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문화예술 소통과 공감의 통로 [ㅊ·ㅂ]
목각인형이 사는 작은 마을, 극단 보물
'마리오네트 전문 극단 ‘극단 보물’'

충청북도 충주시 동량면 용족골. 충주댐에서 흐르는 강물이 앞에 흐르고, 야트막한 산을 등지고 있는 이 작은 시골 마을 꼭대기에는 동심의 세계가 있다. <목각인형이 사는 작은 마을>. 작은 피노키오가 맞이하는 입구를 지나 계단을 오르면 너른 잔디밭이 펼쳐진다. 바로 이곳은 마리오네트 전문 극단 ‘극단 보물’의 작업실이자 생활 공간이다.
작품 활동을 위해 고향 부산을 떠나 경기도에 작업실을 꾸렸던 극단 보물, 경기도를 떠나 아무런 연고도 없던 충주에 새로운 보금자리를 꾸린지도 어느덧 10년 세월이 흘렀다. 극단 보물은 마리오네트 전문 극단이다. ‘마리오네트’란 각 관절에 줄을 이어서 위에서 조종대로 움직이는 인형을 말한다. ‘한국의 제페토 할아버지’ 김종구 연출과 그의 아내 송옥연 여사, 아들 김해일 대표, 그리고 며느리 이슬기가 활동하는 가족 극단이다.
늘 함께하는, 누구보다 가까운 사이이지만, 바쁜 일정에 치여 깊은 대화를 나누기 어려운 요즘. 충주에서의 10년 세월을 되돌아보는 시간, 그리고 서로에게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김종구 연출이 작업실에서 작업을 하고 있다

Q. 충주로 오게 된 계기?
<김종구> 제일 먼저 꼽은 이유는 자연경관이 좋아서였다. 충주댐에서부터 흐르는 강물도, 어디서나 보이는 푸른 산도 참 좋다.
<송옥연> 첫 번째 이유는 자연경관, 두 번째 이유는 교통편이 좋아서였다. 서울 수 도권 공연 가기에도 거리가 멀지 않고, 밑에 지방 공연 다니기도 전체적 으로 참 좋았다. 충주에서 10년 살아보니까, 아주 만족한다. 충주 사람들 은 거칠지가 않고 부드럽고 유순한 편이다. (두 분 모두 부산 출신)
<김종구> 자연재해가 없다는 것도 만족한다. 부산은 바다 앞이라서 태풍도 많고. 그리고 부산에서는 눈을 거의 못 보는데, 여기서는 겨울에 많은 눈을 볼 수 있다는 것도 반갑다.
<김해일> 아버지 어머니가 충주로 오시면서 자연스럽게 이주했다.
<이슬기> 저도 서울에서 나고 자라서 사실 충주가 어디 있는지도 몰랐다. 지방에 서 살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는데, 결혼하면서 충주로 오게 되었고, 지금은 충주가 너무 좋다. 일 때문에 서울에 올라가면 막 답답하다. 하늘 이 보이지 않는 이런 곳에서 어떻게 살았었나 싶고.
<김해일> 우리 부모님이나 우리 고향은 아니지만, 충주는 이제 우리 아이들의 고향이다. 참 소중한 곳이 되었다.
左) 2014년 윤당아트홀 장기 기획공연 당시 가족사진

Q. 지난해 (2021. 6. 12. / 6. 19.)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원로예술인공연지원사업에 선정되어 오랜만에 <목각인형 콘서트> 기획공연을 했다. 지난해 작업실 화재 사고로 공연용 인형이 불타면서 공연을 하지 못하다가, 새로 제작해 진행한 공연이었다. 충주 시내에서 2회, 시외에서 1회를 진행했는데 느낌이 어떠셨는지?
<김종구> 1년여 만에 관객들을 만나는 것 자체가 감격이었다. 특히 손주들과 손주 들 또래의 아이들을 극장에서 만나면서 얼마나 반갑고 신났는지 모른다.
<송옥연> 동량면 마을 회관 앞에서 야외공연을 했는데, 마을 어르신이 예상 밖으 로 큰 호응, 뜨거운 반응을 주셔서 좋았다. 농사짓다가 작업복 차림으로 오셨는데, 참 감사했다. 공연을 접하지 못했던 지역민들을 만날 때와 극 장에서 관객들을 만날 때 느낌이 많이 달랐다.
<이슬기> 이번에 코로나 때문에 많은 관객을 받지 못했다. 충주에서 기획공연이 안 된다고 생각해서 잘 하지 않았는데, 이번 공연을 하면서는 매달 최소 1회 정기적인 상설공연을 진행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다.
<김해일> 마을 이장님부터 적극적으로 협조해 주셨다. 이 마을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을 계속해서 찾아내야 한다.
<이슬기> <목각인형 콘서트>는 제가 너무나도 좋아하는 작품인데, 20년 정도를 꾸 준히 사랑받았던 이 작품을, 화재로 인형이 소실되면서 앞으로 이 공연을 보지 못한다는 사실이 너무 슬펐다. 그런데 이렇게 이 공연을 다시 볼 수 있어서 팬의 입장으로서도 무척 기쁘다.
<김종구> 이제 팬의 입장은 아니지. 우리가 직접 다 만들어 내는 인형들이니 걱정하지 마라. 이번에 새로 만든 인형은 대대로 물려줄 수 있을 만큼 튼 튼하게 만들었다.


Q. 극단 대표직을 아들 김해일씨가 물려받은 지 이제 1년이 넘었다. 가족극단으로서의 장단점은?
<김종구> 가족 극단이기 때문에 좋은 점은 100% 신뢰할 수 있다는 것. 어려운 일 이 생기면 일반 극단은 와해되기 쉽다. 가족 극단은 위기를 만나면 더욱 단단해진다. 든든하다. 하반기에 진행할 신작을 고민할 때도 내가 나이가 드니까 막힐 때가 많은데, 아들과 머리를 맞대니까 아이디어가 많이 나온다.
<송옥연> 세대갈등이 있다. 어디서나 있을 수 있는 갈등인데. 가족이라서 더 크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다. 조율이 많이 필요한 문제다. 하지만 상호보완 이 되면 큰 시너지를 발휘한다. 이제 현장 감각이 무뎌지는 것을 느낀다. 젊은 너희가 현실적인 부분을 만들어오면, 우리의 경험과 연륜이 그것들 을 만들어갈 수 있다.
<김해일> 너무 잘 아는 만큼 힘든 점들이 있다. 특히 부모님이니까 험담을 못하 는 것.
<이슬기> 극단에 어른이자 스승이 계시다는 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요즘 깨닫는 다. 예전에는 시부모님이라는 생각에 어렵기도 했지만, 이제는 어딜 나가 서 활동하더라도 부모님이 뒤에 계신다 생각하면 감사하고 든든하다.
<김종구> 극단 대표를 바꾼 것도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내 고집을 내세우지 않고, 스스로 절제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뒤로 간다. 그러면서 더욱 화합이 되고. 이제 우리는 서포트해 주는 역할을 하면 된다.
左) <목각인형 한마당>공연 사진 右)김종구, 송옥연 부부의 프로필사진(들고 있는 발레리나, 색소포너 마리오네트는 부부의 얼굴을 본따 만들었다.)

Q. 2019년 아들 내외가 부모님의 작품 <목각인형 콘서트>를 오마주한 작품 <목각인형 한마당>을 만들었다. 그 공연을 보고 느낀 점은?
<김종구> 한국적인 마리오네트 쇼를 만들었는데, 그걸 해낼 수 있던 게 참 좋았다.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 작품은 가족 극단의 맥을 잘 이어가 는 계기가 되었다는 의미가 있다.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흐뭇하고 대견 했다. 그런 하나하나를 가지고 옷을 입혀간다는 게. 극작도 하고 제작, 연 기도 할 수 있으니까 가능한 것인데, 앞으로 가능성을 제대로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었다.
<이슬기> 아버지 작품을 오마주 했다고 말씀드리기가 참 부끄러운 작품이다. <목 각인형 콘서트>는 유럽식 마리오네트 쇼인데, 한국식 마리오네트 쇼를 꼭 만들고 싶었다. 앞으로 아버지한테 부끄럽지 않게 더욱 열심히 다듬어 가 겠다.
Q. 나에게 예술, 그리고 마리오네트는 어떤 의미?
<김종구> 삶의 존재 이유이자 삶 전체. 예술을 하지 않았더라면 돈 벌고 먹고사는 것, 즐거운 어떤 것을 찾아다니는 것에 매달렸을 것이다. 예술가의 축복 중 하나는 이것에서 자유로운 것이다. 나에게 마리오네트는 열정이며 도 전이다. 처음 일본 이이다 인형극제에 가서 후버 씨의 마리오네트 공연을 보고 떨렸던 가슴이 아직도 생생하다. 다른 공연이 많았지만, 그 어렵다 는 후버 씨의 마리오네트를 보고 나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피가 끓는 느낌이었다. ‘과연 저것을 내가 할 수 있을까?’ ‘꼭 해보고 싶다’ 마 리오네트는 지금까지 이 열정이 나에게서 식지 않게 해준다.
<송옥연> 나는 예술이 뭔지도 모르고 어거지로 시작했다. 이제 와 돌이켜보 면, 예술은 나에게 ‘기쁨’이다. 무대 위에서 관객을 만났을 때의 교감은, 일반 직장 생활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쉬다가 이번에 공연에서 관객을 만났을 때, 말할 수 없이 좋았다. 소름이 돋았다. 보는 사람만 행복한 게 아니라, 사람들에게 기쁨, 사랑, 평안, 희망을 전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 가 행복하다. 그게 예술 아닐까. 만들어가는 과정은 지난한데, 무대 위에 섰을 때는 그 어렵고 힘든 것이 단숨에 날아갈 정도로 예술은 기쁨이다. 이 기쁨은 예술만이 줄 수 있는 것이다. 마리오네트는 나에게 새로운 길 을 알려주었다. 마리오네트 덕분에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천직을 얻었다. 제일 마지막에 찾은 직업인데, 제일 만족스럽다.
<김해일> 아직 나는 잘 모르겠다. 예술은 나에게 다른 삶을 살게 해주는 것이다. 마리오네트를 보면 나 자신을 보는 것 같다. 과거에 나는 부모님의 마리 오네트였었다.마리오네트를 작업하다 보면 행복하다. 마리오네트는 행복이다.
<이슬기> 나도 아직 잘 모르겠다. 아버님처럼 ‘예술은 내 삶 자체’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게 부럽다.(웃음) 나에게 예술은 ‘자유’다. 예술을 알기 전까지는 세 상의 시선, 평가에 붙잡혀 있었다. 이제는 삶에 더 큰 가치가 있다는 것 을 알게 되었다. 마리오네트는 제2의 인생이다. 마리오네트를 만나면서 예전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다. 예전으로 다시 돌아가라면 못 돌아 간다.
<김종구> 강을 건넌 거지, 다시는 못 돌아갈. 아직 ‘예술이 내 삶 자체’라는 말을 이해하지 못할 수 있다. 인생의 시간표가 다르기 때문이다. 꽃망울 이 터지듯이 예술가로서의 삶을 누리는 시기가 온다. 마리오네트 가족 극 단으로서 대를 이어가면서, 그 맛을 알게 되는 시기가 곧 올 것이다.
극단 보물은 올해 하반기에 충북문화재단 문화예술육성지원사업에 선정되어 신작을 준비하고 있다. 이 작품은 소수 관객을 대상으로 자동차 극장에서 진행된다. 충북 지역의 문화 소외 지역의 관객들을 찾아가 만나려 한다. 더 가까이, 더 따뜻하게.

EDITOR AE류정미
충북문화재단 충북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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