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문화예술 소통과 공감의 통로 [ㅊ·ㅂ]
의미있는 변화
'모나드 김현묵'

<김현묵> 문화예술교육단체 모나드를 운영. 문화예술교육과 문화기획, 그리고 개인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문화예술계는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어느 시대나 문화예술계는 실험적이고 전위적인 행위를 시도하는 것에 주저하지 않았다. 새로운 상황에 대한 흥미는 예술가들을 신나게 하는 것일지 모르겠다. 작금의 우리나라 안팎으로 많은 변화가 즐비하다. 팬더믹과 함께 많은 사건과 현상들이 나타나고 사회, 정치에서도 많은 변화가 눈앞에 펼쳐졌다. 예술인들은 이 흐름에 깊게 사유하고 고수해 나가야 하는 것과 시대를 따라가거나 앞서가려는 등의 모습을 보였다. 이처럼 변화를 마주하였을 때, 저마다의 방법으로 대처해 나가고 있다.
문화예술계에 있어 변화는 무엇이 있을까.
새로운 세대들이 등장하고 다른 교육과정을 경험한 이들이 다양한 문화예술활동을 시도한다. 이는 동시대에 일어나는 다양한 시도와 맥을 함께 하는 것일 수 있다. 이제는 새롭지도 않은 NFT(대체 불가능한 토큰, 암호화폐)는 이미 많은 예술인이 작품 판로로 사용하고 있으며 온라인 동영상 플랫폼을 이용한 정보 공유와 홍보는 사업으로 만들어져 장려하는 활동으로 이해되고 있다. 이처럼 시대의 변화에 따라 여러 가지 활동이 펼쳐지고 있다.

모나드 김현묵


조금 더 현장에서 겪는 변화에 관하여 이야기 해보자.
예술단체와 문화예술교육단체가 활동을 이어가는데 기금은 큰 도움이 된다. 물론 기금에만 의지하는 것이 이상적인 모습이 아니지만, 필자의 생각은 이들이 공공적 목표를 갖고 하는 활동은 계속해서 지원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공공의 목적을 위한 문화예술활동은 애초에 기금이 활용되어야 하는 현장이며 이는 국가에서 운영하는 문화재단들의 존재 이유와 유사한 부분이기도 하다. 예술가나 단체들을 지원, 육성하는 것 또한 공공재 성격의 관점으로 바라보는 문화예술 해석의 대변으로 볼 수 있다. 특히 문화예술단체들과 문화재단의 관계는 단순히 지원을 주고받는 형태가 아닌 일종의 파트너적 모습으로 생각된다. 이것은 공동의 목적이 완성되고 현장, 생태계, 사회를 그려나가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조금은 피부에 와닿는 변화에 관해 이야기를 이어나가자면 행정 담당자들의 인사이동을 손꼽을 수 있겠다. 자치단체장이 새로 취임하였을 때, 우리는 많은 변화를 상상한다. 이들은 이미 선거를 통해 어떤 변화를 시도할 것인지에 많은 홍보를 하고 취임 후 이를 실현하기 위한 변화를 시작한다. 이는 현장의 사람들이 어떤 정책적 변화가 있을지 예감하고 공감할 수 있는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을 투표나 목소리를 통해 의사 표현을 하는 등 소통을 취할 수도 있다. 물론 공감하지 못하는 변화들에 대해서는 비판적으로 지지하는 변화에 대해서는 적극적인 참여로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지점은 민주사회에서 이미 여러 차례 겪은 우리의 사회적 합의일 것이다. 다만 보다 더 현장의 모습에서는 이런 변화를 주도할 수 있는 것이 비단 선거를 통해 취임한 자치단체장 외에도 많은 행정 권한을 가진 사람들에게도 있다. 직설적으로 피력하자면 문화재단의 행정은 기계적일 수 없다. 위에서 언급하듯 이상향을 공유하며 현장과 생태계, 사회를 그려나가는 것은 현장의 예술인, 예술단체만이 하는 것이 아닌 문화 행정 담당자들과 정책 전문가들이 함께 하는 것이지만 다른 분야에 비해 기금을 담당하는 많은 행정인력은 이런 이해도가 떨어지는 인사이동 방법이 자행된다. 특정 인사가 잘못되었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필자가 경험한 대부분의 인력 변화에서 파트너쉽을 형성하던 문화행정가들은 본인들도 인지하지 못한 채 인사이동이 이루어진 경우가 많았다. 시스템으로 행정을 구축하고 어떤 이가 해당 담당을 이어가건 불편이 없게 구조를 형성하는 것이 행정가들의 목표라 하지만 문화예술현장에서는 그것이 불협화음의 근원이 되기도 한다. 이는 어쩌면 행정시스템이 가진 오류가 드러나는 부분일 수 있겠다. 현장은 변화에 유연하고 문화예술인들은 새로움에 두려움이 그다지 많지 않지만, 여태껏 그려온 길의 방향을 한 번에 뒤엎는 일들은 이런 사건들에 의해 종종 일어날때면 좌절을 경험하곤 한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 문제는 현장에서만 느끼는 공허함이 아닌 많은 이들이 공감하는 일이지만 이렇다 할 대책이 없다는 것 또한 공감대를 형성한다.

2018년 본 웹진 편집위원이었던 김윤섭 작가의 작품이 NFT를 통해 유통되었다


우리가 비판하는 대상, 이른바 공무원행정을 생각해 보면 모든 상황에 근거를 갖고 이야기하며 업무의 성격을 따져 타부서로 미루거나 민원이 두렵지만 책임을 피할 수 있다면 그리 요동하지 않고 현장의 돌발성은 중요하지 않은 나태하고 차가운 모습이 있다. 이는 우리 사회에서 상상하는 고리타분하고 답답한 공무원행정의 모습일 것이다. 사실 내실을 보면 매우 합리적이고 설득력 있는 행정의 모습을 갖춘 것이 우리 사회의 공공기관이지만 위에서 언급한 우리가 떠올리는 비판의 대상, 공무원행정은 어쩌면 시스템에만 의지한 행정이 낳은 일부분일 수 있지 않은가 생각해 본다.
사회가 변화하는 것과 만나던 사람이 바뀌는 것은 조금 다른 이야기일 수 있다. 사회의 변화는 서서히 진행되고 많은 이들이 주시하는 시대에서 나타나기에 사유의 시간을 허락한다. 하지만 파트너의 변화는 지난 일들에 대한 공유와 설득, 그리고 왜 우리는 이것을 해왔는지에 대해 다시금 증명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는 피로하고 문화예술인들이 매우 서툴러 하는 것이다. 그래서 숫자로 이야기할 수 있는 성과지표가 자주 활용되는 것 아닌가.
만약 변화가 있기 전, 조금씩 서로에게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 허락된다면 어떨까. 작은 배려일 수 있는 이런 관례가 형성된다면 파트너쉽을 유지하고 설득과 이해의 시간이 여유롭게 흐를 수 있다고 생각된다.
필자는 오랜 기간 문화 행정도 문화예술계의 범주로 판단하고, 서로 이해하며 소명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종종 이야기해왔다. 이는 민원만을 이야기하는 현장과 지표적 요구만을 강요하는 행정의 갈등이 동시대의 사회문제라고 판단해서이기도 하다. 이미 많은 분야에서 갈등은 해소되고 있고 의미 있는 변화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이는 시대가 혁신하고 있다는 증거로 볼 수 있다. 다만 아직 남아있는 행정의 일방적 변화는 파트너라 생각하는 상대가 부재하도록 만들며 잘 쌓은 모래성을 쉽게 무너뜨리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현장에서 다른 활동가들과 이야기 나누다 보면 “에이~ 안하면 그만이야.”라는 말을 쉽게 하곤 한다. 파트너쉽을 유지하다 행정의 인력 변화로 이해가 어렵고 방식을 재정립하는 등의 일들이 이어지면 투정 섞인 말투로 내뱉는 말이다. 이런 말들이 현실로 옮겨진다면 결국 이에 피해를 겪는 것은 향유자이다. 아무도 모르지만,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일들이 이런 것이지 않을까.

그릇을 넘치는 사물 그림


문화예술인들은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하지만 행정의 변화는 항상 두렵기만 하다. 새로운 파트너의 성향에 따라 변화하는 현장은 건강하지 않다. 이를 보완하기 위한 것이 바로 행정시스템 아니던가.
변화가 의미 있으려면 ‘일’ 중심의 생각을 해야한다. 좋은 현장을 만들고 문화예술이 삶에 녹여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결국 현장의 모습을 상상할 수밖에 없다. 행정은 현장을 담는 그릇이라 생각한다. 현장은 무수히 많은 변화를 받아들이고 다양해지지만, 아직 그에 맞는 그릇은 완성되지 않은 것 같다. 문화 행정이 더욱 문화예술에 적합한 방법으로 변화하고 현장에서 이를 이해한다면 어떤 변화가 오건 발전의 기반으로 작용할 것이라 생각된다. 앞으로의 변화가 큰 의미를 가질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DITOR AE류정미
충북문화재단 충북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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