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문화예술 소통과 공감의 통로 [ㅊ·ㅂ]
체험이 아닌 경험으로서, 5년 전 문화 기획의 씨앗이 진천혁신도시에서 ‘틔운다.’
'문화 전문인력 양성프로그램 ‘틔움’ 참여자 이나라 인터뷰'

2017년에 진행된 문화 전문인력 양성 프로그램 '틔움'의 교육생으로 참여한 이나라 님은 현재 진천에서 『I My Me Mine 어른이들의 나를 찾아가는 이야기 동화책 만들기』라는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필명인 '작은 달'로 그림책의 이야기 부분에 참여하였다.



2017년 진행된 문화 전문인력 양성프로그램 ‘틔움’에 참여한 이나라 님의 목소리를 통해 당시의 문화 기획이란 무엇인지 다시 들어본다. 2022년에 틔운 그녀의 문화예술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진천혁신도시의 첫인상은 작은 세종이었다. 매끈하게 솟아있는 아파트, 낮은 조경수, 정돈된 거리 등. 관광지가 아닌 이상 우리는 낯선 도시를 잘 방문하지 않는다. 우리는 오늘 농부의 마음으로 이 도시에 접어들었다.
5년 전 씨를 뿌린 문화 전문인력 양성프로그램이 얼마나 그들에게 빛과물을 주었는지 확인하러 가는 것이다. 수확량에 집중하기보다는 단단하게 뿌리를 내렸는가, 건강한 초록빛을 내뿜으며 살아가고 있는가에 방점을 둔다.
‘틔움’을 듣게 된 계기는.
방송작가로 10년 동안 쉼 없이 달려오면서 고비가 왔었어요. 일과 관련된 면은 수월했는데 사람과의 관계가 너무 어렵더라고요. 제 글을 쓰고 싶다는 욕구도 생길 무렵이라 다 정리하고 미국으로 갔어요. 거기서 듣고 싶은 수업도 들으면서 재정비하고 한국에 들어왔는데 부모님이 이쪽으로 귀농을 하신 거예요. 저도 자연스럽게 이곳 생활이 시작된 거죠. 그러다가 충북문화재단에서 하는 사업인 ‘틔움’ 공고를 보게 되었어요. 제 글을 쓰는 중이었으니 끌리는 것이 당연했어요. 그리고 관심 있는 문화예술 분야의 ‘기획’이란 무엇인지 궁금하기도 했고요.
첫 만남의 소감은 어떠했는지.
저는 저보다 나이가 많으신 분들과 이름 뒤에 ‘쌤’이라는 호칭을 붙이며 자유롭게 의견을 나눠본 경험이 없었어요. 언제나 서열, 직책등에 따른 대화가 익숙했거든요. 그런데 틔움에서의 대화는 마치 미국에서 나이 떼고 이야기하는 것처럼 60대분이 이야기하면 20대가 손을 들고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해요. 그러면 그 의견을 다 경청하신 60대 선생님은 생각 끝에 ‘받아들이겠어요.’라고 대답하시는 거죠.
그 분위기가 정말 새롭고 너무 재미있었어요. 다른 문화재단에서 열리는 프로그램을 참가하면 대부분 2, 30대인데 충북은 20대부터 시작해서 60대 이상까지 골고루 분포되어 있었어요.
저희가 오후 6시에 모여서 9시까지 수업을 했는데 누구 하나 빠지는 인원 없이 계속 갔어요. 저만 즐겁고 저만 재미있던 것이 아니라는 거죠. 다양한 나이대의 사람들이 그 공간에서 같은 마음으로 성장하고 있던 거예요.


‘틔움’을 참여하면서 인상 깊었던 것은.
멘토님께서 ‘체험 많이 가보신 분 있으신가요?’라는 질문을 던지셨어요. 저는 당당하게 손들었어요. 어디 문화체험이 있다고 하면 자주 가서 참여하곤 했으니까요. 그런데 돌아오는 답변은 예상과 달랐어요. ‘체험을 제공하는 것은 문화기획자가 할 일이 아니다.’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힘들었어요. 그런데 그 이후의 설명이 너무 인상 깊어서 지금도 잊히질 않아요. ‘사람들이 삶에서 경험해 본 것은 몸에 남지만 체험해 본 것은 그냥 스쳐 지나간다.
어디에 가서 내가 그림을 그냥 그려보고 가져오는 것과 이 그림에 들어 있는 내용과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 보는 경험은 다르다. 우리는 문화기획자로서 경험을 주는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정말 신선한 충격이었어요. 당시만 해도 문화기획자는 무언가 파티를 열 듯 장소를 마련하고 공연을 준비하고 이런 것으로만 생각했는데, 저의 예상보다 훨씬 넓은 스펙트럼을 가진 분야였어요. 그래서 아직도 체험과 경험의 임펙트가 크게 남아있어요.


‘틔움’ 이후 어떤 활동을 이어갔는지.
문화 기획이 무엇인지 알았으니 이후 더 공격적으로 빠르게 할 것 같았지만, 아니었어요. 오히려 ‘틔움’ 수업을 들었기 때문에 정말 내가 해야 하는 문화 기획은 무엇이고, 그렇기에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 더 신중하게 접근할 수 있었어요.
재단으로서는 아쉬운 부분도 있으셨겠지만, 그때 한번 멈췄던 것을 후회하지 않아요. 좋은 프로그램을 이수하고 또 우리의 사례가 상까지 받았으니 빠르게 무언가 펼쳐질 수도 있었는데 그 흐름으로 가면 저 역시 성과를 내야 한다는 압박감에 결국 제대로 된 문화 기획을 하지 못했을 거예요.
제법 많은 시간 동안 여기 혁신도시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제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하나하나 적어보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얼마 전에 기획했던 그 프로젝트를 시작했어요. ‘I My Me’라는 타이틀로 어른들이 동화책을 통해 나를 들여다보는 시간이에요.



저는 글을 쓰는 것에 자신 있고 주변에 그림을 그리는 선생님도 계셔서 같이 해봤는데 정말 재미있어요. 요즘 나오는 그림책들은 아이들에게도 물론 사랑을 받지만 어떤 책은 어른들에게 더 큰 감동으로 다가오는 것들이 많아요. 그래서 내 가족, 지인들과 이 책을 함께 나누고 싶은 마음이 들어요. 그렇다면 그림책을 매개로 우리의 이야기도 함께 나눌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그렇게 나의 이야기, 너의 이야기를 나누면서 현재 4회차 정도 진행했어요. 그리고 지금 저희가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이 공간이 미술학원이고 바로 옆에 문화 공간으로도 손색없는 카페가 같이 있어요. 저희 동네에 이런 공간이 생겼다는 것도 너무나 멋진 일이고 선뜻 문화 활동을 위해 공간을 제공해주신 대표님의 마음도 멋지시죠.
이 지역에서 무언가를 해나갈 때 참여하시는 분들과 주변에서 같이 협업해주시는 분들이 있다는 것이 정말 큰 원동력이 되거든요. 더 다양한 분들과 만나길 기대하고 있어요.
2022년의 ‘틔움’이 다시 열린다면 어떤 모습이었으면 좋겠는지.
저는 타이틀에 많은 것이 들어갔다고 생각해요. 요즘에는 정말 직관적으로 ‘문화기획자가 되어보기, 나도 PD가 될 수 있을까’와 같은 타이틀의 문화예술 인재양성 프로그램들이 나오거든요. 그런데 다 그 안에는 꼭 무언가가 되어서, 무언가를 해야만 하는 강제성이 있잖아요. 어떤 명함으로써 시작하는 프로그램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I My Me’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참여자 모집할 때 조건이 있었어요. 에게 사진을 3장 보내주시는데 그 사진에는 본인의 이름, 나이, 직업이 들어가지 않아야 했어요. 그 3가지를 제외하고 본인을 표현할 수 있는 사진을 보내 달라고 요청한 거죠. 그래야 우리가 만났을 때 인간 대 인간으로서 본연의 대화를 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문화기획자를 양성하는 프로그램을 기획하신다고 하면 그게 그걸로 밥 벌어먹는 직업 교육의 성격은 아니잖아요.
이 부분을 잘 구분해서 타이틀을 지어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야 조금 더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이 과정에 호기심을 느끼고 참여할 수 있을 것 같거든요.
올해 10주년을 맞이한 ???(chap)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제가 정말 좋은 수업을 들었는데 그 이후가 저는 아쉬웠어요. 그때 함께 했던 선생님들과 계속 연결될 수 있도록 커뮤니티라도 지원해주셨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요. 그래서 문화재단 웹진이라고 들었을 때 정말 반가웠어요. 특히나 제가 살고있는 진천혁신도시의 경우에는 정말 재단 사업들과 연결되는 지점이 거의 없거든요. 오늘을 계기로 이곳도 많은 젊은 친구들이 문화 예술적 상상력을 키우며 활동하고 있고 이런 이야기들을 웹진에서 다뤄주는 것이 또 다른 좋은 자극이 되리라 생각해요. 충북 곳곳의 작은 지역들에서 시선을 줄 수 있는 그런 웹진이 되길 바랍니다.

EDITOR AE류정미
충북문화재단 충북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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