고 미디어 활동가로 보내고 계시는데요, 스스로 ‘청년’을 정의해본다면 어떠신가요?
어려운 질문이에요. 청년을 어떤 의미로 사용하는지에 따라 매우 다르니까요. 청년의 저임금 장시간 노동을 ‘열정 페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하는 경우가 있는데, 보통 그것이 통용되는 이유는 ‘젊으니까’예요. 그러면서 어떤 위계를 설정하고 마치 청년이 무언가 의무를 다해야 하는 존재로 만들어버리는데, 그게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아요. 개인적인 삶에서 과거에도 지금도 청년이라고 불렸던 상황들을 떠올려보면 별로 좋은 경험은 없었던 것 같거든요. 제가 공룡에 합류했던 것이 25살이었는데 그때 사람들은 저희를 ‘청년 단체’로 얘기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당시 저희 나이는 십 대 후반부터 20대 그리고 40대 중반까지도 있었는데 말이죠. 그런데 그냥 ‘청년 단체’로 간주하면서 저희에게 기대하는 어떤 역할과 위치성이 분명히 있었어요. 지역에 어떤 일이 있으면 먼저 나서서 열심히 일하는 일꾼이 되어야 하고, 주변을 항상 밝게 만드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그런 것들이요.
만약 청년이라는 이름을 정체화하고 규정한다면 ‘사회 변화를 위한 힘이 있는 존재’로서 상정할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하지만 현재 청년 개념의 쓰임새는 주체로서의 인정보다는 지원해줘야 한다는 시혜의 대상으로서의 쓰임이 훨씬 많아요. 또 그 지원이라는 측면에서의 정책과 제도들을 살펴봐도 청년이 겪고 있는 노동이나 젠더 문제 등에 맞닿아 있기는 하지만, 실제 그 각각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권한이나 토대를 만드는 것에 집중되어 있지 않아요. 단순히 지원해주어야 하는 청년의 어떤 상정된 모습을 딱 그려두고 보조 혹은 보호해주어야 한다는 식의 태도가 주를 이루죠. 그런 제도 안에서 청년 스스로 본인이 사회를 변화시키는 주체로서의 자각을 가질 수 있을까도 사실 의문이죠.
그래서 ‘요즘 애들’이라는 관점으로 그들의 배경과 맥락을 이해하는 것은 세대론으로 갖는 기능적 역할은 있을 수 있지만, 그것을 함부로 일반화시키는 것은 조심해야 할 지점이에요. 제가 청년으로 규명하는 모든 것에 불편함을 느끼는 지점이기도 하고요. 결론적으로 누군가를 청년이라고 이야기하면 마치 후배, 청년, 젊은이라는 말들로 등치 되면서 거기에서 강요되는 역할이나 위치가 있기에 오히려 한 개인으로서의 존중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 부분들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전 선배나 후배와 같은 개념도 잘 사용하지 않는 편이에요. 저와 함께 하는 사람들은 우리가 함께 겪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고자 모인 개개인의 활동가들일 뿐이에요.

EDITOR AE류정미
충북문화재단 충북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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